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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심작품상 시상식
제18회 유심작품상 시상식
- 일 시 : 2020년 8월 11일 (화) 18:00~19:00
- 장 소 : 동국대 만해마을 문인의 집 대강당
- 선정부문 : 시, 시조, 평론, 특별상
- 수 상 자 : 함민복(시인, ‘악수’), 박시교(시조시인, ‘무게考’), 이승하(문학평론가, ‘한국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오탁번(원로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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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유심작품상 수상자
- 시 부분 함민복/ 수상작 악수
- 시조 부문 박시교/ 수상자 무게考
- 평론 부문 이승하/ 평론집 한국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 특별상 오탁번/ 원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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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 시인(시 부문 수상자) 수상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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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향한 경외심이 내 시의 출발
전등사를 품고 있는 정족산 자락에서 살아온 지 삼 년이 되었습니다. 정족산 위에 반달이 고즈넉하게 떠 있습니다. 태양과 지구와 달은 다 둥글다고 하는데 어찌 직선 그림자가 나와 달을 이등분하는지 반달은 볼수록 신기합니다. 당사자인 먼 달에게 직방으로 물어봐도 답은 없고 침묵만 빛납니다. 아니, 달은 시멘트로 된 작은 연못에 내려와, 이는 물결에 혼자서 춤을 추고 있습니다.
달은 어룽어룽 빛주름이 되고 부서져 반짝반짝 빛 조각이 됩니다. 등나무처럼 몸을 비틀고 순간 사라졌다가 나타나며 보름달이 되기도 합니다. 찰나에 자유자재로 상마저 바꾸는 달의 춤은 물속에서 유연하고 경쾌하지만 깊어 보입니다.
나는 얕아 달의 말을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달이 있어 하늘을 자주 바라다보게 됨을 늘 고마워합니다. 근간에는 미세먼지 상태를 보려 더러 하늘을 보기도 합니다만 이기를 벗고 순수하게 하늘을 보며 마음을 만나기에는 달 보기가 제격인 것 같습니다.
정족산(鼎足山), 솥다리산은 이백여 미터로 낮은 산이지만 안개가 낀 날이면 멀어지고 높아집니다. 정족산성이 있어 공원 지역으로 묶인 덕택에 잘 보존되어 명망 높은 가객들이 모여들기도 하지요. 한겨울에는 부엉이가 밤 울음 당번이었는데 지금은 소쩍새가 이어받았다고 솥쪽 솥솥솥쪽 솥다리산에서 웁니다. 뻐꾸기 소리에 뒤늦게 온 꾀꼬리 소리까지 굵직한 소리꾼들이 다 합류해 소리 향연이 대단합니다.
이 외에도 산이 들려주는 소리가 많은데, 바람 소리도 좋지만 비 내리는 소리도 빼놓을 수는 없지요. 비내리는 소리 중에서도 비가 오기 시작하는 소리는 소리의 백미이기도 하지요. 산의 높은 나뭇잎을 지나 호박잎과 장독대의 항아리와 지붕을 두드리며 달려오는 소리는 확, 온몸으로 들어와 버리지요.
만해의 시는 비가 오기 시작하는 소리처럼 어린 학동의 마음속으로 그리 달려 들어와 주었던 것 같습니다. 만해의 시 <알 수 없어요>는 세계를 향해 질문하는 법을 일깨워줬고, 세계는 끝없이 질문받아 마땅한 존재임도 일깨워줬습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때 받은 세계에 대한 경외심이 질문하려는 마음을 키워줬고 그 힘이 내 시의 출발이 되지는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쇄신과 숙성’을 의미한다는 주역 50번째 정(鼎) 괘를 떠올려주는 정족산 아래서, 커지거나 작아질 수밖에 없는 정점에 선 반달을 보며 나는 “이별은 미의 창조입니다”라고 노래한 만해의 시 구절을 읊조려봅니다. 현재의 나와 이별하려면 끝없이 질문을 던져야 함을, 알 수 없음을 알아야 함을 깨닫습니다.
삶과 시가 일치하는 만해의 유심작품상을 받게 되어 영광스럽고 부끄럽습니다.
솥다리산 아래서 엎어 놓은 솥처럼 더 많이 비우고 정진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며, 만해사상실천선양회와 심사위원님들께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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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교 시인(시조 부문 수상자) 수상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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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루할지라도 비루하지 않으리라
시의 길에 들어선 지도 어느덧 50여 년에 이르렀지만, 아직도 헤매고만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런데 하나 분명한 것은, 내 시와 또한 그와 관련한 삶이 조금은 남루할지라도 절대로 비루하지는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처음 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수상 소식을 접하면서 쑥스럽고 민망한 생각이 먼저 들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여기에 더하여 이러한 결정을 내린 주위에 빚을 지게 되었다는 점에서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더구나 오랫동안 항심(恒心)이 흔들릴 때마다 기댈 언덕이었던 무산 스님의 입적 뒤라서 더 그렇지 않나 싶다.
