동국대학교 장학센터

만해축전

 
2021만해축전 ㆍ 유심작품상 시상식
 
 
  • 유심작품상 시상식

      제19회 유심작품상 시상식

    • 일 시 : 2021년 8월 11일 (수) 18:00~19:30
    • 장 소 : 만해마을 문인의 집 강당
    • 선정부문 : 시, 시조, 소설, 특별상
    • 수 상 자 : 윤효 (시인, ‘치마객잔’), 문무학(시조시인, ‘그전에 알지 못했다’), 이경자(소설가, ‘언니를 놓치다’), 한분순(시인, 전 한국여성문학회 회장)
    • 2021 유심작품상 수상자

    • 시 부분 윤효/ 수상작 치마객잔
    • 시조 부문 문무학/ 수상자 그전에 알지 못했다
    • 소설 부문 이경자/ 단편 언니를 놓치다
    • 특별상 한분순/ 시인, 전 한국여성문학회 회장
  • 윤효 시인(시 부문 수상자) 수상소감



    • 가슴에 남는 아득한 시를 위하여
      나고 자란 시골 마을 한복판에 아름드리 정자나무가 있었습니다. 어른들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수시로 드나들었습니다. 놀이터였습니다. 아이들 서넛이 모이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 나무를 탔습니다, 누가 더 높이 오르나 겨루기도 하고 이 가지 저 가지 옮겨 다니며 잡기 놀이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밑에서 그 재재바른 아이들을 올려다보기만 했습니다. 아이들과 어울려 흙투성이가 되어 보지도 못했습니다.

      제 안에 자의식이 싹틀 무렵부터 무엇인가에 대한 동경이 함께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것은 실체라곤 전혀 없는 막연한 그리움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읍내 중학교 2학년 어느 가을날 하굣길에서 그 동경의 실상을 만났습니다. 줄지어 선 신작로 미루나무의 행렬을 끝까지 따라 걷고 싶었습니다. 시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시를 어떻게 쓰는지는 고사하고 시가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 그저 시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짧은 말, 그러나 시골 간이역 나부끼는 손수건의 이별처럼 아득한 시를 쓰고 싶었습니다. 쉬운 말, 그러나 가슴에 남는 시를 쓰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따금 찾아와 제 가난한 속뜰을 헤집어 놓기만 할 뿐, 시는 제 곁에 머물러 주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날들이 무수히 이어지곤 하였으나, 어쩌다 며칠이고 제 곁에 시가 머무는 날이 있었습니다. 다시금 헤아려보니, 저에게 시를 쓰게 한 것은 ‘결핍’이었습니다. 결핍의 다른 이름인 외로움과 그리움과 서러움으로부터 가까스로 시가 피어나곤 했습니다.

      수상 통보를 받고는 만해 한용운 선생을 떠올렸습니다.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환하게 밝힌 선지식의 전인적 풍모가 그리웠습니다. 그리고 그 돌올한 생애와 정신을 오늘에 되살린 설악 무산 스님을 떠올렸습니다.

      “나는 서정시인이 되기에는 너무도 소질이 없나봐요./‘즐거움’이니 ‘슬픔’이니 ‘사랑’이니 그런 것은 쓰기 싫어요./당신의 얼굴과 소리와 걸음걸이와를 그대로 쓰고 싶습니다./그리고 당신의 집과 침대와 꽃밭에 있는 작은 돌도 쓰겠습니다.” 『님의 침묵』 여든여덟 주옥편 중 아홉 번째 작품인 「예술가」의 끝부분을 다시 새겨 읽으면서 이 글을 마칩니다.
  • 문무학 시조시인(시조 부문 수상자) 수상소감



