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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사상실천선양회가 만해 한용운의 생명 사랑ㆍ겨레 사랑ㆍ평화 사랑의 큰뜻을 기리고자 제정한 제15회 ‘만해대상’ 각 부문 수상자를 다음과 같이 선정, 발표합니다.
2011년 3월 1일
 수상자 
   
 
-  평화 부문 : 아누라다 코이랄라 (마이티네팔재단 대표)
네팔의 마이티네팔재단 설립자이며 이사장으로 위험한 상황도 마다하지 않고 성매매 추방운동을 헌신적으로 전개했다. 1993년부터 학대받는 1만 2천 명 이상의 성노예 여성과 소녀를 구조하고 재활을 돕고 있는 아시아의 대표적 인권운동가이다.
-  실천 부문 : 시리세나 반다 헤티아랏치 (스리랑카 고고학자)
스리랑카의 저명한 고고학자 및 불교학자로 해박한 고대 언어 실력을 바탕으로 스리랑카 1천 년의 불교유적을 복원하는 데 이바지했다. 초기 불교의 전개 과정 등 중요한 고대의 불교사적 사실을 학문적으로 체계화하여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 문학 부문 : 모옌 (중국 소설가)
인간 삶의 적나라한 실상을 대륙적 입심으로 장엄하게 풀어가는 현대 중국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다. 기상천외한 상상력의 세계를 거침없이 전개하여 아시아 문학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는 데 크게 기여한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 작가이다.
- 문학 부문 : 이근배 (시인)
시조와 자유시의 큰 물결을 하나로 잇는 문학적 성취로 척박한 한국문학의 지평을 넓혀온 시력 50년의 거목이다. 현대시와 시조의 새로운 전범을 제시하면서 우리 민족 고유의 가락으로 활달한 시 세계를 펼쳐온 천생의 시인이다.
 
시상식
일시 : 2011년 8월 12일 오후 2시
장소 :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남북리 인제 하늘내린센터
 문의: 033-462-2304 백담사 만해마을
 
만해대상
만해대상(萬海大賞)은 한평생 나라와 겨레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치시고 순국한 만해 한용운 선생(1879~1944)의 높은 사상과 깊은 정신을 기리고 추모하면서 오늘에 되살리기 위해 만해사상실천선양회가 제정하고 만해마을이 수여하는 상이다.
주지하다시피 만해 선생은 구한말 풍운의 시대에 태어나 일제강점기 내내 자유와 평등사상이라는 인류사적 대의를 바탕으로 나라사랑·겨레사랑이라는 민족사적 과제를 실천하면서 진보와 통일사상의 구현이라는 시대정신에 입각하여 이 땅에 사랑의 철학과 생명사상, 그리고 평화사상을 실현하고자 진심전력 노력하셨던 분이다.
무릇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은 생명을 세상의 제일가치로 알고 존중하며 기려 나아가는 생명사상이 아니겠는가. 아울러 생명을 탄생케 하고 자라가게 하는 사랑의 철학이며, 그것을 꽃피우고 열매 맺게 하는 자유·평등정신과 평화사상이 아니겠는가. 이 점에서 이러한 만해 선생의 정신과 사상을 오늘에 되살리는 일은 이 시대에 민족정기를 회복하고 나아가서 인류가 평화의 길, 행복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이념적 대도(大道)이자 실천적 정도(正道)라고 할 수 있음이 분명하다. 21세기에 있어 이러한 생명사상과 사랑의 철학, 그리고 평화사상이야말로 온 민족과 인류가 추구해 나아가야 할 민족사적 화두이자 인류사적 정신의 지표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이러한 만해 선생의 높은 뜻과 정신이 이 시대 겨레의 가슴에 샘물처럼 솟아나게 하고 마음속에 실핏줄처럼 퍼져 나아가기를 기대하고 염원하는 온 국민의 마음과 정성을 모아 만해대상 평화부문·문학부문 ·학술부문·예술부문·실천부문·포교부문을 제정하는 바이다. 온 겨레의 적극적인 동참과 성원, 그리고 지도편달을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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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회 만해대상(평화부문) 수상자 - 아누라다 코이랄라 (네팔, 인권운동가)
아누라다 코이랄라(Ms. Anuradha Koirala, 62세)는 네팔의 대표적 인권운동가로 카트만두에 소재한 마이티네팔(Maiti Nepal) 재단 이사장이다. 영어 교사 출신인 그녀는 1993년에 마이티네팔 재단을 설립하면서부터 네팔 여성들과 성노예 소녀들의 인권을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하고 있다. 
