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학교 장학센터

만해축전

 
2020만해축전 ㆍ 제24회 만해대상 수상자
 
 
  • 제24회 만해대상 수상자

  • 2020 만해평화대상 수상소감 포티락 스님(Bodhirak)



    • 친애하는 형제, 자매, 그리고 세계 시민 여러분
      만해평화대상을 수상하게 되어 깊은 영광으로 느낍니다. 제 인생의 노고를 인정해주신 만해대상 심사위원회에 감사드립니다. 승려로서 저는 종교와 불 교가 어떻게 손을 내밀어, 사람과 사람 간에 상호영향을 미치게 하고 사회를 통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중요성을 항상 강조합니다.

      평화는 모두가 얻고 싶어하는 강렬한 개념입니다. 저에게 있어서 ‘평화’는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자유’ ‘결속’ ‘노력’ 그리고 ‘온전함’과 발 맞춰 나아가는 반면, 절제와 공성은 같은 목적을 향한 수단으로서, 즉 정신적 평온함 또는 열반을 기반한 궁극적 평온으로 나아갑니다. 평화에 대한 모든 사람의 생각은 다르지만 ‘불교적 평화’를 이해하려면, 자기 자신의 마음의 움 직임을 인지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자신에게 집중해야 합니다.

      바깥 대상(外境)을 외면하지 않고, 여섯 가지 감각기관(육근, 眼耳鼻舌身意)의 접촉을 통해 외부에서 자극을 받을 때, 감정이나 내적인 반응에 대해 배 워야 합니다. 그런 다음 마음 속에서부터 생기는 번뇌나 악(惡), 그 자체를 뿌 리뽑는 방법을 완전히 익혀야 합니다. 지속적인 평화는 진정한 지혜를 갖춘 우리의 마음이 탐욕과 분노, 무지에서 서서히 해방될 때 진정 실현될 수 있습 니다. 반야(Pañña), 진정한 지혜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해 줄 것입 니다. 저는 이러한 내적 평화, 반야(Pañña)가 그 어떠한 지식을 헤아리는 논리 를 넘어서서 더 세심하고, 더 복잡하고, 지극히 평화롭다고 믿습니다. 50여 년 동안, 저는 실제 삶의 현장에서 팔정도를 구체화하기 위한 노력

      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보전하기 위해 인생을 바쳤습니다. 태국 전역의 아속(Asoke) 공동체는 핵심적인 불교 개념인 ‘정견(正見, right understand-ing)’과 함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올바르고, 모범적인 방법을 제시합니다. 아 속(Asoke)을 따르는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불교 사찰과 불법이 서서히 자연스 럽게 스며드는 마을과 학교가 함께하는 공동체 속에서 겸손하고, 자급자족하 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아속 공동체는 다른 이를 도울 수 있는 힘이 뻗어나갈 수 있도록 자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세계는 일반적인 평화와 자유에 대한 필요뿐만 아니라, 무아에 대한 올바 른 이해를 통해서 생겨날 수 있는 평화와 자유를 강력히 필요로 하고 있습니 다. 저는 아주 작은 규모일지라도, 아속 공동체 모델의 본질은 자애와 연민, 그리고 혼란한 사회에 지속적인 평화를 가져다 주는 씨앗이 될 수 있다고 믿 습니다. 현대사회를 위해, 삶의 대안적인 방법을 제안하고, 제가 자랑스럽게 만들어 낸 아속 공동체의 신성함을 경험하고 증명하기 위해 이 기회를 빌려 모든 분들을 초대하고 싶습니다.