이제부터 내게 주어진 남아 있는 길을 지금까지보다 더 천천히 걸으며 주위의 사소한 일들도 살펴서 마음에 담아야겠다고 다짐을 해본다. 물론 내 게으름이 감당할 정도를 넘어 힘에 부치거나 욕심이 넘치지 않게 처진할 것도 잊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다.
다시 한번 주위의 따뜻한 손길에 각별한 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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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평론가(평론 부문 수상자) 수상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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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를 계속해서 짝사랑할 것이다
시조를 오랫동안 사랑하였다. 사랑의 종류 중에 짝사랑이라는 것이 있는데 나는 시조를 짝사랑하였다. 대학 2학년 때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조 부문에 투고하여 최종심에 올랐다. 시조가 최종심에 올랐다면 시조를 계속해서 썼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대학 시절에 시창작 교수님(서정주·구상), 시문학사 교수님(함동선), 시론 교수님(김은자) 네 분이 다 시인이어서 시조는 가르침을 받을 수 없었다. 주변에도 시조를 쓰는 학우가 없었다. 최종심에 오른 시조 <도시의 해빙기>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한 번 더 기회가 이었다. 3학년 때였다. <중앙일보> 시도 독자 투고란에 이런 시조를 써 투고하였다.
녹동 맑은 바닷물에
비춰 봐도 씼어 봐도
봄바람 다시 불면
더 깊은 가슴앓이
수척한 네 얼굴에도
분홍 벚꽃 피어나
부여잡고 울었지
너를 안고 잠이 들면
꿈속에도 향수인가
뭍으로만 손 뻗치고
누군들 안 그리우랴
가꿔 온 삶의 텃밭
소망이 물오르듯
풀잎처럼 일어서서
언젠가는 돌 아 가 리
내 작은 이승의 터전
마련되는 날이 오면
이근배 시인이 심사를 했는데 이 시조 <소록도>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특정한 삶의 현장을 시인의 가슴으로 담아서 의지와 희망을 내뿜고 있다. 이런 긍정적인 작품에서 서정성을 잃지 않고 있는 것도 이 시조의 좋은 점이다.”라는 칭찬을 해주셨다. 용기백배하여 시조 쓰기에 매진했더라면 시와 시조가 동시에 당선되는 영광을 누렸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시점에 나는 시와 함께 소설을 쓰고 있어서 시조와의 인연은 그것으로 끝이 나는가 했다.
하지만 시조에 대한 평론을 본격적으로 쓰는 계기가 찾아왔다. 이지엽 선생님 덕분이었다. 태학사에서 ‘우리시대 현대시조 100인선’을 내고 있는데 그중 한 분인 진복희 시조시인의 시집 해설을 쓸 수 있겠냐는 청탁을 하신 것이다. 2000년이었다. 이승하 시인이 시조집 해서도 쓰는구나, 하는 소문이 났는지 시조 전문 문예지와 시조집을 내려는 시인들한테서 청탁이 오기 시작했다. 몇 년 동안 22편을 써 2015년에 첫 시조평론집을 묶어냈다. 첫 시조평론인 <향일성의 시학, 혼신으로 쓴 시조 – 진복희론>에서 제목을 가져와 《향일성의 시조 시학》(고요아침)이라는 제목으로 펴냈다. 이 책으로 다음 해에 인산시조평론상을 받았다. 10권이 넘은 연구서·문학평론집을 냈지만 상을 받은 적이 없는데, 첫 번째 시조평론집으로도 두 번째 시조평론집으로도 큰 상을 받았으니 시조와의 인연이 계속해서 이어질 모양이다.