그녀는 2004년, 2005년 연속으로 네팔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에 선정되었으며, 2005년 세계평화종교연합 평화대사(Ambassador for Peace)를 지냈다. 2007년에는 스페인 소피아 여왕상 은메달과 2008년 UN네팔여성위원회 감사패를 수상했다. 또한 2010년에는 미국 CNN 방송의 ‘올해의 영웅’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녀가 이렇게 범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것은 개인적 희생을 감수하고 벌이는 인권 활동 때문이다. 인도 등지에 성노예로 팔려가는 1만 2천여 네팔 소녀들을 구출한 것을 비롯하여 인도와 네팔 등지에서 온갖 위험을 무릅쓰며 성매매 추방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인도로 구조 활동 여행을 할 때는 경호원들의 호위를 받지 않고서는 활동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신변의 위협을 받고 있다.
‘어머니의 집’이라는 뜻의 마이티네팔은 인신매매 피해 여성들의 구호·재활 단체다. 방 2개로 시작한 마이티네팔을 29개 국내 지부와 전 세계의 후원 네트워크를 갖춘 조직으로 이끈 아누라다 코이랄라가 폭력과 인신매매에 노출된 여성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개인사에서 비롯됐다. 남편의 구타로 세 번이나 유산을 했지만 누구에게 하소연해야 할지 몰랐다. 이런 전력 때문에 폭력 피해 여성들에게 법률 조언을 해주고 재활을 돕는 것이 마이티네팔의 출발이었다.
재단의 사업은 인도에 성노예로 팔려가는 어린 네팔 소녀들을 구조하는 것으로 확장됐다. 마이티네팔은 성매매 업소를 급습하거나 국경을 순찰하면서 인신매매 피해자들을 구조하고 네팔로 돌아온 피해자들에게 쉼터와 재활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빈털터리에 병들고 아이까지 딸린 상태로 귀향하더라도 현실은 냉혹하다. 코이랄라는 “가족은 딸이 돌아온 것에 대해 기뻐하지만 사회는 그렇지 않다”며 “이 소녀들이 교육을 통해 먹고살 길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마이티네팔에서 기초교육과 함께 구슬로 된 팔찌, 가방, 지갑 등을 만드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녀의 이 같은 헌신적인 활동을 본 많은 자원봉사들이 그녀의 활동을 돕고 있다. 많은 자원봉사자들은 젊은 여성과 어린 소녀들로 하여금 성매매로부터 벗어나도록 구조하여 건강하게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아누라다 코이랄라는, “사회는 나의 활동을 거부하지만, 자원봉사자들은 자신의 자매들이 공포의 희생물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녀는 “어린 소녀들은 나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라고 덧붙였다.
미국에서 활동하면서 마이티네팔을 돕고 있는 마이티네팔 선우는 2001년 매사추세츠에서 180개의 비영리 단체들이 참가하여 발족된 단체이다. 브리짓 카잘리스 콜린스(Brigitte Cazalis-Collins)가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마이티네팔의 성 밀매 추방과 인권투쟁 운동을 지원하는 단체이다. 브리짓 부부는 특히 미국에 이민 온 티베트 난민들을 돕고 있으며, 미국에서 네팔 성 밀매의 문제점을 제기하면서 각성을 촉구하는 활동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코이랄라는 지난해 말 미국 CNN 방송이 선정한 ‘올해의 영웅’에 선발됐다. 1만 명이 넘는 후보군 가운데서 인터넷 투표를 통해 영웅을 선정하는 이 행사에서 코이랄라는 CNN이 뽑은 10명의 최종후보 가운데 최다득표의 영예를 차지했다. 그녀는 올해의 영웅 선정식에서 ‘인신매매 없는 사회를 만드는 데 동참해 달라. 이는 우리의 딸들을 위한 일’이라고 호소했다. 10명의 영웅으로 선정된 인물에는 코이랄라 외에 극적으로 구조된 칠레 광부 33명을 비롯, 여성 전과자들의 자활을 돕고 있는 미국의 수전 버튼, 인도의 고아와 빈민을 지원하는 나라야난 크리슈난, 캄보디아 지뢰 제거에 앞장서 온 아키 라, 케냐 농촌에 태양광 발전을 보급하는 에번스 와동고 등이 포함됐다.
