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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회 만해대상에 이동건 회장 등 6명
만해축전서 시상식 가질 예정
 
사진 왼쪽부터 학술부문 존 던컨(65) 미국 UCLA 동아시아학과 한국학연구소장과 김학성(65) 성균관대 교수, 평화부문 이동건씨. 문학부문 소설가 존 랠스톤 소울(63. 국제펜클럽회장), 실천부문 사회복지법인 인덕원 이사장인 성운스님(59), 문학부문 시인 정진규(71.현대시학 주간)씨.
만해사상실천선양회(총재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는 제14회 만해대상 수상자로 이동건 전 국제로타리클럽회장(72) 등 6명을 선정했다고 2일 밝혔다.

만해사상실천선양회가 선정한 부문별 수상자는 평화부문 이동건씨를 비롯해 문학부문에는 소설가 존 랠스톤 소울(63. 국제펜클럽회장), 시인 정진규(71.현대시학 주간)가 공동수상하게 됐고, 학술부문에는 김학성(65) 성균관대 교수와 존 던컨(65) 미국 UCLA 동아시아학과 한국학연구소장이 공동수상자가 됐다.

또 실천부문에는 사회복지법인 인덕원 이사장인 성운스님(59)이 선정됐다.

만해 한용운(1879-1944)의 생명ㆍ평화사랑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선정된 만해대상의 각 부문 수상자에게는 상금 3000만원이 수여되며, 시상식은 올해 8월 중순 만해축전 기간에 백담사 만해마을에서 열린다.

평화부문 대상 수상자인 이동건씨는 2008년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100년의 역사가 넘는 세계최대 민간봉사단체 국제로타리클럽 회장으로 취임해 봉사활동에 앞장섰다.

문학부문 대상 공동수상자인 존 랠스톤 소울은 세계 22개 국어로 30개국에 작품이 번역된 캐나다 출신의 소설가이자 다큐멘터리 작가이며, 정진규 시인은 시집 '몸詩' 등을 통해 몸과 시는 불이(不二)의 관계라는 불교적 세계관을 드러낸 중견시인이다.

학술부문 수상자인 김학성 성균관대 국문과 교수는 고전시가의 미학과 정체성을 규명해온 국문학자이자 미학자로 현재 한국고전문학회 편집위원장도 맡고 있다.

UCLA의 던컨 박사는 주한미군으로 근무하다가 고려대에 편입해 한국학을 공부했고 한국여성과 결혼해 한국말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미국 학자다. 조선왕조 건국과 조선유학, 민족형성 등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다.

서울 은평구 삼천사 주지인 성운스님은 30여년간 노인, 어린이, 군인, 노숙자, 재소자 등을 위한 복지 포교에 헌신해왔고, 특히 1994년에는 사회복지법인 인덕원을 설립해 산하에 총 36개 시설을 두고 700만명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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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회 이동건.jpg
제14회 만해대상(평화부문) 수상자 - 이동건 (한국, 국제로타리 2008-09년도 회장)
The 14th Manhae Prize(Peace) Winner - Lee Dong-geon (formar president of the International Rotary Club)
 
1. Reason of Award
 
Former president of the International Rotary Club, Mr. Lee Dong-geon has practiced "Noblesee Oblige," which is the spirit required from the upper class of wealth, power, and reputation to fulfill social and moral responsibilities. In 2008, he was elected president of the International Rotary Club, the world's largest private volunteer group with more than 100 years of history, the first Korean to do so. Since then, he has taken the lead in making the world "a place for all" by doing active volunteer works.
He was born as the 15th descendent of Hoijae Lee Eon-jeok, one of the Orient's Five Wise Men, at Yangdong-ri, Gangdong-myeon, Gyeonggju City, Gyeongsangbuk Province in 1938. Influenced by his deceased father Lee Won-gap, the former president of the 366 District of International Rotary, he became a Rotarian. The manager of Bubang, he is an entrepreneur who received the Industrial Service Merit and Stone Tower and was an honorary ambassador to Italy. Serving the club as the president of District 3650, he created 32 clubs and attracted 1,783 new members in 1996 and won first prize at the 87th Calgary International Competition as the world's No.1 district for membership enlargement. He thus promoted the high status of Rotary Korea to all people around the globe.
In 2008, he started his office as the president of International Rotary and took the initiative in all kinds of volunteer works under the motto of "Make Dreams Real." One of his top priorities was to reduce the mortality of infants and young children that amounted to 30,000 per day in third-world nations. His activities deserve the description energetic; he visited a city every two or three days and encouraged the Rotarians. Using the fund of 500 million won raised on "Day of Rotary Korea" around his inauguration, he built a hospital dedicated to save mothers and their children in Tumbi, Tanzania, which was one of his specific achievements during his term.
Another achievement of his was heart disease operations provided to children in third-world nations around the world. For three years from the time since he was the presidential nominator of International Rotary, the mortality of infants and young children under 5 dropped by 4,000 or so to 26,000 a day. International Rotary made a huge contribution to the inspiring progress under his leadership. He plans to continue the project in cooperation with district presidents around the world that he worked with during his term even after his term is over.
One of the biggest achievements of International Rotary is the eradication of polio. In 1985, it declared its determination to eradicate polio, a disease that infected 350,000 children per year. Since then, it invested over US$600 million and induced participation from more than 1 million volunteers to vaccinate a total of 2 billion children against polio. As a result, polio was eliminated in more than 99% in the world, but unfortunately India, Nigeria, Pakistan, and Afghanistan still witness new polio patients. Mr. Lee Dong-geon received a generous donation of 355 million dollars from Bill Gates, co-chairman of the Bill and Melinda Foundation, and about half of its fund amounting to 31 billion dollars was donated by Warren Buffet, a world-renowned investor. Bill Gates' large donation to International Rotary demonstrates his absolute trust in it.
In addition, Mr. Lee was committed to humanitarian works that addressed water shortage, famine, and public health and educational projects with scholarships to eliminate illiteracy. His interest also expanded to planting trees in the Gobi Desert of Mongolia to resolve the Yellow Sand Storm and treating prostate disease for free in areas where there was no medical service.
He has devoted 38 years of his life to volunteering since he joined Rotary in 1971. Rotary's spirit of "Service above Self" inspired his life as a Rotarian, and he heightened the national glory of Korea by leading 1.23 million Rotarians as the president of International Rotary, the first Korean in this position.
The Rotary Movement started in Korea in 1927, when the Gyeongseong Rotary Club was formed and approved to join International Rotary. In December, 1960, the board of International Rotary decided to set up an independent district in Korea starting from July 1, 1961. Thus District 375 was formed. Rotary Korea entered a new era as  Independent Zone 9.10A on July 1, 1995 and produced a director for International Rotary with a two-year term every four years. Today Rotary Korea has 17 districts, 1,460 clubs, and about 60,000 members. Established in 1973, the Scholarship and Culture Foundation of Rotary Korea has raised more than 84 billion won and donated it to a broad range of scholarship projects.
Rotary Korea has evolved into the world's fourth largest Rotary in membership and a core member nation in contribution following the U. S. and Japan. Producing the first Korean president of International Rotary, Mr. Lee Dong-geon, Rotary Korea has implemented the spirit of volunteering as a global Rotary both in name and practice.
His activities made him a deserving recipient of the Manhae Grand Prize in Peace.
 

1. 수상자 선정 이유
 
전 국제로타리클럽 이동건 회장은 부와 권력과 명성을 가진 상류계층의 사람일수록 사회적 도덕적 높은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을 실천해 온 인물이다. 2008년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100년의 역사가 넘는 세계 최대 민간봉사단체 국제로타리클럽 회장으로 취임한 그는 활발한 봉사활동을 통하여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드는 데 앞장서 왔다.
1938년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에서 동방 5현의 한 분인 회재 이언적 선생의 15대손으로 태어난 이동건 선생은 부친인 고(故) 이원갑 국제로타리 366지구 전 총재의 뒤를 이어 로타리인이 되었다. (주)부방의 경영주이기도 한 그는 산업인으로 석탄산업훈장을 받았으며 이탈리아 명예대사를 지내기도 했다. 이동건 회장은 3650지구 총재로 재임하던 1996년 32개 클럽을 창립하고 회원 1,783명을 영입해 회원 증강 세계 1위 지구로 선정되어 제87차 캘거리 국제대회에서 우승 트로피를 수상, 전 세계인들에게 한국 로타리의 위상을 드높였다.
2008년 국제로타리 회장으로서 임기를 시작한 이동건 회장은 ‘꿈을 현실로(Make Dreams Real)’를 구호로 내걸고 각종 봉사활동을 전개했다. 그는 매일 3만 명씩 죽어가는 제3세계 영유아 사망률 줄이기를 역점 사업목표로 내걸고 정력적인 활동을 펼쳤다. 그는 임기 중 2, 3일에 도시 하나씩을 방문해 로타리인들을 격려했다. 그의 국제로타리회장 취임에 즈음해 열린 ‘한국 로타리의 날’에 모금된 5억 원을 바탕으로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툼비에 모자 구호병원을 지은 것도 구체적인 실천 사례 가운데 하나이다.
그는 또한 제3세계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심장병 수술도 범세계적으로 시행했다. 그가 국제로타리 회장에 지명된 시점부터 3년여 동안 전 세계의 5세 미만 영유아 사망자 수가 하루 2만6천 명 선으로 4천여 명 줄어들게 된 데는 그의 지휘에 따른 국제 로타리의 기여가 컸다. 국제 로타리 회장 퇴임 이후 그는 그와 임기를 함께했던 전 세계의 지구 총재들과 함께 이 사업을 계속 펼쳐나갈 계획이다.
국제로타리의 가장 큰 업적은 소아마비 박멸이다. 1985년 국제로타리는 전 세계에 매년 35만 명씩 발병하고 있는 소아마비를 퇴치할 것을 결의했다. 그때부터 미화 6억 달러 이상을 투입하고 100만 명 이상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해 모두 20억 명에 이르는 어린이들에게 백신을 투여했다. 이 결과 전 세계적으로는 소아마비가 99% 이상 퇴치됐으나 인도,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아직도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
이동건 회장은 소아마비의 완전 박멸을 위해 빌과 멜린다 재단의 빌 게이츠 공동의장으로부터 3억 5천5백만 달러의 기부를 받는 데 성공했다. 빌과 멜린다 재단의 기금 가운데 절반에 달하는 310억 달러는 세계적인 투자자인 워런 버핏이 기부한 것이다. 빌 게이츠 의장이 국제로타리에 거액을 쾌척한 것은 로타리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동건 회장은 이 밖에도 물 문제의 해결과 기아 및 보건 위생 등의 인도주의 사업 그리고 문맹 퇴치와 장학금을 통한 교육 사업 등도 펼쳤다. 황사 문제의 해결을 위해 몽골의 고비사막에 나무를 심는다든가, 무의촌 지역을 대상으로 한 전립선 무료진료 사업 등도 그의 관심사였다.
1971년 로타리에 입회한 그는 오늘까지 38년 동안 봉사로 일관해 왔다. 로타리안으로서의 그의 삶은 ‘나를 넘어 남을 위해 봉사한다(Service Above Self)’는 로타리의 모토처럼 그의 삶을 고양시킨 계기도 되었으며, 마침내 한국인 최초의 국제로타리 수장에 올라 전 세계 123만 로타리안들을 지휘함으로서 국위를 선양했다.
우리나라의 로타리 운동은 1927년 경성 로타리 클럽이 창립되고 국제 로타리 가입이 승인된 것이 그 시초이다. 1960년 12월 국제로타리 이사회는 1961년 7월 1일 우리나라에 독립된 지구 설립을 결의해 375지구가 탄생하게 되었다. 한국로타리는 1995년 7월 1일을 기하여 단독 ZONE 9.10A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고, 4년마다 2년 임기의 국제로타리 이사를 배출하게 되었다. 현재 한국로타리는 17개 지구 1,460여 클럽에 회원 수 6만여 명이다. 지난 1973년에 한국로타리 장학문화재단이 설립돼 현재 840억 원이 넘는 기부금을 모아 장학 사업을 폭넓게 벌여오고 있다.
한국로타리는 현재 회원 수 세계 4위, 재단 기여도 면에서 미국, 일본 다음의 로타리 강국으로 부상하였다. 또한 한국인 최초로 이동건 국제 로타리 회장이 탄생해 명실 공히 세계 속의 한국로타리로서 봉사의 이상을 실천해 나가고 있다.
이와 같은 그의 활동은 만해대상 평화 부문 수상자로서 손색없다고 할 것이다