    • 꽃 밑 글자가 곧…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정말 알 수 없었던, 「알 수 없어요」 를 흥얼거렸던 날이 떠오릅니다. 아마 중학생 시절이었을 것입니다. 가을날 볏단을 실은 소를 몰면서 들판에서 외웠던 ‘누구의 ~입니까’ 로 반복되는 이 시가 내 삶의 화두가 될 것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시조를 쓰는 시인이 되기 전에 삼중당문고 『님의 침묵』 (1976. 11. 중판본) 부록 시조 편에서 “따슨 빛 등에 지고 유마경(維摩經) 읽노라니/ 가벼웁게 나는 꽃이 글자를 가리운다/ 구태여 꽃 밑 글자를 읽어 무삼하리오.” (두 수 중 첫째 수) 라는 「춘주(春晝)」을 만나기 전에는 시조 석 줄이 껴안는 품이 이리도 넓은 것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시조를 쓰는 시인이 되어 무엇을 써야 하는가를 오래 고민하다가 낱말 그 자체를 소재로 삼으면서, “가갸로 말을 하고 글을 쓰셔요. 혀끝에서 물결이 솟고 붓 아래에 꽃이 피어요. 그 속엔 우리의 향기로운 목숨이 살아 움직입니다.” 라는 「가갸날에 대하여」(동아일보 19261207)를 만나기 전에는 한글이 지닌 높은 격을 다 알지 못했습니다.

      독립운동가, 불교사상가, 시인 만해 선생님을 이렇게 만났습니다. 세 편의 시가 연이 된 것입니다. 생의 화두를, 시조의 너른 품을, 한글의 높은 격을 제게 진즉 깨우쳐주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궁금증을, 격 있는 문자로, 시조 속에 갈무리해야 했지만, 다른 곳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비틀거리기도 하면서, 나를 바쳐야 할 곳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수상 작품 「그전엔 알지 못했다」 가 「알 수 없어요」 를 많이 쫓아가고 싶었나 봅니다. 견강부회(牽强附會)라는 말이 있긴 합니다만 정말 우연이 아니다 싶은 생각을 버리고 싶지 않습니다. 수상의 기쁨을 숨기지 않으면서 여기선 그런 억지라도 마구 부리고 싶습니다. 나도 모르게 먼 곳에서 내 길을 이끌어주신 님이 진정 내 님인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만해사상실천선양회가 있어 알아야 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해사상이 가벼워지기만 하는 속세를 지그시 누르게 될 것도 믿게 되었습니다.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고맙습니다’ 라고 쓴 글자를 꽃잎으로 덮으며 고백합니다. 님은 「춘주」에서 “구태여 꽃 밑 글자를 읽어 무삼하리오.” 하셨는데, 그 꽃 밑 글자가 곧 시라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 이경자 소설가(소설 부문 수상자) 수상소감



    • 인간 삶의 모순들이 뭉친 것 풀어야
      고향 양양으로 가는 버스 속에서 수상자 선정 소식을 들었다. 행복하기 그지없는 소식이었지만, 그래서 믿기지 않았다. 행복감은 보이지 않아서 마치 손에 들고 있는 물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갈 것 같은 불안감이 도졌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이 소식을 알려 방방 뛰며 기뻐하고 싶은데 버스 속이었고 모두 마스크로 입을 가린 상태. 입이 있어도 말하지 말고 먹지도 말라는 것이었다.
      고향이 가까워질수록 하늘은 맑고 산천은 푸르렀다. 행복해서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시간, 나는 낙산사와 진전사를 떠올렸다. 낙산사는 해마다 걸어서 소풍을 가던 곳. 진전사는 큰이모네 집이 있었고 탑이 있는 곳에 가서 마구 놀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유심 상은 만해 한용운의 문학정신과 업적을 기리기 위한 만해사상실천선양회에서 주관하니까.
      오래 전에 장편소설 『세 번째 집』으로 현대불교문학상을 받았다. 그 작품은 내 문학의 중심 소재이며 주제인 분단 현실의 비극과 모순을 탈북자 여성을 통해 그린 소설이다. 나름으로 혼신을 다해서 후회 없는 작품이었는데 수상의 영광을 안게 되어 탈진을 위로받고 격려 받은 기쁨이 아직 생생하다. 그런데 이번, 19회 유심상 소설부문에 수상자가 됐다. 영광이고 영광이다. 더군다나 이번 수상작은 단편소설 『언니를 놓치다』인데 역시 분단을 다룬 소설이다. 금강산에서 열린 남북이산가족 찾기 현장에서 느낀 모든 것을 압축해서 단편소설로 만들었다. 글을 쓸 때 우는 건 좋은 현상이 아니겠지만 아주 많이 울었다. 그 잔인한 비극 때문에……. 민족의 분단은 생살을 찢는 것이다. 역사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문학은 용서하지 않아야 한다.
      나는 분단의 땅 강원도 양양 삼팔선 이북이 고향이다. 내가 문학적으로 분단 문제에 천착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이것 말고 달리 설명이 안 된다. 인간 삶의 모순이 층층이 켜켜이 시공간에 뭉쳐있는 곳! 이곳에서 내 무의식이 모두 형성 됐다. 그러므로 소설가인 나는 뭉친 것을 풀어야 하는, 책무를 얻었다.
      올 해 일흔 네 살이 됐다. 소설을 쓰는 것이 엄청난 몰두를 요구하는 일인데 몰두 그 자체가 생명 에너지의 소모다. 하지만 괜찮다. 그저 앞으로도 쓰고 싶은 소설을 쓸 것이므로.
      상을 주신 만해사상실천선양회에 진심을 다해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 한분순 시인, 전 한국여성문학회 회장(특별상 수상자) 수상소감