아동 성노예 근절을 위해 남편 애슈턴 커처와 함께 ‘데미 & 애슈턴 재단’을 운영하고 있는 영화배우 데미 무어는 코이랄라에 대해 “그녀는 ‘우리 소녀들을 팔지 말라’고 외친다. 그녀는 사창가와 인도―네팔 국경지대를 돌아다니며 매춘을 위해 끌려가는 소녀를 구한다”고 소개했다. 데미 무어는 “코이랄라가 인권 단체 마이티네팔재단을 이끌며 1993년부터 지금까지 1만 2천 명 이상의 여성과 소녀를 구했다”면서 “코이랄라는 단순한 구조활동을 넘어 의료와 교육, 애정을 제공하는 안식처를 마련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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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회 만해대상(실천부문) 수상자  - 시리세나 반다 헤티아랏치 (스리랑카, 역사학자)
S.B. 헤티아랏치(S.B. Hettiaratchi, 72세) 박사는 스리랑카의 저명한 역사학자이자 고고학자이며, 사회문화사가 및 불교학자로 국립 스리자예와르데네뿌라대학교 부총장을 지냈다. 불교적 환경에서 교육을 받고 소양을 길러 오면서도 영국의 현대적 학문을 연마하여 동서의 신구학문 분야에 두루 내공을 쌓은 학자로 손꼽힌다. 싱할라어로 쓴 저서와 역서, 연구 논문 이외에도, 20여 권의 전공서적과 80여 편의 논문을 영어로 발표하였으며, 국내외 유명 저널에 70여 편의 영문 기사를 기고하여 학문적 업적을 인정받은 스리랑카 출신의 세계적 석학이다.
그는 스리랑카에서 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치고 1970년대 초, 런던대학교 동양학/아프리카 학부에서 세계적인 동양학자 케스파리스(J.G. de Casparis) 교수의 지도 아래 〈고대 스리랑카의 사회와 문화의 역사(Social and Cultural History)〉라는 연구논문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스리랑카에 귀국해서는 대학교수로서 평생, 학문 연구와 강의 그리고 고고학 발굴로 일생을 보냈다. 또 국립 스리 자예와르데네뿌라(Jayeward-enepura) 대학교 부총장(당시의 교육법은 대통령이 총장이므로 사실상의 총장 직책), 스리랑카 교원연협회 회장 등을 역임한 교육행정가로서 또한 프랑스 스페인 유네스코 대사를 역임한 외교관으로서도 소임을 무난하게 소화한 다재다능한 인물이다.
그의 전문 연구분야는 역사학, 고고학, 불교학이며, 스리랑카 고대사회와 문화사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동안 20여 권의 중요한 저술을 남겼으며 8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함으로써 스리랑카 최고의 고고학자로서 위치를 다졌다. 특히 그는 5세기 중국의 구법승 법현이 쓴 《불국기(佛國記)》에도 등장하여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무외산사(無畏山寺)인 아바야기리 비하라(Abhayagiri Vihara)에 관한 연구의 제일인자로 정평이 나 있다.
불교사와 고고학 연구에서 헤티아랏치 박사가 이룩한 성과 중 특히 주목되는 것은 유명한 아소카 명문에 새겨진 브라흐미 문자 해독이다. 알다시피 아소카 왕은 고대 인도를 최초로 통일한 위대한 왕이다. 그는 통일전쟁 이후 여러 곳에 석주를 세우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보호하는 칙령을 새겼는데, 이 아소카 칙령이 새겨진 석주와 암각 등이 발굴된 지는 1세기가 넘는다. 그러나 이 칙령의 문자인 브라흐미 문자를 해독하는 사람은 세계를 통틀어 몇 명 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팔리어와 산스크리트어 프라크리티어 외에 고대 인도 언어에 정통한 헤티아랏치 박사의 연구 활동은 국제적으로 주목받았다. 박사는 직접 현장을 방문하여 브라흐미 문자를 확인하고 해독했으며 역사적 사실 관계 논증 등 빛나는 연구로 고대 인도의 정치 경제 종교는 물론이고 특히 불교사의 중요한 사실들을 명확하게 밝혀냈다.
헤티아랏치 박사의 해박한 고대 언어에 대한 지식은 고대 인도불교가 남방으로 진출하는 교두보였던 스리랑카 불교유적지 발굴에서 더욱 빛났다. 예컨대 스리랑카 불교의 뿌리인 북부 지역의 아누라다뿌라 유적은 박사에 의해 그 전모가 밝혀졌다.
