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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만해축전, 제5회 님의 침묵 전국 백일장 입선 작품
2016년 08월 23일(화) 12:32 [인제신문]
 
[장원]
여명
김미나

하늘은 입이 없어
빗방울 점자를 찍는다
눈이 멀어도 여명을 안다
벽돌담과 담쟁이가 범벅인 건물을
투둑 투둑 적어나간다

새벽 비는 우산을 한데 그러모아
대화를 준비 중이다
그 울림은 그렇게
알록달록이다 혹은 초록들이
땅의 귀를 불쑥불쑥 여는 소리다

가끔 하늘에 그려진
별자리 상형문자와
뭉게구름의 새벽잠을
하얀 시야에 담는 눈 먼 자들을
서예가라고 부르고 싶다

이때 새들과 산봉우리는
붓끝에 숨는다
저 상형문자를 해독하려고
희망봉까지 올라갔지만
육신이나 영혼을 놓고 오기도 했다

어떤 까막눈 밀짚모자는
흙 밭 위에 곡괭이로
글씨를 써나가거나
소를 끌어 쟁기로 글을 적었다

고구마 싹이나 파 머리들이
그들만의 대화법이 아닐까
그 대화 소리가 들릴 때마다
흙 밭에서는 하늘로 올라가는
여명이 반짝이기도 했다

다리 없던 것들에게 날개가 돋아나고
초록 얼굴에 붉은 화색을 띄워주고
거미집 겨드랑이 밑에 별을 내어주는
반짝이는 대화

오늘 창문을 열고 맹인소녀가
환한 빗소리 점자를 그리고 있다,
여명을 더듬으며 읽는 중이다


[차상]
까마귀
유효경

따사로운 햇빛 한 줌 분칠한 낯빛과
버려진 공작새의 깃털을 주워서
새까만 몸뚱이 위에 하나씩 꽂아본다

새벽공기 가득담아 온 몸에 뿌리고
밤사이 떨어진 새들의 허울을
세 갈래 가지런히 땋아 머리 위에 장식한다

불어오는 서풍이 깃털하나 데려가자
햇살에 녹아내린 이카로스 날개처럼
검은강 흩어져버린 민낯이 초라하다


[차하]
고장난 시계
백미향

1.어스름 창틈으로 언듯언듯 피어난
낯설은 푸르름속 엄마의 목소리
화들짝 놀라 깬 저녁
아침인 듯 멈춘 시간
2.먼 옛날,
고난의 전쟁영웅
오디세우스

영원히 절규하는 뭉크의 검은 눈빛

모두 다
오늘이라는 시간 속에 갇혀있다


[장려]
굴레
고호균

우리 집에선 하늘이 가까이 보인다
구멍이 뚫린 낡은 함석지붕 사이로
햇빛과 구름이 보이고
날아다니는 새가 보이고
밤이면 달과 함께 반딧불로 반짝이는
초롱초롱한 별들도 보인다
가난이 싫다며 그런 하늘이 보기 싫다며
아버지는 사다리를 타고 지붕으로 올라갔다
상처 난 육신을 어루더듬 듯이
두꺼운 비닐을 쪼가리로 잘라 그곳을 가리고
망치질로 쇠못 몇 개를 박더니
사다리 밑을 내려오다 그만 땅바닥으로 추락했다
남은 식구들을 외면한 채
긴 세월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그날로 생존의 끈을 놓아버린 아버지
그가 편히 누울 수 있는 곳은
집도 지붕도 아닌 바로 하늘이었다
이제는 제발 날 놓아달라며
스스로를 옭아매던 사슬을 풀어버리자
녹슨 쇠못이 빠지고 비닐이 또 바람에 날아갔다
다시금 뚫린 함석지붕 사이로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이 보이지만
어머닌 아버지처럼 지붕을 오르지는 않았다
대신 밤이면 밤마다
그 지붕 위에 걸린 아버지를 닮은
둥근 달을 바라보는 게
어머니의 유일한 위안이었다


[장려]
여명
박소진

좁은 안방 위로 노이즈 소리가 수신된다
텔레비전에서 퍼진 탁한 빛을 조명삼아
오늘의 일기를 적어가는 할머니
낡은 스프링 수첩 위로는
투박한 글자가 이어지고 있었다

늙은 거미 한 마리가
라디오 카세트 옆에서 거미줄을 치고 있었다
제 관을 짜듯
하얀 실타래를 풀어간다
아직도 할 말이 남은 건지
거미의 다리가 실없이 뒤척이고 있었다

연필처럼 짧아져만 가는 할머니의 날들
나는 흘러가는 시간을 멈추고 싶었지만
낡은 수첩 위로 할머니가 풀어나간 하루가
검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창틀 사이로 스며들어온 여명의 달 빛,
거미는 달빛을 덮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텔레비전 전원은 꺼진 지 오래였고
그칠 줄 모르는 귀뚜라미 울음소리만
방 안에서 이따금씩 퍼져가고 있었다