2. Ippression of Manhae Prize
 
Hello.
Today is one of those days I will never forget as long as I live, because I have been awarded a prize in honor of a Buddhist Priest and the people's model, Han Yong-un. It is an especially huge honor for me, the recipient of the Manhae Grand Prize in the category of peace, the former awardees of which include Nelson Mandela, the former president of South Africa, and the Dalai Lama, the spiritual leader of Tibet. My deepest gratitude goes out to the Society for the Promotion and Practice of Manhae's Thoughts and its president Jaseung along with High Priest Jo Oh-hyeon and the jury who worked so hard.
I am a Rotarian who has been an active member of Rotary movements for the last 40 years. The International Rotary Club was founded in 1905 and is the world's first and largest private voluntary group with 1.23 million members in more than 200 countries and self-governing dominions across the world.
One of its greatest achievements was to eradicate polio. Today Rotarians worldwide are volunteering for clean water, salvation from famine and diseases, crusades against illiteracy, and encouragement of learning all over the world.
Serving the club as president, I placed the greatest focus on reducing the mortality of infants and young children under five. I went into a tremendous shock when I first found out that about 30,000 infants and young children aged from 3 to 5 died every day due to the absence of a simple prescription. Thus I began a project to solve the situation even when I was a presidential nominee and have been devoted to the cause with other Rotary leaders around the world even until today, after finishing my presidential term. Right after this award ceremony, I will fly to Tanzania, one of the world's poorest nations in Africa, and join the ceremony of the completion of a salvation center for mothers and their children we have worked on. Today the mortality of young children under five has declined to 25,000 per day. The Manhae Grand Prize I receive today is a glorious compliment and encouragement of those Rotary activities and a huge honor for the club.
One of the expressions that capture the Rotary Spirit best is its motto "Service above Self," which is in the line of "Volunteering for Others instead of Me" and "Volunteering beyond Self."
I believe the Rotary Club's "Service above Self" is connected to the charity of Buddhism. The Buddhist Scriptures contain a good number of episodes on sacrificing oneself to save others. Telling stories about the Buddha's former life, the Jataka is comprised of 542 tales before his reaching Buddhahood and teaches us that we must devote ourselves to others to reach Buddhahood ourselves. The Rotary Spirit can also be understood as a commitment to infinite love for the alienated and service for the suffering. We Koreans were able to overcome a crisis in the ruins after the Korean War thanks to the assistance of many friendly nations and international organizations. It is our human loyalty and duty to assist other nations in need of help today.
My 15th generation ancestor is Hoijae Lee Eon-jeok, a Confucian scholar in middle Chosun. I was born in Yangdong Village, Gyeonggju where he used to live. Present in today's ceremony, Mr. John Ralston Saul, the president of International PEN, wrote in his philosophical essay The Unconscious Civilization that he found Korean beauty in perfect harmony between ideology and residence after taking a tour of Hoijae's old mansion. I deeply appreciate him as one of Hoijae's descendents.
I grew up in a Confucian family tradition according to the family history. My father was also a Rotarian. As a matter of fact, I naturally became one watching him doing all kinds of voluntary works at the club while growing up. I know he was not happy with me taking office at the organization, but I am more than certain that he would be proud of me receiving the prestigious award.
Respectful people of the Manhae Grand Prize,
There are endless people who shed light onto the world with their sacrificing voluntary works. I understand that the true meaning of me receiving this honorable prize is to encourage me to work harder for neighbors and mankind. Because of this I will donate the entire prize money to the peace programs of the International Rotary Club, which is one organization that is capable of doing global voluntary works most efficiently, thus further promoting the name and spirit of Manhae in the international society.
I am once again deeply thankful for this huge honor and hope all of you will reach Buddhahood.
 
2. 수상소감
 
로타리 봉사 정신은 보살행의 실천
안녕하십니까?
민족의 사표이신 한용운 스님의 이름으로 된 이 상을 받는 오늘은 저로서는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 더욱이 넬슨 만델라 남아공 전 대통령과 티베트의 영적 지도자이신 달라이 라마 성하가 받으신 만해대상 평화 부문을 수상하게 돼 제 생애의 가장 큰 영광입니다. 이 상을 주관하시는 만해사상실천선양회와 자승 총재님 그리고 노고를 아끼지 않으신 설악무산 큰스님과 심사위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는 40년 동안 로타리 운동을 해 온 로타리안입니다. 국제로타리는 1905년에 창설돼 오늘날 세계 200개 이상 국가와 자치령에 123만여 명의 회원을 갖고 있는 세계 최초 최대의 민간 자원 봉사 단체입니다.
국제로타리가 한 일 가운데 가장 큰 업적은 소아마비의 박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세계 도처에서 로타리안들은 깨끗한 물의 공급과 기아, 질병 해소, 문맹 퇴치, 장학 사업 등을 위해 봉사하고 있습니다.
제가 국제로타리 회장으로 일하면서 가장 역점을 두었던 사업은 5세 미만 영유아의 사망률을 줄이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간단한 처방만으로 충분히 살릴 수 있는데도 죽어가는 제3세계의 5세 미만 영유아들이 하루 3만 명에 이른다는 믿을 수 없는 사실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는 회장 지명자 시절부터 이 일에 뛰어들었고 회장 임기가 끝난 오늘까지도 저와 임기를 함께했던 세계의 로타리 지도자들과 이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 시상식이 끝나면 저는 세계 최빈국인 아프리카의 탄자니아에 가서 그동안 지어오던 모자 구호병원 준공식에 참석해야 합니다. 지금은 5세 미만 어린이 사망자 수가 하루에 2만5천 명 선으로 줄었습니다. 저에게 상을 주신 것은 이런 로타리 운동에 대한 치하와 격려로 여겨져 국제 로타리의 영광이기도 합니다.
로타리 정신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말은 ‘나를 뛰어넘는 봉사’입니다. ‘나를 생각하지 않는 봉사’ ‘초아의 봉사’ ‘Service above Self’는 로타리의 표어입니다.
저는 로타리의 ‘초아의 봉사’ 정신이 불교의 자비의 실천과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희생함으로서 남을 구하는 자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모습은 불교의 경전에 수없이 나옵니다. 부처님의 전생담을 모아놓은 ‘자타카’는 부처님 성불하시기 전의 설화 542가지가 소개돼 있는데, 이는 우리가 성불하자면 남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라고 하겠습니다. 로타리 정신은 바로 소외된 이웃에 대한 끝없는 사랑과 고통받는 이웃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는 보살행을 따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6·25의 폐허 속에서 많은 우방국과 국제기구의 도움으로 위기를 극복했던 우리 한국인으로서는 오늘날 우리보다 어려운 나라에 도움을 주는 것은 인간적인 의리와 도리를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15대조는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이신 회재 이언적 선생이십니다. 제 고향 경주 양동마을은 회재 선생께서 사시던 곳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계신 국제펜클럽의 존 랠스톤 소울 회장께서 회재 선생의 고택을 둘러보시고 사상과 거주지의 완벽한 일치에서 한국의 미를 발견했노라고 철학적 에세이 《무의식적 문명》에 쓰셨습니다. 회재 선생의 후손으로서 소울 회장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는 그런 집안 내력으로 어릴 때부터 유교적인 가풍 속에서 자랐습니다. 또한 제 선친께서도 로타리안이셨습니다. 저는 선친께서 로타리를 통한 봉사 활동을 하시는 것을 보며 자랐고 자연스럽게 로타리안이 되었습니다. 당초부터 선친께서는 제가 로타리의 현직을 맡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셨지만 오늘 이 상을 받는 저를 보신다면 대견하게 생각해 주실 것 같습니다.
존경하는 만해대상 관계자 여러분.
이 세상에는 자신보다 남을 우선하는 봉사 활동으로 세상을 밝히고 계시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저에게 이 큰 영광을 베풀어 주시는 참뜻은 함께 사는 이웃과 인류를 위해 앞으로 더 열심히 일하라는 격려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께서 베풀어 주신 상금은 국제로타리 평화 프로그램에 기부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세계적인 봉사 활동을 가장 효율적으로 펼 수 있는 단체가 바로 국제로타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해 선생님의 이름과 정신이 국제사회에 보다 더 크게 현창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저에게 이 큰 영광을 베풀어 주신 여러분께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부디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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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회 성운스님.jpg
제14회 만해대상(실천부문) 수상자 - 성운스님 (한국, 사회복지법인 인덕원 이사장)
The 14th Manhae prize(Practice) Winner - Buddhist Priest Seongwoon (chief Director of Indeocwon Social Welfare Corporation)
 