      비록 지구상의 다른 곳에 위치하지만, 만해대상과 아속 공동체는 평화를 향한 같은 목적에 동의합니다. 우리의 관계가, 궁극적인 인류의 안녕을 위해, 공통된 믿음과 지속적인 평화를 향한 사명감을 함께했으면 좋겠습니다.
  • 2020 만해실천대상 수상소감 대구동산병원(서영성 병원장)



    •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이 올해 만해 한용운 선생님의 정신을 잇는 만해 실천대상을 받게 되어 영광입니다. 대구동산병원은 2020년 2월 21일 코로 나-19가 대구 전역에 급격하게 발병하여 자칫 재난적 의료상황으로 번질 수 있는 순간 민간병원으로서 유일하게 감염병전담병원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대구동산병원 교직원들은 코로나-19 퇴치에 적극적으로 앞장섰고 대구지역 의 코로나-19 감염 상황을 진정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곳에서 1,000명이 넘는 의료진들과 자원봉사자들이 120일이 넘도록 코로 나-19에 함께 대응했습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6월 30일 기준) 1,047명의 환자가 대구동산병원에 입원했으며, 958명이 퇴원하였고, 22명이 안타깝게 사망했습니다. 현재 일일 최대 395명의 환자가 입원하던 순간에 비하여 99% 가 감소한 6명의 환자만 남아 있으니 참으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의 모병원인 동산의료원은 1899년 선교사들이 설립한 대구 제중원을 전신으로 일제강점기에는 민족의 마음과 몸을 치료하 는 종합병원으로서, 6 · 25 전쟁에는 고아들을 돌보는 아동병원으로서 대한민 국의 역사 속에서 나라와 국민을 위하여 언제나 헌신하길 자처했습니다. 또 한 동산의료원은 1919년 3월 8일, 대구 3 · 1 운동의 출발 장소이기도 했습니 다. 동산의료원과 만해 한용운 선생님께서 함께했던 애국정신이 만해실천대 상을 수상하는 올해, 121년 만에 다시 이어지는 것을 생각하니 종교를 뛰어 넘는 참으로 오랜 회심지우(會心之友)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병원은 이번 만해실천대상 수상이 대구동산병원만을 위한 상이 아니 라 코로나-19에 대응하는 모든 병원에 주어진 상이라 생각합니다. 나라가 어 려운 이때에 만해 한용운 선생님의 정신은 대한민국 모든 병원에 다시 한번 병원의 설립 목적과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민간 병원이든 공공 병 원이든 병원의 존재 목적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데에 있습니다. 지 금도 수많은 병원과 의료진들이 자신을 희생하며 코로나-19와 싸우고 있습 니다. 만해실천대상이 대한민국 모든 병원과 의료진들에게 희망과 위로가 되 길 바랍니다.

      아직 안심할 수 없는 때입니다.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되지 않았기에 언제 어디서 다시 코로나-19가 재유행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대구동산병원은 아직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한용운 선생님께서 나라의 안위와 독립을 위하여 멀고도 긴 독립의 꿈을 향해 나아가신 것을 기억하며, 코로나-19가 종식될 때까지 국민의 안전과 생 명을 위한 공공의료의 길을 끝까지 걷겠습니다.
  • 2020 만해실천대상 수상소감 엄홍길(산악인, 엄홍길휴먼재단 상임이사)



    • 세 살 적부터 도봉산 자락에서 살면서 제 인생 대부분은 산을 무대로 펼쳐 졌습니다.
      산에서 인생 목표를 달성했고, 산을 통해 수많은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 속 에서 인생의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이는 만해 한용운 선생을 이해하게 된 동 기가 됩니다. 만해 선생께서 수도하다가 다른 세계에 대한 관심으로 노령(연 해주)과 시베리아 등지를 여행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귀국 후 백담사로 들 어가서 속세와 인연을 끊고 출가해 승려가 되셨는데 그런 깨달음의 과정이 누구보다 가슴 깊이 와 닿습니다.

      저는 20대 때 네팔 히말라야 14좌(히말라야 8,000m급 14개 봉우리) 등정 목표를 설정한 뒤 30대, 40대에 오직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맹렬히 도전해 꿈을 이뤘습니다. 내친김에 2개의 봉우리를 추가 등정하면서 ‘세계 최초 16 좌 등정’ 기록을 달성했습니다. 첫 등정까지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히말라야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를 등정하면서 비로소 겸손한 삶을 배웠습니다.