거미줄처럼 이어지는 수첩 속 글자들
그 위로, 창백한 달빛이
희미하게 내려앉았다


[장려]
굴레를 벗다
서수빈

새벽은 밤 어둠의 굴레를 벗어던지는 길,
길을 걸어가는 걸음들이 모여있는 시간이다

벌거벗은 나무들의 긴 겨울,
그 겨울의 침묵을 일깨우는 꽃봉오리들이
굴레를 벗듯 터뜨리는 봄날의 향기는
손발의 족쇄가 풀려 환하다

세탁, 세에탁
아침부터 세탁소 아저씨가 층계를 내려오며
집질을 방문하는 소리는
내 마음속 묵은 때와 상처를 굴레에서 끄집어내
드라이클리닝한 옷처럼
칼라가 새하얗게 빳빳한 슬픔과
우울의 주름을 쫙 펴줄 것 같다

아빠와 숲 속 펜션에 묵을 때
별들은 쏟아질 듯 총총한 눈빛으로
내 도시의 굴레를 밝힌다
밤새 소리는 내 기억에 묶인 굴레의 자물쇠를 풀어
저 계곡 여울물 소리에 띄워 강으로
멀리 바다로 띄워 보낸다

아침부터 농부의 수레를 끄는 소는
굴레의 바퀴가 잘 돌아
농촌체럼하는 아이들과 가족들의 웃음을
저 들판의 끝 숲으로
도시의 얽매임을 활짝 풀어놓고 있다


[장려]
착한 붕어빵을 만들자
서정환

모기는 고등어를 좋아하는 걸까?
햇살에 지쳐가는 한여름 오후
늦은 점심으로 고등어구이를 먹는데
맨살 종아리를 집요하게 콕콕 찔러온다
나의 헌혈로 부화될 모기들은
그 고등어와 몇 촌쯤 되는 것일까?
호흡만으로도 생명들은 이미 섞이고
서로를 결박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생존의 굴레에 묶여버린 생명들
우리가 세상을 향해 호흡하듯 쏟아낸
마음과 말과 행동은 유전자에 각인되어
고스란히 각자의 삶의 기록으로 남는다
서로에 기대지 못하면 살 수 없는 존재들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쉽게 잊어버린 우리는
각자의 DNA가 만들어낸 불완전한 복사본이다.

하나의 마음은 하나의 마음일까?
최초의 DNA가 진화를 시작했을 때
생사는 소멸되고 존재의 단절은 없어졌다
다른 생명의 희생을 딛고 살아가는 것은
결국 온 우주가 하나로 닮아가는 일이다.
이제 별자리가 바뀔 때까지 꽃을 흔들자
하나의 작은 착함도 정말 소중하게 아끼자
미안해하고 부끄러워하는 용기를 칭찬하자.

아름다운 세상을 꿈꿀 수 없을까?
해탈에 속박되지 않는 더 큰 자유를 그려보자
가장 큰 악을 품을 울타리를 세상에 만들자
스스로의 삶에 지혜롭고 아름다운 공명을 일으키자
그래서 세상을 바꾸어줄 건강한 유전자를 퍼뜨리자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착한 닮은 꼴들을 많이 만들자
‘존재의 굴레를 초월하는 삶’
그 궁극의 완성은 착한 붕어빵을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우주의 중심을 향해 붕어빵들을 위한 수식을 입력하자
(1+1>=3) 착한 하나와 하나가 만나서 셋 이상 예쁜 붕어빵을 만들자


[장려]
여명
서장원

어둡다는 것은
아직 불을 밝힐 공간이 남아 있다는 것이겠지

태양은 어둠을 먹고 자라니
언젠가 한 조각의 빛 정도는
나의 동공에도 떨어지겠지
멈춰버린 시간 속
정적은 심해의 수압처럼 세상을 짓누르고 기약 없는 하늘은
축축한 밤에 젖어 한없이 무겁지만

때로는 창틀의 모과를 향기롭게 썩히듯 말없이 지켜봐야 할 때도 있겠지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모두 문드러져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기 전에
조그만 향을 지피고
언젠가 피어오를 여명을 기다린다면

농후한 밤을 장작으로, 나도 다시 타오르겠지


[장려]
돌아보다
김소연

그날따라
별을 끌어안은 밤하늘이 유독 짙었다

가시 돋친 문장을 피하던 시간
비좁은 골목에 스며들던 주택가의 조명
가로등은 지친 듯 눈을 끔벅였고
그 아래를 서성이던 길고양이가
바닥에 눌러 부은 연탄재를 밟았다

잉크 번진 밤하늘에는
그믐달 하나가 상처처럼 남아 있었다
반물빛으로 일렁이던 밤공기가
가루약 같은 별들을 한껏 집어삼켰다
소음은 굴러 떨어지는 비행운의 잔해
눅눅해진 바람이 그것을 갈무리해가면
나는 부서져가는 돌계단에 앉아
조각난 말들을 곱씹었다