아누라다뿌라는 스리랑카 최초의 왕도로서 몇 개의 왕조가 성립했다가 교체된 곳이며, 인도의 부파불교인 상좌부가 아소카 대왕의 친자인 아라한 마힌다 장로에 의해서 최초로 전파된 곳이다. 또 아소카 대왕의 친딸인 아라한 상가미트라 비구니가 부처님 성도(成道)의 상징인 보리수를 부다가야에서 이곳에 이식해 와서 오늘날에는 세계 최고의 보리수로서 보존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도의 승원문화가 시작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헤티아랏치 박사는 바로 이 고대 아누라다뿌라의 유적 발굴에 고고학자로 참여하여, 마힌다 장로가 최초로 불교를 전파하면서 당대의 통치자인 데바남삐야 티사 왕과 만난 미힌탈레 유적과 수천 명의 비구들이 1천여 년 이상 기거했던 승원인 아바야기리 비하라(무외산사)와 마하비하라(大寺) 등의 유적을 발굴했다. 이 두 사원은 1천여 년 동안 인도 스리랑카 고대사원의 전형이면서 인도불교의 적통성에 대한 소ㆍ대승의 교리적 논쟁과 갈등을 불러일으킨 곳이기도 하고, 중국의 법현 스님이 기록한 이른바 《불국기(佛國記)》의 현장이기도 하다. S.B. 헤티아랏치 박사의 학술적 업적은 이런 문헌자료의 섭렵에 의한 고고학적 발굴과 실증을 학문적으로 체계화하여 스리랑카 1천 년의 고대불교 유적을 복원하고 당대의 불교 전개 과정을 보여 주었다는 점이다.
그는 스리랑카는 물론 인도, 동남아, 유럽에 널리 알려진 학자로 2003년부터는 한국에도 몇 차례 방문하여 강연했다. 또한 만해사상실천선양회에서 주관한 세계시인대회와 세계종교지도자대회에 스리랑카 대표로 참가하기도 했다. 지금은 1년에 두 차례 한국의 한 불교대학에서 상좌부불교와 그 사회를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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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회 만해대상(문학부문) 수상자  - 모 옌(중국, 소설가)
현대 중국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로 해외에 널리 알려진 모옌(莫言, 56세)은 이제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도 상당히 친숙한 이름이 되었다. 그의 주요 작품 대부분이 우리말로 번역 소개된 사실만 보더라도, 그에 대한 문학적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볼 수 있다. 본명은 관모예(菅謨業)이나, 글로만 뜻을 나타낼 뿐 ‘입으로 말하지 않는다’는 뜻의 ‘모옌(莫言)’이란 필명을 쓴다.
1955년 중국 산둥(山東) 성 까오미(高密) 현 따란향(大欄鄕) 핑안춘(平安村)의 빈한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문화대혁명이 일어나 학업을 포기했다. 이후 수년간 농사일을 거들고 소를 치는 목동 일을 하다가 18세 되던 해에 면화가공 공장에 들어가 직공으로 일했다. 1976년 고향을 떠나 중국 인민해방군에 입대해 복무하던 중 문학에 눈을 떠, 1978년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으며, 해방군 예술학원에 입학, 1986년에 문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베이징 사범대학과 루쉰 문학창작원에서 문학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1981년부터 창작 활동을 시작하여 인민해방군 총참모부 소속 1급 작가로 일하다가 1997년 사임하고, 〈검찰일보〉에 재직하면서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 1981년 격월간 문예지 《연지(蓮池)》에 단편소설 〈봄밤에 내리는 소나기(春夜雨붉붉)〉로 등단한 그는 1984년 발표한 〈황금색 홍당무(金色的紅蘿蔔)〉(1985년 〈투명한 홍당무(透明的紅蘿蔔)〉로 개작)가 좋은 평가를 얻으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87년 대표적인 장편소설 《홍까오량 가족(紅高粱家族)》을 발표해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이 작품의 일부를 장이머우(張藝謨) 감독이 영화 〈붉은 수수밭〉으로 제작해 1988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하면서 모옌의 작품이 전 세계 20여 개국으로 번역 출간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장편소설 《열세 걸음(十三步)》 《술의 나라(酒國)》 《풀을 먹는 가족(食草家族)》 《풍유비둔(豊乳肥臀)》 《티엔탕 마을의 마늘종 노래(天堂蒜?之歌)》 《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지신다(師傳越來越幽默)》 등을 연달아 발표하였고, 〈환락〉을 비롯한 주목할 만한 중ㆍ단편소설을 발표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위에 열거한 작품 중 《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지신다》는 장이머우 감독에 의해 영화 〈행복한 날들(幸福時光, Happy Time, 2000)〉로 제작되어 호평을 받았다. 