1. Reason of Award
 
The Buddhist priest Ja-an Seongwoon (Seo Byeong-jin) is one of the utmost figures in the Buddhist community who has devoted himself to welfare propagation for the elderly, children, the disabled, soldiers, the homeless, and prisoners for 30 years, believing that the practice of benevolence is his ascetic exercise and propagation. Predicting that Korea would become an aging society early, he set up the Indeocwon Social Welfare Corporation in 1994 and presented a new model for welfare propagation by founding the Indeoc Welfare Center for the Elderly at Home, taking a lead in running a short-term shelter for senile old people, and opening the nation's largest nursing home for the elderly.
Indeocwon Social Welfare Corporation of Samcheon Buddhist Temple today directly runs 20 facilities and commissions the operation of 16 facilities with 7 million users per year.
Admired as the pioneer of Buddhist welfare for the elderly, Seongwoon engages in the largest-scale welfare propagation run by a single Buddhist temple (Samcheon Buddhist Temple). Its facilities were appointed as the best ones thanks to the size and the programs that conveyed Buddha's teaching. Their operations were so exemplary that about 100 welfare facilities around the nation benchmarked them. In his welfare propagation for the elderly, Seongwoon helps patients of chronic diseases that emerged as social issues such as dementia and palsy, furthers support to their families and contributes to the health and life quality of the elderly. For instance, he brought joy to some 3,700 elderly by giving out free dentures at the Eunpyeong Total Welfare Center for the Elderly over ten years.
Seongwoon became a Buddhist priest at Beopju Buddhist Temple in Mt. Sokri and studied Buddhism and did meditation and cultivation in Buddhist temples in Gangwon such as Haein, Hwaeom, Woljeong, and Yongju. He took office as the social director of the Jogye Order, president of the Correctional Committee of Seoul Prisons, head of the Eunpyeong Total Welfare Center for the Elderly, member of the Welfare Department of Democratic Pyeongtong, acting chief director of Life Share Association Headquarters, and chief director of Punggyeongsori, a sutra chanting meeting at subways. Today he also teaches at the Graduate School of Dongguk University as an adjunct professor.
In 1978, he was appointed to Samcheon Buddhist Temple in Eunpyeong-gu, Seoul, which was as good as abolished, as the head priest. For 30 years since then, he has been devoted to the restoration of the temple by constructing about 30 new buildings including the lecture hall and Yosachae. Today the temple has about 200,000 members who worship, pray, and cultivate every year. Furthermore, he shared commodities, briquettes, and rice to the residents of nearby towns to be abolished, wounded soldiers, pneumonia patients, and the residents of shanty quarters. He also opened the door to teens by volunteering to represent and guide delinquent teens.
He formed the Association of Buddhist Temples of Eunpyeong consisting of 30, held joint Buddhist events, promoted harmony among them, guided the formation of a meeting of Buddhists among public servants and policemen, and supported Buddhist ceremonies every week. He also took a lead in local propagation by granting scholarships to the children of model Buddhist public servants and the boys and girls who were the heads of their families regularly through Buddhist ceremonies to pray for the nation and locals, the spirits protecting the nation, and the people at the end and beginning of thu year.
It was in 1994 when he founded the Indeoc Social Welfare Corporation that he started social welfare activities more aggressively. The corporation expanded its scope of welfare propagation by running welfare centers for the elderly and childcare centers. As of December, 2009, he runs 23 welfare facilities for the elderly, 5 childcare centers, 2 local social welfare facilities, 5 local culture and welfare facilities including a library and reading room, and others including life facilities, shelters for the homeless, and houses of hope. Under his supervision, the Indeoc Total Welfare Center for the Elderly was reborn as a 21st century specialized welfare town for the elderly with 300 beds and state-of-the-art facilities in July, 2009 after running 120 beds for the elderly suffering from dementia and palsy for a while in order to serve the elderly population of the nation, which entered the stage of an aging society. Today 442 senior citizens receive a variety of welfare services at the center, which boasts a one-stop total care system encompassing medicine, rehabilitation, leisure and daily life. It also created 200 new jobs in the economic crisis, called the second Korean foreign currency crisis. Its annual budget was about 16 billion won in 2008. There are 450 employees and 200 daily volunteers who serve 7 million users at 36 facilities every day. Thus they are praised for writing a new chapter in the history of Buddhist welfare propagation.
Seongwoon has exhibited extraordinary passion for producing welfare experts and improving the concerned systems. Teaching at the Graduate School of Buddhism at Dongguk University, he created the first Buddhist social welfare course at the Department of Buddhist Welfare, gave lectures about the field practice of social welfare, and produced 50 students with graduate degrees.
As a member of the religion committee of Seodaemun Prison in Seoul since 1978, he has made efforts to correct and educate prisoners by giving counseling service to those who have no relations and holding a 49 jae service and a total of 1,200 Buddhist ceremonies. As a member of the guidance committee at the Prosecutors' Office, he gave a total of 160 sessions of correctional propagation including probation for delinquent adolescents and sending out 100,000 books to prisons across the nation. Furthermore, he was involved in a movement to eliminate capital punishment. Being recognized for his efforts in correctional propagation, he received many awards from the warden, Minister of Justice, Prime Minister, President, and others.
His incomparable love for books is well demonstrated by his movement sending out 100,000 books on Buddhism to prisons around the nation. Eunpyeonggu Library, which he was commissioned to run, was appointed as the best library due to diverse cultural programs including "Service of Book Rain," a total network of local public libraries. So far 150 organizations including the National Library and Constitutional Court have benchmarked it.
Recognized for his activities and achievements, he received about 100 medals from the Mayor of Seoul, Minister of Justice, Minister of Public Health and Welfare, Minister of Unification, Prime Minister, and President. In 2005, he was awarded the Dongbaek Medal for his contributions to the nation and society.
 
1. 수상자 선정 이유
 
자안(慈顔) 성운(聖雲) 스님은 자비 실천이 곧 수행이고 포교라는 신념과 원력으로 30여 년간 노인, 어린이, 장애인, 군인, 노숙자, 재소자 등을 위한 복지포교에 헌신해 온 한국 불교계의 대표적인 사회복지 활동가이다. 일찍부터  우리나라가 고령화사회로 진입할 것을 예견하고 1994년 사회복지법인 인덕원을 설립한 스님은 인덕재가노인복지센터 설치, 치매노인 단기보호소 운영 등에 앞장섰고 국내 최대 노인전문요양원을 개원하는 등 복지포교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현재 삼천사 사회복지법인 인덕원 산하에는 직영시설 20개, 위탁시설 16개 등 총 36개 시설이 있으며 연 이용인원만도 7백만 명에 이른다.
불교노인복지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는 성운 스님은 단일사찰(삼천사)이 운영하는 최대 규모의 복지포교를 하고 있다. 인덕원 산하 시설은 규모뿐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이 담긴 프로그램 개발에도 총력을 기울여 최우수 시설로 선정됐고 전국 100여 개 복지시설에서 벤치마킹해 갈 정도로 모범적인 운영을 하고 있다. 성운 스님의 노인복지 포교는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치매, 중풍 등 만성질환자와 부양가족들의 어려움을 돕고, 노인 건강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그 한 예로 은평노인종합복지관은 10년간 노인 3,700여 명에게 틀니를 무료 시술해 노인들을 기쁘게 했다.
성운 스님은 속리산 법주사로 동진 출가하여 해인사 화엄사 월정사 용주사 등의 강원과 선원에서 경학과 참선수행을 했다. 조계종 사회부장, 종회의원, 서울구치소교정협의회장, 시립 은평노인종합복지관장, 민주평통 복지분과위원, 생명나눔실천본부 이사장 직무대행, 지하철법음 풍경소리 이사장 등을 역임했으며 동국대 대학원 겸임교수도 재직 중인 활동가다.
1978년 폐사지나 다름없었던 서울 은평구 삼천사 주지로 부임한 성운 스님은 30여 년 동안 간절한 불사 원력으로 법당, 요사채 등 30여 동을 건립해 연(年) 20만 명의 신도들이 참배하고 기도 수행하는 대가람으로 중흥시켰다. 또 인근의 철거민촌, 상이군경촌, 폐결핵인촌, 무허가판자촌에 생필품, 연탄, 쌀 등으로 나눔을 실천했다. 비행청소년들의 대변인, 인도자를 자처해 청소년들의 갈 길을 열어 주는 등 낙후된 지역을 돌보았다.
지역의 30여 사찰과 은평불교사원연합회를 결성해 불교행사를 공동 진행하고 화합에 앞장섰으며 공무원, 경찰 등의 불자회를 만들도록 지도하고 매주 법회를 지원했다. 나라와 지역주민을 위한 기원법회, 호국영령을 위한 법회, 연말연시 기원법회를 통해 모범공무원 불자 자녀, 차상위계층 소년소녀가장들에게 정기적으로 장학금을 주는 등 지역포교에 앞장섰다.
스님이 보다 적극적으로 사회복지활동에 나선 것은 1994년 사회복지법인 인덕원을 설립하면서부터다. 인덕원은 산하에 노인복지관, 어린이집 등을 운영하며 복지포교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2009년 12월 현재 스님이 운영하는 복지시설은 노인복지시설 23개, 어린이집 5개, 지역사회복지시설 2개, 도서관과 독서실 등 지역문화 복지시설 5개, 생활시설 노숙자쉼터 희망의 집 등이 있다. 스님이 운영하는 대표적 복지시설인 인덕노인종합복지관의 경우 이미 고령화사회에 진입한 우리나라의 치매·중풍 등 노인성질환을 앓고 있는 어르신을 위해 120병상으로 운영하던 시설을 2009년 7월 300병상 규모의 최첨단 시설로 새롭게 증축 개원함으로써 21세기형 노인전문 복지타운을 완성하였다. 현재 442명의 노인이 다양한 복지서비스를 받고 있다. 의료, 재활, 여가, 일상생활이 한 공간에서 이루어지도록 원스톱(One-Stop) 토탈케어 시스템을 구축하였고, 제2의 IMF 위기 가운데 200여 명의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했다. 2008년에는 연간 예산 약 160억 원을 집행했다. 36개 시설의 종사자 450명, 1일 봉사자 200여 명의 노력으로 연 이용인원이 700만 명에 달해 불교복지 포교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성운 스님은 복지전문가 양성과 제도 개선에도 남다른 열정을 보이고 있다. 동국대 불교대학원 겸임교수로 후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불교복지학과에 불교사회복지론을 최초로 개설, 사회복지현장실습론 등을 강의하면서 석사 50여 명을 배출했다.
스님은 1978년부터 서울, 서대문구치소 종교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무연고 재소자 상담, 49재 등과 총 1,200회 법회를 통해 재소자 교정교화에 노력했다. 검찰청 상임선도위원으로 비행청소년들에게 선고유예 등 총 160회를 교정포교했으며, 전국 교도소에 10만 권의 불서를 보냈다. 또 사형폐지운동 등을 전개했는데 이러한 활동을 인정받아 구치소장, 법무부장관, 국무총리, 대통령 표창, 교정대상을 수상하는 등 교정포교에도 공헌했다.
전국 교도소에 10만 권 불서보내기 운동을 펼칠 만큼 스님의 책 사랑 또한 남다르다. 2001년 수탁한 은평구립도서관의 경우 지역공공도서관 통합 네트워크 ‘책단비서비스’등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실시해 최우수 도서관으로 선정됐다. 국립도서관과 헌법재판소 등 150여 시설에서 벤치마킹하고 있다.
성운 스님은 이 같은 활동과 업적을 인정받아 서울시장, 법무부장관, 보건복지부장관, 통일부장관, 국무총리, 대통령표창 등 100여 차례의 표창을 받았다. 2005년에는 국가와 사회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한 바 있다.
 