      저는 인생을 16좌 인생과 17좌 인생으로 구분합니다.
      16좌 완등까지 등정을 목표로 한 산악 인생이었다면 그 이후에는 등정보다 는 세상 삶 속에서 봉사하는 17좌 인생을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번 만해대 상도 산악인의 업적이 아닌 16좌 완등 이후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는 17좌 도 전 인생 속에 받은 것이어서 더욱 기쁩니다. 사실 14좌 등정까지도 그랬지만 16좌를 더하면서 정말 두려웠습니다. 죽을 고비를 숱하게 경험했기 때문입 니다.

      저는 매 등정 때마다 히말라야신께 “제발 저를 받아 주시고, 저를 살려 주 신다면 반드시 봉사하는 인생을 살겠습니다.”라고 맹세했습니다. 저의 마음 을 읽었는지 히말라야신은 저를 산자락에 붙들어 두지 않고 살려 주셨습니 다. 저는 등정 목표가 하나하나 달성될 때마다 욕심과 탐욕을 버리고 나눔과 실천의 의미를 깨달아갔습니다.

      정말이지 등산할 땐 산만 보이더니 하산하니 비로소 어린이들이 보이기 시 작했습니다. 히말라야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달리 네팔 어린이들이 교육 혜 택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척박하고 고달픈 삶을 사는 모습을 보며, 그들에게 삶을 이기는 법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그 시작으로 2008년 엄홍길휴먼재단을 설립했습니다. 혼자서 하기 어려운 과정이라 수많은 후원자들(정기 · 부정기 회원 포함 7,000여 명)의 도움을 받 았습니다. 히말라야 오지에 학교를 짓기 시작했고 올해 11년째입니다. 2010 년 네팔 에베레스트 길목 팡보체에 첫 학교를 시작으로 올해까지 약속한 16 개 학교를 완공했습니다. 최근 유치원, 초 · 중 · 고, 체육관, 도서관, 마을회관 을 망라한 휴먼타운 건립을 목표로 착공식을 했습니다. 16개 휴먼스쿨에는 4,543명이 재학중입니다. 이제 휴먼스쿨을 통해 대학생을 배출했고, 이들은 네팔에 큰 자산이 될 것입니다. 네팔은 제게 제2의 고향이자 꿈을 이룬 곳으로 영혼의 고향입니다. 내 인생 의 젊음과 청춘을 히말라야에 담았습니다. 제가 네팔에 베풀고 봉사하는 이 유입니다.

      그렇다고 전적으로 네팔 청소년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국내 청소년들을 위한 활동도 끊임없이 하고 있습니다. 청소년들과 휴먼원정대, 클라이밍대회, 장애인과 산행, 매년 남녀 대학생 100여 명과 ‘DMZ 평화통일 대장정(휴전선 155마일 횡단)’을 하면서 국토 분단의 현실과 한반도 평화통 일에 대한 이해를 높이며 도전정신을 일깨웁니다. 또 등반 중 사망한 네팔 셰 르파와 한국 산악인들의 유가족 돕기 사업을 하면서 이들이 꿈을 잃지 않도 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도봉산 산골짜기에서 찻길까지 나오는 동안 절 4개를 지 나야 했습니다. 불교문화를 자연스레 접하면서 37년을 살았습니다. 특히 망 월사에서 스님들이 참선하는 모습을 보면서 불교문화에 심취했습니다.
      산악인의 길을 걸으면서는 설악산을 찾아가 훈련을 자주 했는데 당시 백담 사 초입부터 절까지 가는 길이 참 아름다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추억이 남아 있는 곳에서 만해실천대상을 받게 된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하 며, 한용운 선생님의 깊은 뜻을 이어 받아 평생 네팔과 한국의 청소년들을 위 해 봉사하는 도전의 삶을 계속하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 2020년 만해문예대상 수상소감 김주영(소설가,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 내 기억 속에는 박목월 선생의 〈사투리〉란 시의 한 대목이 어렴풋이 남아 있다.
      “우리 고장에서는/ 오빠를/ 오라베라 했다/ 그 무뚝둑하고 왁살스런 악센 트로/ 오라베 부르면 /나는/ 앞이 콱 막히도록 좋았다.”
      만해 대상을 수상하게 되었다는 통지를 받았을 때, 문득 내 가슴을 짓누르 는 감회 또한 그것이었다. 그런데 박목월 선생의 앞이 콱 막히도록 좋았다는 시구는 반가움의 극치에서만 생산될 법한 감성적 언어다. 그러나 내가 수상 통지를 받고 겪은 앞이 콱 막히도록 좋았다는 감회는 두려움과 부끄러움이었 다. 그것은 아마도 자유인(自由人) 만해 선생이 남기신 시대적 아픔과 업적이 나로선 만지거나 짐작조차 하기 어려운 대업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만해 선 생이 생애에서 연속적으로 부딪친 혼란의 시대를 관통하면서 그 고통에 굴복 하지 않고 얻어낸 시대적 업적을 통쾌하게 분석하거나 정리한다는 것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란 옛 속담처럼 나로선 불가능에 가깝다. 혼란의 한말에서부터 일제 암흑기까지 시대와 겨루어 남긴 업적을 꿰뚫어 내기란 내가 가진 주변 머리로선 불가능이기 때문이다.