《풍유비둔》은 그 특유의 능란한 소설화법을 한껏 즐길 수 있는 빼어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티엔탕 마을의 마늘종 노래》는 1980년대 중국의 개혁 개방 전성기를 배경으로 농촌 마을과 관료 사회의 부패 양상을 탁월한 주제 의식과 기교로 그려낸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외에도 많은 희곡과 텔레비전 드라마 극본을 썼는데, 1997년에 발표한 희곡 《패왕별희(覇王別姬)》는 무대에 올려져 중국 대도시를 중심으로 2개월간 연속 공연되면서 대중에게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1993년에 출간된 《술의 나라》는 프랑스, 독일, 일본 등 여러 나라에 소개되어 큰 호평을 받았고, 중국 최고의 문학상인 따자(大家)문학상을 비롯, 프랑스 루얼 파타이아 문학상, 이탈리아 노니로 문학상,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홍콩 아시아문학상, 일본 후쿠오카 아시아 문화대상 등을 받은 바 있다. 30여 년 동안 자신의 고향인 산둥성 까오미현 둥베이(東北)를 주요 무대로 소설을 창작해 온 그는 현재 중국어권 작가 중 가장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모옌 문학의 매력은 중국현대사의 소용돌이를 뚫고 살아가는 인간의 삶의 적나라한 실상을 대륙적인 입심으로 장엄하게 풀어가는 통렬한 재미에 있다. 중국적인 허풍과 과장을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전개하는 기상천외한 상상력의 세계는 어떤 의미에서 콜롬비아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마술적 리얼리즘 세계와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다.
특히 그의 출세작인 《홍까오량 가족》과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을 대비 분석한 비교문학적 연구가 행해지고 있음을 볼 때, 모옌 문학이 중국적 전통의 테두리 안에만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문학의 보편적 차원에서 창작된 지극히 현대적이라는 점이 확인된다. 활달한 입심의 이야기꾼인 모옌의 장기(長技)가 돋보이는 《인생은 고달파》는 여러모로 주목되는 작품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의 탄생 무렵(1950년)부터 2001년까지 약 반세기에 걸친 중국현대사를 가로지르면서, 작가 자신의 고향인 산둥성 까오미 현의 농민들과 그 후손들이 역사의 질곡 속에서 어떻게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두 극단적 체제를 뚫고 나가는지를 능청스런 문체로 거침없이 묘사해 보여준다.
악덕지주로 몰려 총살당한 서문촌의 지주 서문뇨가 나귀, 소, 돼지, 개, 원숭이, 사람으로 거듭 환생하면서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이 소설은 《삼국연의》나 《수호전》과 같이, 중국의 전통적인 장회체(章回體) 형식을 취하고 있다. 50년이라는 장대한 역사를 다면적 시각으로 폭넓게 그리기 위해 ‘윤회’라는 불교적 상상력을 끌어들인 점도 치밀하게 계산된 서사 전략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또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1인칭 시점(視點)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음에도,‘나’가 육도윤회의 과정을 거치는 구성 형식을 택함으로써, 마치 전지적(全知的) 3인칭 화자의 시점으로 묘사하는 듯한 다성적(多聲的) 효과를 거두고 있는 점이다. 윤회의 순환체계에 착안하여, 중국 현대사 50년의 소용돌이를 헤쳐온 인간들의 고투(苦鬪)를 장쾌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작가적 역량은 높은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
모옌은 최근 들어 한국에서 개최하는 ‘동아시아 문학포럼’‘한중 문학인대회’‘세계작가 문학포럼’ 등에 계속 초청되어 한국작가들과 연대감도 열정적으로 나누어 갖는 진정한 의미에서 친한파 작가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무엇보다도 미국 작가 토마스 잉게(M. Thomas Inge)가 극찬했듯이 “노신(魯迅)과 노사(老舍) 이후 가장 전도유망하고 개성 있는 세계적인 중국 작가”로서, 아시아 문학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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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회 만해대상(문학부문) 수상자 - 이근배 (한국, 시인)
한국시의 뿌리는 시조에 있고 현대시는 그 뿌리로부터 잎과 꽃과 열매를 맺으며 자라고 있다. 이 땅의 현대시 100년 역사는 시조와 자유시의 두 큰 그릇으로 뻗어 간다. 이근배(李根培, 71세)는 한국시의 정체성인 시조와 자유시의 큰 물결을 하나로 잇는 독보적 시인이다.