2. Impression of Manhae Prize
 
I would first like to express my gratitude for this prize.
Upon hearing that I had become the recipient of the Manhae Grand Prize in Practice, I began to look back on my past 30 years devoted to welfare propagation and joined my hands in prayer to the Buddha for guiding me here.
Then I asked myself, 'Do I deserve this honorable award?' reflecting the meanings of Manhae Grand Prize, which is to promote the sublime ideas of Manhae. Although it is I that is receiving the honor, I believe its credit and honor should go to all the people who have joined me in welfare propagation for 30 years and encouraged me on the journey.
My special thanks go out to the believers of Samcheon Buddhist Temple and the patrons of "Indeocwon Social Welfare Corporation."
 
The Society for the Promotion and Practice of Manhae's Thoughts has widely promoted Manhae's respect for life and literature including freedom, peace, and equality all around the world through the Manhae Grand Prize. It is a kind of "global unification movement" to make Buddha's charity ideas blossom around the world through Manhae's thoughts and a huge task for Korean Buddhism. Leading the task, the society and its Seolak Oh Hyeon and staff will receive my deepest gratitude. I am also grateful to the jury who appointed me as the recipient of the Manhae Grand Prize in Practice.
I studied, taught, translated and published the Diamond Sutra, was engrossed in the Lotus Sutra, and made myself close to the Agama Sutra, which contains Buddha's original tones. The Mahayana Canon and early scriptures all teach benevolence and service without any intent.
My Buddhist name is Ja-an.
"Benevolence is to love your neighbors like a mother loves her only son."
"Give like you do not give."
My Buddhist name represents my determination to check and reflect on myself on whether I practice those teachings of Buddha well and whether I have benevolence in my face in the mirror. In addition, it also represents my desire to become the incarnation of benevolence.
My Buddhist missions started when I restored the Samcheon Buddhist Temple, which was almost abandoned at the foot of Mt. Bukhan, into a great one and took care of neighbors in the area. It has been 30 years since my first mission; today the "Indeocwon Social Welfare Corporation" has 36 facilities under its supervision, of which 20 are directly managed and 16 are commissioned to others, as well as seven million annual users. The Indeoc Welfare Center for the Elderly is a 21st century welfare town specializing in elderly welfare with 300 beds. Today it provides diverse welfare services to 450 old people.
I have systemized my field experiences in Buddhist welfare into study and devoted myself to producing my successors, believing that the expansion of welfare propagation is one direction for Korean Buddhism to pursue.
Welfare propagation is to practice benevolence taught by the Buddha and a way of cultivation to Buddhist priests.
The Buddhist Priest Beopjeong, who entered nirvana last March, once said, "You should not regard taking care of your neighbors as charity. It should be a form of self-expansion."
I completely agree with him on that: every person in the world should be "dear" to one another. Manhae's ideology of respecting life and peace will blossom into a huge lotus flower when everybody holds each other hand in hand, embraces each other warmly, and shares joy and sorrow with each other.
I will donate some of the prize money to the Good Hands for its project of digging wells in poor nations and Samsohoi, an organization of female ministers, for its project of buying sheep for Ethiopians.
I hope that my winning the prize will lead to a chance to announce once again that "Welfare propagation is to practice Manhae's ideology of respecting life" and be an inspiration to those who are committed to Buddhist welfare works or offer their support to them all over the world.
I appreciate my newfound connections with Great Master Manhae and find great joy in receiving his prize. Encouraged to further my devotion by the prize, I will further drive myself to the practice of its great ideas. And finally, I wish long and endless prosperity to the Society for the Promotion and Practice of Manhae's Thoughts, which has contributed to world peace.

2. 수상소감
 
감사합니다.
만해대상(실천부문) 수상자 선정 소식을 듣고 소납은 저의 복지포교 30년을 되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를 이 길로 이끌어주신 부처님께 먼저 감사의 합장을 올렸습니다.
다음에는 만해 스님의 숭고한 사상을 선양하는 만해대상의 의미를 되새겨 보면서, ‘내가 과연 이 상을 받을 만한가’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비록 상은 제가 받지만 30여 년간 복지불사에 동참해주시고 힘을 북돋아주신 사부대중 여러분에게 그 공과 영광이 돌아가야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삼천사 신도와 ‘사회복지법인 인덕원’ 후원자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만해사상실천선양회는 만해대상을 제정하여 지구촌 곳곳에 만해 스님의 자유, 평화, 평등, 생명존중 사상과 만해문학을 널리 선양하고 있습니다. 이는 글로벌 시대에 한국불교가 만해사상을 통해 부처님의 자비 사상을 온누리에 꽃피우려는 ‘세계일화’ 운동이며, 대작불사라고 생각합니다. 이 대작불사를 이끌고 있는 만해사상실천선양회 설악무산 스님과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소납을 만해대상 실천 부문 수상자로 선정해 주신 심사위원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소납은 《금강경》을 공부하고 강설하고 역주하여 책을 펴내기도 했습니다. 이어 《법화경》에 심취하였고, 다시 부처님의 원음이 담긴 아함경을 가까이했습니다. 대승경전이나 초기경전이나 한결같이 자비와 무주상보시를 일러주고 있습니다.
소납의 법호는 자안(慈顔)입니다.
“자비란 어머니가 외아들을 사랑하는 것 같이 이웃을 대하는 것이다.” “주어도 준 바 없이 주어라.”
부처님의 이 같은 가르침을 잘 실천하고 있는지, 거울 속의 내 얼굴이 얼마나 자비로운지 자신을 점검하고 성찰하기 위한 법호입니다. 나아가 자비의 화신이 되고 싶다는 발원이기도 합니다.
저의 복지불사는 북한산 기슭의 폐사지나 다름없는 삼천사를 복원 중창하여 여법한 가람을 이루면서 인근 이웃을 돌보는 데서 시작됐습니다. 그로부터 30여 년, 이제 ‘사회복지법인 인덕원’ 산하에는 36개 시설(직영 20, 위탁 16)이 있고, 연 이용인원이 700여 만 명입니다. 인덕노인복지회관은 300병상 규모의 21세기형 노인전문복지타운입니다. 현재 450여 명의 노인이 다양한 복지서비스를 받고 있습니다.
소납은 불교복지 현장의 경험을 학문으로 체계화하였고, 후학 양성에 열과 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복지포교의 영역 확대는 한국 불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복지포교는 부처님께서 일러 주신 자비실천이며, 출가자에게는 그 길이 바로 수행입니다. 지난 3월 입적하신 법정 스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웃 보살핌을 자선이라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자기 확대이어야 합니다.”
저도 이 말씀에 공감하고 동의합니다. 지구촌의 모든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님’이어야 합니다. 국경을 초월하여 님과 님들이 손에 손을 잡고 따뜻하게 감싸 안으며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눌 때 만해 스님의 생명존중·평화 사상은 큰 연꽃으로 피어날 것입니다.
소납은 만해대상 상금의 일부를 지구촌공생회의 빈곤국가 우물 파주기와 여성 성직자들의 모임 삼소회의 에티오피아 양 한 마리 사주기에 나누겠습니다.
저의 수상이 ‘복지포교는 만해 스님의 생명존중 사상 실천임’을 천명하는 계기가 되어 제방에서 복지불사에 전념하거나 후원하는 분들에게 고무적인 힘이 되길 바랍니다.
큰 스승이신 만해 스님과의 인연에 감사하며 만해대상을 감히 기쁘게 받겠습니다. 더욱 매진하라는 이 상의 격려에 힘입어 상에 담긴 큰 뜻을 회향하는 데 게으르지 않겠습니다. 인류평화 증진에 기여하고 있는 만해사상실천선양회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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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회 존 랠스톤 소울.jpg

  
제14회 만해대상(문학부문) 수상자 - 존 랠스톤 소울 (캐나다, 작가·국제PEN글럽 회장)
The 14th Manhae Prize(Literature) Winner - John Raistion Saul (President of International PEN)
 