올해 여름호 《시조21》에 <교과서에 실려야 할 옛시조 20편>이란 제목으로 연재를 시작했다. 중학교 때 교과서에는 시조가 10편 이상 실려 있었다. 수험생 시절에도 시조를 열심히 공부했는데 지금은 대입 수능시험에 시조가 거의 안 나온다. 교과서마다 현대시인의 시는 실려 있지만 현대시조는 실려 있지 않다. 이병기, 최남선, 조운, 이은상, 김상옥, 이호우, 이영도 등의 시조도 교과서에 안 실려 있다. 한국문학번역원에서 60권이 넘는 현대시인의 시집을 외국어로 번역했는데 시조는 고시조집 3권만 번역했을 따름이다. 이런 홀대에도 시조시인과 시조 잡지 편집인들이 다들 침묵하고 있기에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에서 일장 성토를 했다. 이번에 만해사상실천선양회에서 유심문학상 평론 부문에 상을 주신 이유는 계속해서 싸우라는 뜻이 아닌가 한다. 시조문학의 발전을 위해 계속 열심히 연구하는 연구자, 비판하는 평론가의 소임을 다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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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탁번 선생(특별상 수상자) 수상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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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나무와 작은 돛배
만해의 《님의 침묵》에는 알 수 없는 이미지들이 참으로 많다. 아무리 분석을 해봐도 그의 신비스러운 비유는 좀체 그 참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바로 여기에 만해시의 신비로운 열쇠가 숨어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특히 시 <알 수 없어요>에 나오는 다음의 구절이 이런 특징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20년도 더 전 《시와시학》에서 개최한 백담사 여름 시인학교에 참가했을 때였다. 그때 무산 조오현 스님을 처음 만났다. 하루 일과가 끝난 어느 날 스님을 모시고 내 또래 시인 몇이 함께 곡차를 마시다가 잠깐 소피를 보러 밖으로 나왔을 때였다. 바로 지척에 있는 산에는 소나무와 전나무들이 울창했다. 그때 솔개 한 마리가 숲에서 날아오르는 게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만해의 시 <알 수 없어요>에 나오는 ‘꽃도 없는 깊은 나무’라는 말이 퍼뜩 떠올랐다. ‘심심산천’이나 ‘깊은 산골’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거리라는 말에는 종종 수평과 수직의 뜻이 서로 상응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고 ‘깊은 나무’라는 말을 먼 거리에 숨어 있는 나무라고 쉽게 해석해버리면 시적 긴장이 하나도 없는 맥 빠진 비유가 된다. ‘깊은 밤중’이라는 말도 있으니, 자정을 넘긴 어두운 밤중, 보이지 않는 고목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해석해버리면 그것은 시를 설명하는 것은 될지언정 시의 생명인 직관의 찰나적 대응을 간과하는 밍밍한 짓이 된다. 솔개의 눈! 위에서 내려다보니까, 높은 나무가 아니고 깊은 나무가 되는 순간적인 시적 변용이 일어난 것이다.
홍사성 주간이 수상 소식을 전해왔을 때 나는 솔직히 말해 좀 어리둥절 민망했었다. 그는 이어서 ‘특별상’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러면 그렇지, 뒤늦게 무슨 작품상을 생뚱맞게 주겠나. 특별상은 특별한 상 또는 특별히 주는 상의 의미도 있겠으나 번외(番外)나 가외(加外)의 의미도 있을 터이다. 등단 반세기가 넘은, 늙은, 낡은 시인이니까 그냥 나이대접을 하는 거겠지. 이런 생각이 들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날 오후 바로 이메일이 왔는데 보도용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다. 나는 사진을 보내면서, 《유심》이 종간된 처지니까 그냥 상패나 하나 주고 박수나 치는 상이겠지,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상금도 있느냐고 넌지시 물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참 채신없는 짓이라서 내 입방정을 뉘우치고 있는데 바로 답신이 왔다. 제법 많이 준다고 했다. 어뜨무러차! 상금이 너무 무거워서 팔이 저렸다.
홍 주간은 그 특유의 어조로, 저희가 드리는 상이 아니라 돌아가신 무산 스님께서 주는 상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듣자 나는 그만 정신이 아득해졌다. 아아. 스님이 나에게 상을 내리셨다고? 극락의 초원에서 소 머슴 하다가 문득 버릇없는 이 못난이가 생각나신 것일까.
여기서 잠깐. 스님을 스케치한 시 한 편을 꺼내보기로 한다. 어느 해 하안거 걸제 때 백담사에서 스님을 뵌 적이 있다. 나의 시 <순간>은 스스로 생각하건대 스님을 찍은 사진 중에서 제일 초점이 잘 맞았지 싶다. 백담사 극락보전 섬돌 위에 놓인 스님의 흰 고무신! 뇌성벽력 치는 하늘로 노 저어가는 작은 돛배가 눈에 삼삼하다.
음력 4월 15일
하안거 결제날 아침
백담사 극락보전 부처님께
삼배 올리는 스님을
멀찌가니 뒤에서 바라보다가
한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섬돌 위에
스님이 벗어놓은
흰 고무신 한 켤레가
뇌성벽력 치는 하늘로
노 저어가는
작은 돛배처럼 보였다
삼배 올릴 때
무슨 생각했느냐는
나의 물음에
아무 생각 안 했어
스님은 덤덤히 웃었다
은하수 물녘까지
한 순간에 다녀온 듯
가사 자락이 서늘했다
아주 감사한 마음으로 유심작품상 특별상을 받는다. 올여름 만해마을에서 열리는 시상식에 참가하면 나야 별말을 안 하고 그냥 잠잠하고 호젓하게 뒷전에 물러나 있겠지만, 나의 깊은 마음에서 발신하는 그리움의 메시지는 저승까지 전해져서 그걸 본 무산 스님께서 빙그레 웃으실 것 같다.
저승으로 발걸음을 옮기신 지가 하도 오래되는 만해 선사께서는 이제 귀도 눈도 어두워져서 내가 보내는 메시지를 하나도 듣도 보도 못하지만, 매서운 눈초리를 하고 한 말씀 하실 것 같다. 이 바보야. 시는 언어가 아니고 침묵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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