1961년 〈경향신문〉 〈서울신문〉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조로 당선한 이후 1962년 〈동아일보〉(시조), 〈조선일보〉(동시), 1963년 제2회 문공부 신인예술상 시부 수석상, 시조부 수석상, 1964년 〈한국일보〉 시 당선, 1964년 제3회 문공부신인예술상 문학부 특상(시)을 수상했다. 이처럼 시인은 1960년대의 개막을 시조, 시, 동시 등으로 징소리를 낸 이후 올해로 시력 50년을 맞는 동안 시조와 시 쓰기에 쉬임 없이 붓을 들어 왔다.
등단과 함께 ‘신춘시’ 동인으로 1960년대 자유시단의 중심으로 나서는 한편 한국시조시인협회 창립이사(1964), 한국문인협회 시조분과위원장(1973)으로 선두에서 현대시조의 중흥을 이끌어 시조 인구의 확장과 시조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저 엄혹한 군사통치하의 문예지 기근 시대에 월간 《한국문학》을 발행, 주간을 역임하며 1970~80년대 한국 문학의 넓은 땅을 개간하였으며 1984년에는 신문 사상 최초로 장편서사시 〈한강〉을 1년간 〈한국일보〉에 연재, 노산 이후의 대문장이라는 평을 얻기도 하였다.
시조로는 가람, 노산, 조운의 맥을 잇고 자유시로는 만해, 지용, 미당의 시정신을 담아내며 민족적 화두를 우리네 고유의 가락으로 엮어내는 그의 활달한 시 세계는 마침내 한국시조시인협회장(1994)과 한국시인협회장(2002)을 맡아 아직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시조와 자유시가 둘이 아니고 하나임을 입증하는 큰 몫을 해낼 수 있었다.
면암(勉菴) 문하의 거유(巨儒) 장후재 학사의 외손자이며 유학자 이각현 공의 손자로 어려서부터 유가의 학풍을 익혀 왔다. 수덕사, 마곡사 등 대가람을 기도처로 불공을 올린 조모의 영향으로 불심을 키워 토함산 불국사의 석굴암 통일대종 명문을 쓰게 되었고 이후 명산대찰의 모연문 비문 등을 지어내 설악산 신흥사 사문으로 법계를 받기도 하였다.
2006년에는 현대시조 100년의 해를 맞아 만해축전의 대표 행사인 세계민족시대회 집행위원장으로 민족시 국제심포지엄을 최초로 주관했고 고유제, 시조시화전을 여는 한편 문단사에 처음으로 대표 현대시조를 작곡, KBS홀에서 연주회를 개최하는 등 현대시조 100년의 장엄한 대축제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또한 서울예술대학, 동국대, 중앙대, 추계예대 등 대학 강단에서 시창작 강의로 이름을 떨쳤다. 재능대 초빙교수를 거쳐 현재도 중앙대 예술대학원 석박사 통합 과정의 시창작 강의를 맡고 있으며, 신성대학 석좌교수로 칠순이 넘는 나이에도 강단에 서고 있다.
그의 첫 시집 《노래여 노래여》는 시 쓰기의 본보기 교재로 널리 읽혔으며 시조집 《동해바닷속의 돌거북이 하는 말》은 현대시조의 한 전범을 보여준다. 국가의 대사와 언론, 문화계의 주요 행사시를 모은 기념시집 《종소리는 끝없이 새벽을 깨운다》는 이근배의 시적 역량의 절정을 이루고 있으며 〈중앙일보〉에 3년에 걸쳐 연재했던 《시가 있는 국토기행》은 이 땅의 시의 백두대간을 새롭게 개간한 역저로 꼽힌다.
신문학 이후 문단사의 큰 스승을 모시는 일에도 앞장서서 지용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오늘까지도 공초숭모회 회장, 사단법인 심훈 상록수 기념사업회 공동대표, 만해시인학교 교장으로 일하고 있다.
인류의 언어 가운데 가장 위대한 우리의 모국어를 시와 시조의 틀에 앉혀 독창적인 자기 세계를 이룬 시인 이근배의 시력 50년이 이룩한 상찬할 만한 기록은 이루 헤아리기 어렵다. 중앙시조대상, 가람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육당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유심작품상, 시와시학작품상, 고산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문인으로서 최고의 영예인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2008)에 선임되었다. 이는 그의 문학적 성취와 더불어 문학사에 끼친 공적과 품성의 순열함을 공인받은 결과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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