1. Reason of Award
 
The President of International PEN, John Ralston Saul is a Canadian novelist and documentary writer whose works have been translated into 22 languages in 30 countries. TIME magazine declared him a "Prophet," and America's utmost alternative magazine Utne Reader included him on its list of the world's 100 foremost thinkers and visionaries.
Born in Ottawa, Canada, he studied at McGill University in Montreal and obtained his Ph. D. at King's College, University of London. After contributing to the foundation of Petro Canada, Canada's national petroleum company, he has devoted himself to writing activities. He has been invited to give a lecture every year by CBC, Canada's public broadcasting station, as part of its renowned annual event of lectures by celebrities. His wife is Adrienne Clarkson, who served as Canada's Governor General from 1996 to 2006.
As President of Canada PEN, he worked hard to support fugitive writers and devoted many years to freedom of expression. In 2009, he was elected President of International PEN being much supported by many writers. International PEN is the world's one and only writers' association whose members are the writers from 144 centers in 102 nations. There were good reasons behind his election, as declared by International PEN in the charter: "maintaining exchanges among nations under whatever circumstances," "keeping artistic works free from any interference from national or political power," "exercising the greatest influence possible for the mutual prosperity of mankind" and "objecting to any form of suppression of freedom of expression." The members judged that Saul took more initiatives in practicing the four principles than anyone else and expect him to continue doing so.
In a press conference right after being elected president of International PEN at its general meeting last year, he said:
"International PEN is the world's most important and oldest freedom of speech and literary organization. Almost 1000 writers in prison or in danger around the world look to us for help. We have to invent new ways of turning back the rise of authoritarian controls. Threats to freedom of speech are expanding in new directions, especially with the rise of populism in the post 9/11 world."
He then added,
"In addition, hundreds of minority and indigenous languages and cultures are in danger of extinction. This is the ultimate denial of freedom of speech."
Right before Saul, Jiri Grusa, one of the most important anti-regime writers in the Czech Republic, served the organization for six consecutive years. The former presidents of the organization established in 1921 include Arthur Miller, Mario Vargas Llosa, and Alberto Moravia.
In his The Collapse of Globalism and the Reinvention of the World published in 2005, Saul warned that globalism was already collapsing and that the world would face crises and disasters without rapid reactions. His book received renewed spotlights in 2008 and 2009 when the world was going through a global financial crisis.
His active literary activities and social contributions for freedom of expression have brought him a good number of awards home and abroad. The latest one was the "Pablo Neruda Medal" from the government of Chile. He received Canada's Governor General's Literary Award for his The Unconscious Civilization, a philosophical essay, in 1996; the "Gordon Montadaor Award" for his Reflections of a Siamese Twin, which was selected as one of the world's 10 greatest non-fiction works since the 20th century by Maclean's Magazine; and the "International Literary Award", a prestigious literary award granted by the Italian government for his The Paradise Eater. His novel The Birds of Prey has also become a worldwide bestseller.
As a writer who has connections with Korea, he visited the old house of Hoijae Lee Eon-jeok at Yangdong Village, Gyeongju and described what he felt from it in his The Unconscious Civilization, finding a perfect agreement between the thoughts and residence of a great Confucian scholar in middle Chosun. He made a presentation about "literature and environment" at the 16th International Literature Symposium held at the Korean headquarters of International PEN in Seoul from September 16 to 18, 2009.
Declared as one of the world's top 10 meditators, he is well known for his criticism of the nature of individualism, citizenship, and public good and has furthered the arguments about confusions between leadership and managerialism, military strategies especially those for irregular battles, the roles of journalism and freedom of culture, and contemporary economic issues.
His wide collection of writings includes his novels The Field Trilogy and De Si Bons Americans, his essays Voltaire's Bastards, The Doubter's Companion, and On Equilibrium, and his criticism of civilization A Fair Country.
He received 14 honorary degrees in total from Ottawa University, Russia's national Herzen State Pedagogical University, among others, and is the recipient of many prestigious awards including the Ordre des Arts et des Letters of France, Order of Canada, and the Queen Elizabeth II Golden Jubilee Medal.
 
1. 수상자 선정 이유
 
국제펜클럽 회장인 존 랠스톤 소울은 세계 22개 국어로 30개국에 작품 이 번역된 캐나다 출신의 소설가이자 다큐멘터리 작가이다. 〈타임〉은 그를 ‘예언자’라고 칭했고, 미국의 대표적인 대안잡지 〈Utne Reader〉는 세계 100대 사상가 겸 선각자 명단에 그를 포함시켰다.
그는 캐나다의 오타와에서 태어나 몬트리올의 맥길 대학교에서 공부했으며, 영국 런던의 왕립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캐나다 국영 석유회사인 페트로 캐나다사의 설립에 기여한 후 저술 활동에 전념했다. 그는 캐나다의 유명한 연례행사로 공영방송인 CBC가 세계의 유명 인사들을 초대하는 매시 강연회에 초청되기도 했다. 부인은 1996년부터 2006년까지 캐나다 총독을 지낸 아드리안느 클락슨 여사이다.
소울은 캐나다 펜회장으로 활동하면서 망명 작가들의 후원에 힘을 쏟았으며 표현의 자유를 위해 오랜 기간 헌신했다. 그는 2009년 많은 작가들의 지지를 얻어 국제펜클럽 회장으로 피선되었다. 국제펜클럽은 세계 102개국 144개 센터의 작가들이 회원으로 가입돼 있는 세계 유일의 작가 연맹이다. 펜클럽은 그를 회장으로 선출한 데는 이유가 있다. 펜클럽은 그 헌장에 ‘어떤 경우에도 국가 간의 상호 교류를 유지할 것’ ‘예술 작품은 국가적 또는 정치적 권력으로부터 간섭을 받지 않도록 할 것’ ‘인류공영을 위해 최대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 ‘어떤 형태로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데 반대할 것’ 등 4개 항을 명시하고 있다. 회원들은 소울이 누구보다 이 정신을 앞장서 실천해왔다고 평가했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소울 회장은 지난해 열린 국제펜클럽 총회에서 회장으로 당선된 직후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제 펜은 표현과 문학의 자유를 위한 세계에서 가장 중요하고 오래된 조직이다. 지금 세계에는 천 명에 이르는 작가들이 감옥에 있거나 위험에 처해 우리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독재 체제의 탄압에 맞서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야만 한다. 이것이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는 데 대응하는 앞으로 3년간 행동 지침이 될 것이다.”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세계에는 수백 종의 소수 언어와 토착 언어가 있다. 이  언어들은 소멸의 위기에 처해 있다. 표현의 자유를 위해 이를 보호해야만 한다.”
소울이 회장이 되기 직전까지 펜클럽의 회장은 체코의 가장 중요한 반체제 작가 중의 한 명인 지리 그루사로 6년을 재임했다. 1921년에 창설된 국제 펜의 전임 회장들로는 아서 밀러,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알베르토 모라비아 등이 있다.
소울은 2005년에 출간된 《세계화의 붕괴와 세계의 재창조》서 세계화는 이미 붕괴되고 있으며 빨리 대응하지 않으면 위기와 재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적이 있다. 그의 저서는 세계적인 금융 위기를 겪으며 2008년과 2009년에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그의 왕성한 문학 활동과 표현의 자유를 위한 사회적 공헌은 국내외로부터 많은 수상의 영예를 안겨주었다. 가장 최근에 받은 상은 칠레 정부가 수여한 ‘파블로 네루다상’이다. 1996년에는 철학적 에세이 《무의식적 문명》으로 ‘캐나다 총독상’을 받았다. 또 《샴쌍둥이의 추억》은 ‘몬테이도상’을 수상하고 매클린 잡지가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10대 논픽션 도서로 선정되었다. 그의 소설 《파라다이스를 먹어치우는 사람》은 이태리 정부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국제문학상’을 수상했다. 그의 소설 《맹금류》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는 지한 인사로서 그의 저서 《무의식적 문명》에는 경주 양동 마을에서 본 회재 이언적의 고택에 대한 소감을 쓰고 있다. 조선 중기 대 유학자의 사상과 거주지의 완벽한 일치에서 한국의 미를 발견했던 것이다. 2009년  9월 16일에서 18일까지는 서울에서 열린 국제펜클럽 한국본부의 제16회 국제 문학 심포지엄 ‘문학과 환경’에서 주제 발표를 하기도 했다.
세계 10대 명상가로도 선정된 그는 개인주의와 시민정신, 공익의 본질에 대한 비평으로 잘 알려져 있다. 리더십과 관리 통제주의 사이의 혼란, 군사 전략, 특히 비정규전 전략, 언론과 문화의 자유가 맡은 역할, 현 시대의 경제 관련 논쟁에 대한 비평으로 유명하다.
대표적 소설로는 《들판 33부작》 《드 시 봉 미국인들》 에세이집으로는 《볼테르의 악당들》 《의심하는 자의 동반자》 《균형에 관하여》와, 문명 비평서 《제법 괜찮은 나라》 등이 있다.
그는 오타와대학교와 러시아 국립 헤르젠 교육대학교 등에서 모두 14개의 명예 학위를 받았다. 프랑스 문화훈장, 캐나다 최고훈장, 엘리자베스 2세 쥬빌리 금메달 등을 받기도 했다.
 