      만해 선생의 삶은 대강 둘러보아도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고 난과 역경이 없는 삶에는 교훈적이거나 감동적인 걸작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 을 가르쳐주기도 한다. 선생께서 남기신 문학적 업적 중에 내가 알고 있는 것 은 〈님의 침묵〉에 그려진 몇 구절이 고작이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와 같은 몇 구절을 가까스로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

      서 만해대상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 발에 맞지 않는 나막신을 신고 걷는 것처 럼 어색하기만 해서 누가 볼까 민망스럽다. 선생은 태어나서 돌아가실 때까 지 일관되게 상실과 격랑의 시대를 살았다. 사람들은 만해 선생은 종교 사상, 독립 사상, 문학 사상과 같이 서로 분리되 었으면서 서로 상통하며 일관성을 지니게 한 사상가로서의 통찰력을 가졌다 고 말한다. 그 시절 대부분의 선각자들은 서양을 본받아야 한다고 외치며 너도 나도 그쪽으로 쏠려 달려가고 있을 때, 만해 선생은 홀연히 동학혁명에 가담하 고 절을 찾아가 승려가 되었고, 3 · 1운동으로 투옥되어 기꺼이 감옥생활을 감 내했다.

      그런가 하면 선생께서는 속된 것과 성스러운 것을 자유자재로 오고 간 보 기 드문 자유인이었다. 이런 삶이 나에게 감동을 안긴다. 뿐만 아니라, 그 시 대의 격랑을 겪으면서 단 한 번도 정의라고 생각한 것을 가볍게 스쳐가거나 결별하지 않고 아픔과 고통을 스스럼없이 끌어안고 그것들과 동행하였다. 동학과 일제시대와 문학에서 크나큰 족적을 남기는 데 전혀 손색이 없었고 허술함도 없는 입체적인 생애를 누렸다는 것을 발견하고 전율한다. 일생 동 안 정처 없이 타관을 전전하면서도 전통과 불교와 서구의 자유주의 사상을 탁월하게 결합시킨 선각자가 되었다. 백담사, 내장사, 화엄사, 통도사, 송광 사, 범어사, 쌍계사, 백양사, 선암사, 금강산에 있는 표훈사까지 거처하지 않 은 절이 없을 만큼 뛰어난 종교 사상가이면서도 바깥세상이 겪는 격동의 현 장에는 언제나 모습을 같이했던 자유인 만해 한용운.

      정의란 도대체 무엇인가, 올곧음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은 지금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놓고 극심한 사회적 혼란을 겪고 있는 지금의 시간을 겪으면서 지조 있게 살다간 그분의 상을 받게 되었다는 것에 막중한 무게감을 느낀다.
      감사드립니다.
  • 2020년 만해문예대상 수상소감 신달자(시인,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 저는 책 정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사 올 때 그냥 마구잡이로 밀어 넣었던 책들을 보기 좋게 한 사람의 책을 줄지어 놓으려는 생각으로 책을 정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오현 스님의 《벽암록》과 《아득한 성자》를 바라보면서 이분은 지금 어디에 계실까하고 생각하다가 문자메시지 오는 소리에 핸드폰 을 들었습니다. 아주 무심하게 바라보았지요 이근배 선생님의 문자였습니다. 만해대상을 축하한다는 문자였습니다. 이분이 다른 사람에게 보내는 문자를 잘못하셨구나 하고 생각했지요. 그러다 돌아서려는 순간 전화를 열었습니다. 역시 축하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아, 이 상이 내게로 왔구나. 저는 한참 눈을 감았습니다. 언젠가 상상했던 적은 있었지요.