아빠는 유성의 꼬리가
달을 돌아보게 만드는 이정표라고 했다
밤하늘을 긁고 지나가는 유성을 따라
시선을 옮겨보면
나를 보러 와 있을 것이라고 했다

눈꺼풀을 감았다 뜰 때마다
보이지 않는 거짓말의 굴레,
그 멀리에서 떨어져 내린 질문들은
조금씩 꿈결 속으로 사라지고

차가운 돌계단에 앉아 나는
길고양이의 가라앉은 울음소리만 듣고 있다


[장려]
굴레
권소영

그길이 그길인듯 코뚜레 꿰인 날엔
내설악 푸른 등을 추억인듯 밟으렴
어이쿠 시원하구나 탄성 절로 일 때까지

소나무 해진 손을 하늘이 마주잡고
꼬불한 더운 볕이 너를 따라 오르면
머리위 갈치떼처럼 스쳐가는 인연들

어디선가 얼말렸을 너와 내 상처들이
한계령 바람타고 비리게 불어오면
추워서 제맛이 드는 인생임을 알겠다

태백의 준령 넘어 오색을 거쳐 만나는
짠내가 물씬해야 맑혀질 마음인데
퍼렇게 닳고 닳아야 깊어질 마음인데


[장려]
굴레
박이나

납골당, 사람들은 침묵을 배워본다
죽음은 예견해도 놀라운 일이라서
가끔씩 울음소리가 몰려오곤 하는 때

어머닌 사과나무 앞에서 흐느끼고
작은 손, 두 손으로 어깨를 만져주며
한마디 건네주고도 싶은 날도 있는법

저러는 어머니가 지치면 두손 안에
위로를 담아주곤 하면서 기다린다
위로는 잡을 수 없어 더 많이 슬프대지

아버지가 심어놓은 사과나무, 어디서
냄새가 풍겨오네 막노동 뛰시던 아버지
사과의 둥근 곡선에 시멘트 냄새난다

사과에 빗방울들 떨어지고 어디선가
아버지 목소리가 들려오는 느낌이다
여기서 떠나갈 수가 없으니 슬픔 밤

부모 잃어버린 별자리, 내가 있다
사과에서 아버지를 느껴본 그날에는
누구도 생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다


[장려]
여명
박혜준

물안개가 아스라이 피어오른 새벽녘
물 위를 떠다니는 사목의 잔가지
그 옆을 바라다보면 굽은 등이 보이네

실타래 풀리듯 사라지는 안개 속
희미하게 떠오르는 한 폭의 수채화
그 끝에 고요히 스민 아버지가 서있네

풀내음 사이로 퍼지는 당신의 목소리
물 위에 잔잔히 흔적들을 남기며
아버지 얼굴에서는 옅은 웃음이 피어나네

작고 여윈 움직임으로 움트는 물결들
찬란했던 빛은 어느새 저만치 흘려 가고
아버지, 그 쓸쓸한 등 포근히 감싸보네


[장려]
목욕 시키며
오미진

육 남매 무게가 아직도 붙어있는
느릅나무 껍질처럼 거칠어진 살결들
애궂게 비누거품만
거푸거푸 문지른다

손가락 마디마디 노을처럼 붉어지고
지나온 엄마 삶도 함께 붉어져서
온몸에 땀방울처럼
엉겨붙어 끈적인다

사업하는 장남에 시집 잘 간 딸들까지
하나하나 굴레를 때 밀 듯 밀어내니
오늘은 엄마 몸에서
배꽃향기 피어난다
2015 만해축전 기간 중, 시·시조 2개 부분 … 장원 상금 300만 원
[미디어펜=온라인뉴스팀] 벽초 홍명희가 “만해 한 사람 아는 것이 다른 사람 만 명을 아는 것보다 낫다.”라고 했으며, 만공선사는 “이 나라에 사람이 하나 반밖에 없는데 그 하나가 만해”라고 했다.

최린 등과 함께 3·1 운동을 주도했던 만해 한용운 선생은 감옥에서 일부 민족대표들이 사형당할 것을 두려워하자 “목숨이 그토록 아까우냐?”라며 똥통을 뒤엎기도 했으며, 그토록 가까웠던 최린, 최남선, 이광수 등에 대해서도 ‘친일파’라며 상종조차 하지 않았다.
▲ 만해 한용운(오른쪽)과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 있는 만해마을 전경.
만해 한용운 선생을 기리는 '님의 침묵 전국백일장'이 올해도 8월 14일 오후 1시 만해 사상실천선양회 주최, 인제신문사 주관으로 백담사 만해마을에서 열린다.
이번 백일장은 나이 제한 없이 누구나 참가할 수 있으며, 시와 시조 2개 부분에 걸쳐 진행된다. 참가를 원하는 사람은 인제신문 누리집에서 참가 신청서를 내려받아 작성한 뒤 8월 13일 오후 5시까지 참가신청서를 이메일로 제출하면 된다.
시상은 △장원 1명 만해축전 대회장 강원도지사상과 상금 300만 원 △차상 1명 만해축전 수석부대회장 인제군수상과 상금 200만 원 △차하 1명 만해축전 부대회장 인제군의회 의장상과 상금 100만 원 △장려 10명 인제신문사 사장상과 상금 각 10만 원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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