2. Impression of Manhae Prize
 
To receive the Manhae Grand Prize for Literature is both a great personal honour and an honour for PEN International, the world’s oldest and leading freedom of speech organization, bringing together tens of thousands of writers in over a hundred countries. For myself as a writer, I receive this prize as part of a growing relationship that I have developed with the culture of Korea.
I feel that there is a direct link between my first visit to Korea and the ethical core of the Manhae Grand Prize. As some of you know, on my first trip to your country I traveled to Kyongju and walked out of the city into a deep mountain valley where I saw the house of a great Confucian teacher: Yi Ŏn-chŏck. I remember writing in my book – The Unconscious Civilization – that this experience made me think of “the five Confucian qualities with which until then he had governed other men were Wen, Ren, Chunzi, Li and De. They are the arts of peace; of goodness; of superior behaviour, which is the opposite of the petty and mean; of propriety or grace; and finally, of the just use of power.”
As I understand the beliefs and arguments of Han Yong-un, they reinforce very much the same ideas. In other words, there is a strong link between the best of Buddhism and the best of Confucianism. But my argument in books like The Unconscious Civilization has always been that Buddhism and Confucianism are at their heart strongly linked to the humanist tradition in the West.
And this is why receiving this wonderful prize is a particular honour. It reinforces not only the intellectual but also the ethical forces to which I have always devoted my writing. And now, I can add, as President of PEN International, that receiving the Manhae Grand Prize reinforces the ideas shared by PEN writers around the world. You are fortunate in Korea to have a particularly strong PEN Centre. For the third time in the 88 year history of PEN International, you will be receiving writers from around the world in 2012. I know this will be a moment for ideas such as those put forward by Han Yong-un and Yi Ŏn-chŏck to be brought to the fore. Let me add that the reason writers belong to PEN is not because we receive anything from it, but because as those who are first heard in public debate, it falls naturally to us to be both the advocates of freedom of expression and victims of any limitations on freedom of expression. And so, we belong to PEN in order to advance and defend the freedom of expression that belongs to everybody, writer and reader; speaker and listener.
Freedom of expression is not a technicality, it is a way of imagining society and it is a way of imagining the relationship between peoples. And so when I write about freedom of expression I am of course arguing against classic, old-fashioned censorship. But I am also arguing in favour of multilingualism and the growth of minority cultures.
When I wrote my book, The Collapse of Globalism, some people might have seen this as a classic comment on economic theory. But for me it was a way of arguing that economics must be subjected to culture in its broadest sense; that civilization requires economics, but economics only works if it is driven by human relationships. And my arguments in books such as Voltaire’s Bastards and On Equilibrium were all about finding a contemporary way to demote utilitarian ideas of self-interest – such as those represented in contemporary economics – in order to reveal international ideas of humanism; ideas which remind us that the heart of philosophy in every civilization lies in our capacity to imagine The Other; that is, to imagine the millions of people we do not know and will never know. If we can imagine their situation, we can imagine shared justice.
I know that this idea of imagining The Other lies within the philosophy of Han Yong-un. And so I accept the Manhae Grand Prize with humility in the shadow of this humanist philosophy.
Thank you.

 
2. 수상소감
유불(儒佛)은 서양 인도주의 정신과 상통
만해대상 문학상은 저에게는 커다란 개인적인 영광이며, 백여 개 국가 수만 명의 작가들로 구성된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언론의 자유를 선도하는 조직인 국제펜클럽으로서도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작가인 저로서는 이번 수상을 제 자신이 추구하여 온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과정의 한 부분으로 삼고자 합니다.
저의 첫 한국 방문과 만해대상의 윤리적 핵심이 서로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 중 몇 분은 아시겠지만 한국에 처음 왔을 때 경주를 여행한 후 시내에서 벗어나 깊은 산골짜기를 걸었을 때 위대한 유교학자인 이언적 선생의 고택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 경험으로 인하여 공자 시대까지 백성을 통치했던 덕목은 문(文), 인(仁), 이(理) 와 덕(德)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제 저서인 《무의식적 문명》에 쓴 바 있습니다.  이를 재해석하자면 평화, 선, 천함의 반대인 고상한 처신, 단아함과 우아함을 유지하는 기법과, 마지막으로 권력을 정당하게 사용하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한용운 선생의 신념과 주장을 살펴보면 이와 동일한 사상을 매우 굳건히 보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최선의 불교와 최선의 유교는 서로 강력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의식적 문명》 같은 저서를 통해 저는 불교와 유교는 깊이 들어가면 서양의 인도주의 전통과 굳게 연결된다고 늘 주장해왔습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이 상의 수상 특별히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이 상으로 인해 제가 글을 쓸 때 항상 중점을 두어 오던 지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윤리적인 측면도 함께 보완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국제펜클럽의 회장으로서 한 가지 덧붙이자면, 만해대상 수상으로 인해 전 세계의 펜 회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이상을 더욱 굳건히 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한국에 특별히 강력한 국제펜클럽 한국본부가 있다는 것은 여러분에게 행운입니다. 국제펜클럽 88년 역사상 세 번째로 2012년에 전 세계의 문인들이 방한하게 됩니다. 이때가 바로 한용운이나 이언적이 제시했던 사상을 전면에 내세울 때입니다. 
 한 말씀 더 추가하자면 작가들이 펜에 가입하는 것은 펜으로부터 무엇을 받기 때문이 아니라 공적 논쟁에서 그들의 소리를 제일 처음 듣게 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표현의 자유를 위한 주창자가 됨과 동시에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재가 있을 때 희생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작가, 화자와 청자, 이들 모든 이의 권리인 표현의 자유를 신장하고 보호하기 위해 펜클럽에 속해 있는 것입니다.    
표현의 자유란 전문용어가 아닙니다. 사회를 표상하는 방법이자 사람들 사이의 유대 관계를 표상하는 방법일 뿐입니다. 제가 표현의 자유에 대해 언급할 때에는 오래된 구식 검열을 반대함은 물론입니다. 그러나 저는 언어의 다양성과 소수민족 문화의 발전을 주창합니다.
제가 《세계화의 몰락》이라는 책을 썼을 때 어떤 이들은 경제이론에 대한 고전적 비평서라고 볼 수도 있었겠지만 저는 그 책을 통해 경제학이란 넓은 의미에서 문화와 연계되어야 하며, 문명은 경제학을 필요로 하지만 경제학은 인간관계에 의해 작동될 때만 제대로 돌아간다는 주장을 하고자 했습니다. 저는 《볼테르의 악당들》과 《균형에 관하여》 같은 저서를 통해 모든 문명 철학의 본질은 우리가 모르고 있으며 또 앞으로도 모를 수백만 명의 《타인》을 생각하는 능력이 우리 안에 있다는 국제적인 사상인 휴머니즘을 실현하기 위하여, 현대 경제학에서 대두되는 이기주의라는 실용주의적 관념을 깎아내리는 현실적인 방법을 찾고자 하였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형편을 상상할 수 있다면 정의의 분배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한용운 선생의 철학에는 ‘타인’을 생각해야 한다는 저의 주장이 내재되어 있음을 압니다. 이 만해대상을 휴머니스트 한용운 선생의 그늘 아래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들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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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회 만해대상(학술무문) 수상자 - 김학성 (한국, 성균관대 명예교수)
The 14th Manhae Prize(Academy) Winner - Kim Hak-seong (Korea, Professor at Sung Kyun Kwan University)

 1. Reason of Award
 
Prof. Kim Hak-seong is one of the utmost Korean literature scholars and aestheticians who pioneered the horizon of profound literature study of discovering the productive value of Korean literature by investigating the aesthetics and identity of classical poetry, the essence of Korean literature.
Born in Mungyeong, Gyeongbuk Province in 1945, he graduated from the College of Liberal Arts and Sciences of Seoul National University in Korean literature and obtained his Ph. D. in literature at the Graduate School of Seoul National University. He taught at Jeonju University and Wonkwang University, served the Korean Classical Poetry Association as the president, and currently is the chief editor of the Korean Classical Literature Association and Korean literature professor at Sungkyunkwan University.
His academic achievements are clearly demonstrated by his books, famous ones of which include Study on Korean Classical Poetry (Wonkwang University Press, 1980), Exploration into Korean Literature (Sungkyunkwan University Press, 1987), Macroscopic Investigation of Korean Classical Poetry (Jipmundang, 1997, an outstanding academic book appointed by the Ministry of Culture and Tourism), Identity of Korean Classical Poetry (Daedong Culture Institute of Sungkyunkwan University, 2002, an outstanding academic book appointed by the Ministry of Culture and Tourism), Discourse and Aesthetics of Korean Poetry (Bogosa, 2004, an outstanding academic book appointed by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 and Tradition and Inheritance of Korean Classical Poetry (Sungkyunkwan University Press, 2009, an outstanding academic book appointed by the Ministry of Culture and Tourism).
In "Theory of Aesthetic Consciousness Systems in Korean Classical Poetry" (1980) in his first book, Prof. Kim widely addressed advanced Western theories, actively criticized the idle attitude of accepting them blindly, devoted himself to the establishment of independent methodologies, and thoroughly kept himself alert against self-righteousness that could follow self-study, thus exhibiting a balanced academic attitude. His methodology of aesthetic analysis and his theory of aesthetic consciousness types according to the genres of classical poetry are still widely quoted in the Korean literature circle today. He then showed much interest in the genre theory of Korean literature and passionately investigated it beyond his usual search for methodology of aesthetic consciousness. Those efforts took the form of his second and third book, namely Exploration into Korean Literature (1987) and Macroscopic Investigation of Korean Classical Poetry (1997). In those books, he examined in depth the poetical characteristics and aesthetic consciousness of many genres of Korean literature from classical poetry including ancient songs, Hyangga, and folk songs to the core of Chosun poetry known as Shijo and Gasa, to Chinese poetry and novels, and from modern Shijo to early modern and modern poetry. Each of his papers offered new perspectives, raised controversy, set the research directions on their proper course, led the academic discourse, and built a foundation for an established theory.
While never proclaiming himself anywhere as a nationalist, Prof. Kim has done thoroughly nationalistic research and literary works. He emphasized that Korean literature study should not be a means for academic pleasure or pedantry and should instead move toward the discovery of Korean literature's identity and true values by pursuing productive "wisdom" through true nationalistic values and identity beyond the stage of interpretative knowledge. His ideas were translated into his papers such as "Identity of Methodology of Classical Poetry," "Identity of the Rules of Korean Poetry," "Nationalist Aesthetic Identity of Oral Literature," and "Search for the Academic Identity of Korean Literature Students" and into his search for identity in each genre of classical poetry including Hyangga, Akjang, Shijo, Gasa, and Japga. Those achievements were collected in his book Identity of Korean Classical Poetry (2002), which then led to his efforts to examine the unique discourse of the Korean people as the subjects to produce and enjoy Korean literature and the characteristics of their unique aesthetics. And he published Discourse and Aesthetics of Korean Poetry (2004) by collecting the results.
His academic nationalism evolved around the theme of the traditional aesthetics and modern inheritance of Korean poetry and took practical forms at paper presentations and special lectures at the conferences and seminars of the Korean Classical Poetry Association, Society of Open Shijo, Research Institute of Korean Language Study, and the Korean Classical Literature Association, thus exerting huge influences in and outside the academy. In particular, the series of his papers that dealt with the aesthetics and modern inheritance of Shijo and Gasa literature presented tasks of spiritual history, which are to secure the national identity and to inherit its aesthetics in practice, not only to poets and writers who created modern Shijo and Gasa but also to the faculty and students of elementary, middle and high schools across the nation and the general public.
The academy praised his academic achievements by awarding him the "Korean Shijo Academy Award" in 1992 and "Donamguk Literature Award" in 2001.
 