      저도 이 큰 상을 받을 날이 있기도 할 거야…… 그렇게 말이지요. 그러나 아 주 가볍게 아주 쉽게 그것에 미련을 밀어낼 수 있었습니다.
      서운함도 없었습니다. 스님이 만들어놓은 이 상이 빛나는 분들로 채워져서 이 상의 의미를 더할 수만 있다면 저에게 돌아오지 않아도 영원히 응원만 할 것 같았습니다.
      차츰 그렇게 익숙해졌고 무심해진 상태에서 스님까지 도저히 뵐 수도 없는 시간쯤에 스님의 책들을 정리하는 그 시간에 이렇듯 큰 상을 받게 된 축하메 시지를 받은 것은 보통의 건강지수에서도 밑돌고 있는 지금의 병고에서는 더 욱 감당할 수 없는 벅찬 감동이었습니다. 만해 한용운 선생님은 저와 깊은 인연이 있습니다. “깊은”이라는 말을 서 슴없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이를 셋씩이나 낳고도 시간이 흐른 나이에 교 수직을 맡게 해 준 은인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그 시절 저는 만해의 여성지 향 의식에 빠져 있었습니다. 왜 남자가 그것도 힘의 원천의 주인공이었던 남 자가 왜 여성의식으로 화자를 변화시켜 시를 썼는가에 대한 의문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그 시절 여성의식이 사회적 논의로 거듭날 때 였고 ‘젠더’라는 낯선 단어도 떠오를 때쯤이어서 저는 만해를 통해 여성의식의 진면목을 가름해 보고 싶었 습니다.

      만해 한용운은 단호하고 매몰차면서도 강인한 여성의 내면의식의 힘을 여 성도 알아차리지 못한 세심한 세포적 내적 힘을 사용해 님의 침묵을 이끌어 간 동맥이 되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여성의 강인성은 바로 인간이 지닌 가늠 할 수 없는 힘을 말합니다. 저는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백 번 이백 번 읽으면서 이 땅의 고대소설로 등장하여 전 국민의 정서를 완충지대에 이끌어 올린 춘향의 여성의식을 생각 했습니다. 죽음을 불사하고 자신의 생각을 밀고가는 춘향, 어떤 어려운 난관 앞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는 자아각성의 의식과 아버지의 빚을 갚느 라 스스로 죽음 속으로 뛰어드는 심청의 여성의식을 떠올렸습니다.

      여기서 죽음의식은 바로 삶의 단호한 자기성찰로 이어질 것입니다. 불굴 (不屈)이라는 단어는 한용운 시인과 같은 몸이라고 생각합니다.
      <수(繡)의 비밀>에서 마지막 구절은 《님의 침묵》 전체의 여성지향의 진면 목을 강타한 구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은 주머니는 짓기 싫어서 짓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짓고 싶어서 다 짓지 않는 것입니다”

      미련과 집념은 우주적으로 큰 존재로 부각합니다. 그대를 향한 사모를 남 겨 둘 때 그 대상은 역설적으로 더욱 커지고 왕성한 삶의 의욕으로 죽어도 산 다는, 기어이 살아 있게 한다는 무궁의 한계를 직시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 입니다. 그것이 바로 ‘님’의 힘일 것입니다. 님은 생명력이며 국가의 봉우리며 인간 내면을 지키는 사랑이라는 정신적 깃발이기도 할 것입니다. 이런 큰 상을 받 게 된 영광으로 오늘의 제 목숨을 귀하게 받들며 겸허히 온 우주를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만해사상실천선양회와 조선일보와 심사위원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24606 강원도 인제군 북면 만해로91 동국대학교 만해마을 전화 : 033-462-2303 팩스 : 033-462-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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