    • 글쓰기와 고독의 방생
      ‘유심’이 가리키듯, 만물은 마음의 표현이며, 작품은 마음의 형식이다. 탐내지 않는 순전함으로 글을 닦으려 한다. 싱싱하면서도 잘 익은 글을 지어서, 문장을 채식하듯 읽는 이에게 드릴 것이다.
      밤은 별들을 뜨개질해서 신화를 만들어 낸다. 작가는 성실하게 어휘들의 궁전에서 문학을 위한 광채를 경작하는 존재이다.
      글쓰기는 고독의 방생을 도와주며 창작하는 외로움 곁에서 문학은 그렇게 위로가 된다. ‘유심’이 주신 특별상을 공손히 받아들며 격려의 포상으로 여긴다. 초시간적으로 의미 있는 ‘유심’의 시대 정신에 작은 필력을 보태며 봉헌하려 한다.
      실존의 기쁨을 탐구하되, 우울은 영광이며, 그것을 이긴 작가에게 ‘유심’은 영속성의 동력을 건넨다. 그 고마운 문학의 정반합 우주에서 글은 본질적 영원을 이룬다.
      경쾌한 미학으로 겸손히 생활 속 시시콜콜함을 사랑스럽게 탐색하면, 올올이 헤어져도 입을 벌려 웃는 양말처럼, 은닉된 자비심이 발견된다.
      문학은 계몽하려는 지성이 아닌 감성의 현자이다. 글을 좋아하는 이들과 나란히 걷는 존재가 되어야 옳다. 문학이 기하학 시대에 갖춰야 하는 것은 섬세함의 세계관이다. 그 태도는 석가모니 설법을 잇는 혜안과 닮았다. ‘유심’에서의 특별상을 새로이 만상의 갸륵함을 받드는 기점으로 삼을 것이다.
      모든 것이 의도로 움직여도 예술의 지향은 여전히 예술이다. 현대 문학이라는 명명에 어울릴 요소를 가늠해 본다. 공동체 보편에 관여하는 이지적 서사에 더하여 개인 삶의 서정을 포옹하는 것이다. 문장은 미물의 경이로움을 기적처럼 포착하며 모두에게 경의를 표해야 된다. 그것이 멋진 작법이다. ‘유심’에 깃든 아름다움처럼 목적과 그 결이 똑같은 반듯한 방법으로 문학에 정진하려 한다.
      흰 원고지는 정갈히 글을 쓰는 저마다에게 사려의 도량이 된다. 조그만 책이 놓인 풍경을 가만히 보면, 두 손을 마주대어 합장하는 형태와 같다.
      작가는 침묵에 들어 있는 슬기로움을 찾아내며 통속을 애틋하게 품는다. 진리와 바름을 철학하면서 독자들의 기쁨이 될 겸양에 닿으려 한다. 책 위에서, 행간은 깨끗이 쓸어 둔 여백으로 청정하며, 활자는 수줍은 깨달음이다.
      속 깊은 대지는 꽃이 칼의 형상으로 돋는 까닭을 안다. 색채와 향기로 적막함을 관통하여 여흥을 생산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흙은 낙화를 기꺼이 재생시킨다. 꽃 되지 않은 낱말이 모여 글이 된다. 지혜의 말씀이 그렇듯 강력함은 보드라움에서 나오는 것이다. 연꽃은 그림자마저 반짝인다. 문학을 밝히는 연등으로 ‘유심’은 언제나 어김없이 환하다. 같이 길을 열며 세세생생 글을 지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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