1. 수상자 선정 이유
 
김학성 교수는 우리 국문학의 정수인 고전시가의 미학과 정체성 구명을 통해 국문학의 생산적 가치 발견이라는 심원한 문학 연구의 지평을 선도적으로 열어 온 우리 시대의 대표적 국문학자이자 미학자다.
1945년 경북 문경에서 출생한 김학성 교수는, 서울대학교 문리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전주대학교 및 원광대학교 교수, 한국시가학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고전문학회 편집위원장 겸 성균관대학교 국문학과 명예교수이다.
그의 학문적 성과는 그동안 펴낸 저술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가 펴낸 저술로는 《한국고전시가의 연구》(원광대학교 출판국, 1980), 《국문학의 탐구》(성균관대학교 출판부, 1987), 《한국고시가의 거시적 탐구》(집문당, 1997,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 선정), 《한국고전시가의 정체성》(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2002,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 선정), 《한국시가의 담론과 미학》(보고사, 2004,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선정), 《한국고전시가의 전통과 계승》(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009,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 선정) 등이 유명하다.
첫 저술에 수록된 〈한국고전시가의 미의식 체계론〉(1980)은, 당시로서는 선진적이었던 서구 이론을 두루 섭렵하면서도 그것을 무턱대고 수용하는 안일한 태도를 적극 비판하고 독자적 방법론 수립에 매진하였으며, 동시에 자득지학의 폐해인 독선 또한 철저히 경계하는 균형 있는 학문 태도를 보여 주었다.
이때 세워진 그의 미의식 분석방법론과 고전시가의 장르별 미의식 유형론은 현재까지도 국문학계에서 널리 인용되고 있다. 이어서 그는 미의식 방법론 모색을 넘어 국문학 장르론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열정적인 탐색 작업을 펼쳐왔는데, 그 성과가 두 번째 세 번째 단독 저서인 《국문학의 탐구》(1987)와 《한국고시가의 거시적 탐구》(1997)에 모아졌다.
여기에는 우리 고전시가문학의 제반 장르, 즉 고대가요와 향가, 속요뿐만 아니라, 조선조 시가의 핵심인 시조와 가사는 물론 한시와 소설, 나아가 현대시조 및 근·현대시에 이르는 실로 방대한 국문학 장르들에 대한 심도 있는 시학적 특성과 미의식 구명이 이루어졌는바, 개별 논문마다 항상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뜨거운 쟁점을 불러일으키면서 연구 방향성을 바로잡고 학술담론을 주도하면서 정론을 기초하였다.
김학성 교수는 어디에서도 스스로 민족주의자임을 표방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연구 업적과 학문 세계는 철저히 민족적이다. 그는 국문학 연구가 한낱 도락(道樂)이나 현학(玄學)을 위한 것이 아니며, 우리 문학의 정체성과 진정한 가치 발견으로 나아가야 하고, 그 길은 해석적 지식 단계를 넘어 진정한 민족적 가치와 정체성의 발견을 통한 생산적 ‘지혜’에 이르러야 함을 역설하였다. 
이는 〈고전시가 연구 방법의 정체성〉 〈한국시가 율격의 정체성〉 〈구비문학의 민족 미학적 정체성〉 〈국문학도의 학문적 정체성 찾기〉 등의 논문과 향가·악장·시조·가사·잡가 등, 고전시가 장르별 정체성 탐색 작업으로 결실을 맺어, 이들 성과가 《한국 고전시가의 정체성》(2002)에 한 묶음을 이루었다. 이는 다시 우리 문학을 산생하고 향유한 주체인 한국인으로서의 민족 고유 담론의 해명과 독자적 미학의 특성 규명으로 이어졌다. 그 진전된 시각이 《한국시가의 담론과 미학》(2004)에 또 하나의 묶음을 이루었다.
그의 학문적 민족의식은 우리 시가의 전통 미학과 현대적 계승이란 주제로 응집되어 한국시가학회는 물론 열린시조학회, 가사문학관, 한국어문교육연구회, 한국고전문학회 등이 주최하는 학술대회나 세미나 자리에서 거듭된 논문 발표와 특별 강연 기회를 통해 더욱 실천적으로 구체화되어, 학계 안팎에 큰 영향력을 끼쳐왔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그의 시조문학과 가사문학의 미학과 현대적 계승 문제를 다룬 일련의 연속 논고들은 국문학 전공자는 물론 현대시조나 가사를 창작하는 시인과 작가, 전국의 초·중·고 교원과 학생들, 나아가 일반인들에게까지 민족정체성의 확보와 그러한 미학의 실천적 계승이라는 정신사적 과제로 다가가 있다 할 것이다.
그의 이러한 학문적 성과에 대해 학계에서는 1992년에 ‘한국시조학술상’을, 2001년에 ‘도남국문학상’을 수여하고 업적을 상찬한 바 있다.
 
2. Impression of Manhae Prize
 
To those who devote themselves to academy, there is no bigger honor than receiving an award for their achievements. I have been awarded several prizes as a Korean literature scholar since I fully committed myself to study 30 years ago when I began teaching in college. When I heard the news that I was the recipient of the Manhae Grand Prize in Academy in honor of his spirit as High Priest as well as the symbol of the Korean spirit and world peace, I could not help rejoicing in pure happiness beyond a sense of honor. At the same time, with a sense of shame and gratitude I could not help realizing that my academic capabilities did not deserve the award. I thus deeply appreciate the jury who made such high evaluations of my small achievements.
To be frank with you, my academic journey has been far from a smooth one; I was born in an extremely poor family without even a patch of field in the valley of Mungyeong, a physically frail boy. Not physically able to work for another family as a farmhand, I was forced to choose to study. In addition, it has been unbelievably painful to endure severe migraines and insomnia, which have tortured me since childhood, while working on my study. Since I learned that Nietzsche made outstanding achievements despite his lifelong suffering from migraines, I have been inspired not to give up on my study as well. However, it was an absurd and unreasonable attempt to try to mimic such a genius when I was not one such as him. But I have tried to thrive in such inferior situations of mine and published six books on classical Korean poetry, in which I take pride as a miracle.
Looking back on my life as a scholar, I am thankful that I chose Korean literature, which holds the sentiment and spirit of the Korean people, among many paths and find such immense happiness and reward in my consistent efforts to study classical Korean poetry. Unlike novels or plays which develop around fierce conflicts and struggles, as you know, poetry is a literary genre that strives for identification and harmony between the self and the outside world. Of the many kinds of poetry, old Korean poetry in particular sought after harmony and unity as its core values. Such a poetic spirit of harmony gives hints at life wisdom and a path for Koreans, who are faced with intense confrontations between North and South Korea, clashes between the progressive and conservative party, conflicts among different regions and social classes, differences in understanding among different religions, and confrontations between labor and  management.
People usually think it is boring to study classical poetry, considering it as a sort of antique from the old past to be treated as an ancestral artifact whose life came to an end long ago. However, classics still live, they are alive and kicking as a living value today. It just requires a sharp vision to replace the old values with modern ones and rediscover them since its intrinsic values are covered below. I refuse to incline toward the useful values of the past or find neutral values of no apparent nationalities in the name of stern academic strictness in my research of classical poetry. Instead, I have maintained the research attitude of presenting the old values as dynamic ones to shine vividly and give hope and light to our life and having them approach us with body and soul.
In an attempt to reach the academic target, I have gone through a series of upward steps in explorations. I first process the classical materials that are objective and neutral in value usefully so that they can be valuable "information" in Korean literature. Then I grant academic meanings to the useful information and raise it to the level of "knowledge." When the text in the knowledge stage is added by independent world views and perspectives that serve as stepping stones toward true value and identity as Korean literature, the next stage of "understanding" begins. And finally, I make all sorts of efforts to have the text in the understanding stage exercise "wisdom" by raising it to the level of something complete and productive.
In the process of raising unprocessed classical raw materials to the text of "wisdom," I pay special attention to the possibility that I can commit self-righteous stupidity like in the myth of "Procrustean Bed." In an Attican myth, Procrustes, a highwayman, captures passersbys, takes whatever they have, and lays them in a bed. If the captive is taller than the bed, he cuts off his legs; if the captive is shorter than the bed, he stretches his legs. What can describe his self-righteous acts? It is my belief that we should not exercise such methodological violence as forcefully or arbitrarily in fitting something into a certain target point or manufacturing it according to a certain target point. We should be careful not to fall into narrow nationalistic viewpoints or near-sighted prejudices. It is very much important to try to have macroscopic, just, and reasonable viewpoints all the time. My six books are the results of my efforts to maintain my academic attitude in such a sense.
Based on my academic attitude in such a sense, I have pursued to understand the identity of Korean poetry and explain the aesthetics of the Korean people. Korean poetry is the implementation of the Korean people's aesthetics created based on their unique lifestyle and cultural characteristics different from other peoples and the crystal of their experiential ideology and aesthetic consciousness over the many years. Therefore, it is a very important and valuable attempt to explore its identity in the aspects of identity and aesthetic consciousness, the attributes of which will open the door to the solid establishment of the identity of traditional Korean aesthetics and the clear definition of its inheritance directions.
Today the world is struggling to escape from the deep, dark swirl of economic crisis and has the possibility that exclusive nationalism will spread across the globe like  wildfire. Thus it is time to secure a central point of people as a unit more than ever. If we fail to tell ourselves and others and take a value-neutral standpoint in terms of identity in the name of the globe or globalization, we will fall into a deep, dark swirl of lost identity. What we should pass down onto the next generations are spiritual ideology and the people's identity that will serve as the central point of values. The very nature of "Dear You" Manhae Han Yong-un desperately sought after during the dark days of Japanese rule is the identity of the Korean people. That must be part of the reasons I receive this prestigious honor, for my mere academic achievements are small attempts to inherit his spirit.
This award is especially significant and meaningful to me as one who is about to wrap up his research as an incumbent professor and become an emeritus professor after retirement: I could ask for no better and more proper ending to my academic journey so far. I would like to share my happiness with all the people who have loved and supported me.
 
2. 수상소감
 
학문하는 사람치고 그 성과를 인정받아 상을 타는 일보다 더 큰 광영은 없을 것이다. 30여 년 전 대학교수가 되어 본격적으로 학문의 길로 들어선 이래 국문학의 연구자로서 이런 저런 몇 가지 상을 받아 본 적이 있지만, 우리의 민족혼과 세계평화의 상징이신 만해 한용운 대선사의 정신을 기리는 만해대상 학술 부문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은, 내게 있어서는 단순한 광영에 그치지 않고 기쁨 그 자체였다.
그러면서도 한편에선 내 학문적 역량이 이런 큰 상을 받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않을 수 없어 부끄러움과 송구스러운 마음 또한 갖지 않을 수 없다. 다만 나의 자그마한 성취를 높게 평가해 주신 심사위원 제위께 감사할 뿐이다.
사실 나의 학문적 역정은 고난의 가시밭길이었다. 문경 산골짜기에서 땅뙈기 하나 없는 극빈의 가정에 태어난 데다 체력이 유달리 약한 탓으로, 남의 집 머슴살이를 견디지 못해 어쩔 수 없이 공부길로 들어선 것이 나의 열악한 공부 환경이었다. 거기다가 어려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줄기차게 괴롭혀 오는 극심한 두통과 불면증을 견뎌내며 학문을 하는 일이란 너무도 고통스러운 도정이었다.
니체가 평생을 두통에 시달리면서도 걸출한 업적을 내었다는 선례가 있어 그에 고무되어 학문 생활을 접지는 못했지만, 그와 같은 천재가 못 되면서 그의 길을 흉내 낸다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요, 가당치 않은 것이었다. 단지 내세울 것이 있다면 그런 열악한 환경을 무릅쓰고, 하찮은 것이긴 하지만 우리 고전시가를 중심 테마로 하는 6권의 단독 저술을 내었다는 사실이 스스로 생각해도 기적과 같은 일이라 자위해 본다.
나의 학문 생활을 돌이켜 보면, 수많은 학문의 길 가운데 우리의 민족 정서와 혼이 담긴 국문학을 택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그 가운데서도 고전시가를 일관되게 연구해 왔다는 데 무한한 행복과 보람을 느낀다. 잘 알다시피 시는 치열한 갈등과 투쟁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소설이나 극 장르와 달리 자아와 세계의 동일화와 화합을 갈망하는 문학이다.
시 가운데서도 우리의 옛 시가는 유난히 화합과 조화를 중심 가치로 삼아 왔다. 이러한 화합의 시 정신을 통해 우리가 당면한 현재의 대결 국면들―남북 간의 첨예한 대립, 진보와 보수 간의 격돌, 지역과 계층 간의 갈등, 종교 간의 이해 차이, 노사 간의 대립 등이 궁극적으로는 화해로 나아가야 한다는 삶의 지혜와 길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고전시가를 연구한다면 고리타분하다는 선입견을 갖는다. 고전은 이미 기력을 상실한, 조상의 유물로서나 다루어야 할 골동품쯤으로 여기고 과거완료형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전은 현재에도 살아 있는 가치로 존재하는 현재진행형이다. 다만 그 가치가 표면에 쉽게 드러나 있지 않고 잠재된 가치로 내재되어 있어서 당대적 가치를 현재적 가치로 치환시켜 재발견해내는 예리한 시각이 요청될 뿐이다.
나는 고전시가를 연구함에 있어 냉엄한 학문적 엄밀성이라는 미명 아래, 지난 시대의 효용가치에만 치우치거나 국적불명의 중립적 가치를 찾아내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현재에도 생생한 빛을 발하는, 그리하여 우리의 삶에 희망과 빛을 던져주는 역동적 가치로 우리 앞에 다가서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고자 하는 것이 나의 일관된 연구 태도다.
이러한 학문적 목표 지점을 달성하기 위해 나는 몇 단계의 탐구 작업을 상승적으로 끌어가는 시도를 감행한다. 우선 객관적이고 가치중립적으로 우리 앞에 놓인 고전 자료를 국문학의 귀중한 ‘정보’의 하나가 될 수 있도록 유용하게 가공하는 절차를 밟는다.
그리고 이렇게 가공하여 유용하게 된 정보에다 학문적인 의미를 부여하여 ‘지식’의 단계로 끌어올리고, 이러한 지식 단계의 텍스트에다 국문학으로서의 진정한 가치와 정체성 발견의 디딤돌이 될 수 있는 독자적인 세계관과 관점의 정립을 바탕으로 ‘이해’의 단계로 나아가게 한다. 그리하여 최종적으로 이러한 이해 단계의 텍스트를 완전하고 생산적인 것이 되도록 끌어올려 우리에게 ‘지혜’를 발하는 텍스트가 될 수 있도록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이렇게 가공되지 않은 고전의 원자료를 ‘지혜’의 텍스트로까지 상승시키는 과정에서 내가 특히 유념하는 것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 같은 독선적인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아티카의 전설에 나오는 노상강도인 그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잡아다 몽땅 빼앗고는 강제로 쇠침대에 눕힌 뒤, 그 키가 침대보다 크면 다리를 자르고, 그보다 작으면 다리를 잡아 늘여 놓는 독선적 만행을 저질렀다 하지 않는가. 이처럼 어떤 특정의 기준점이나 목표 지점을 설정해 놓고 그에 따라 강제적으로 혹은 임의적으로 꿰맞추기를 하거나 재단해 버리는 방법론적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협소한 국수주의적 시각에 매몰되거나 근시안적 편견을 가져서는 절대로 아니 될 것이다. 늘 거시적이고 온당하며 합리적인 시각을 갖고자 하는 것이 또한 중요한 것이다. 나의 졸저 6권은 이러한 학문적 태도를 견지하려 노력한 결과물이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학문적 태도를 바탕으로 우리의 고전시가를 통해 추구하고자 한 중심 과제는 우리 시가의 정체성을 파악하고 그 민족 미학을 해명하는 것이었다. 우리 시가는 다른 나라와는 다른 삶의 양식과 문화적 특수성 위에 산출된 민족 미학의 구현체이고, 또한 오랜 세월 동안 우리 민족이 가꾸고 일구어 온 경험적 이념과 미의식의 결정체이므로, 그러한 결정체를 그 정체성과 미학의 측면에서 탐색해 내는 일은 참으로 긴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의 해명은 곧 우리의 전통미학의 정체성을 확고히 자리매김하고 그 계승의 방향을 명백히 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지금 세계는 경제 위기라는 어둠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렸다가 그것을 벗어나려는 몸부림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한 몸부림의 구심점으로 배타적 민족주의가 지구촌 전체에 들불처럼 번져 나갈 기세로 있어 다른 어느 시기보다 민족 단위의 구심점이 요청되고 있다. 이러한 긴박한 상황에서 자기와 타자를 구분하지 못하고, 글로벌 혹은 세계주의라는 이름으로 정체성 면에서 가치중립적인 입장을 취한다면 국민이 갖는 일체감의 상실로 인하여 어둠의 소용돌이에서 헤쳐 나오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은 정신적 이념, 가치의 구심점이 되는 민족의 정체성이다. 일제 암흑기에 만해 한용운 선생이 시를 통해 그토록 갈망했던 ‘님’의 구현체도 한민족의 정체성이 그 본질이다. 그런 점에서 나의 이 하잘것없는 학문적 성과도 만해 선생의 그런 정신을 조금이라도 계승한 작은 몸짓이었다는 점이 아마도 수상의 영광을 안게 된 요인이 된 것 같다.
더욱이 나의 이번 수상이 현직 교수로서의 연구를 마무리하고 이제 막 퇴직하여 명예교수로 바뀌는 시점에서 이루어져 학문적 결실을 보람차게 일단락 짓는다는 남다른 의미를 갖게 되어 더욱 기쁘다. 이 기쁨을 나를 아껴주고 뒷받침해 준 모든 분들과 함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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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회 만해대상(학술부문) 수상자 - 존 던컨 (미국 UCLA, 동아시아학과 한국학연구소장)
The 14th Manhae Prize(Academy) Winner - John Duncan (Head of Center for Korean Studies, Institute of East Asian Studies at UCLA, U.S.A)
 
1. Reason of Award
 
Teaching East Asian studies at UCLA, John Duncan Ph. D. has made remarkable achievements in Korean studies in American academia. Born in Arizona in 1945, he served in the American military stationed in Korea and fell in love with a Korean lady. After quitting his school in America, he transferred to Korea University and studied Korean studies. Married to a Korean woman, he speaks Korean fluently. Back in the United States, he obtained a Ph. D. in Korean studies at Washington State University and has taught Korean studies at the Department of East Asian Studies of UCLA, which is the most active Korean studies department in the nation.
His academic achievements in the field of Korean studies can be divided into four aspects: they are the establishment of the Chosun Dynasty, reevaluation of Chosun Confucianism, formation of the nation, and the failure discourse of the 19th century. He visited all the four areas and made critical reviews.
First, he raised questions about the appearance of new illustrious officials in regard with the establishment of Chosun. By making a critical approach to the theory of political changes at the royal court maintained by the colonial scholars, he examined the subject by focusing on the political and social contradictions of Goryeo Dynasty, in which his creativity stands out.
There his reevaluation of Korean Confucianism deserves discussion. He logically proved two points: first, he critically revisited the prevalent view that saw Chosun Confucianism as a very narrow and inflexible orthodox theory. European and American scholars tended to see the founding ideology of Chosun to be neo-Confucianism, call Chosun the land of orthodoxy, and compare Chosun with the Ming and Qing Dynasties, when the doctrines of Wang Yangming and the methodology of historical research prevailed, as well as Japan during the era of Tokugawa bakufu, when the ideological climate was rich. However, Prof. Duncan argued that the mainstream of Korean Confucianism in the 14th and 15th century was closer to classical literature of the Northern Sung Dynasty that placed more importance on the roles of the central government than the neo-Confucianism of the Southern Sung Dynasty that valued individual cultivation and local autonomy such as Hyangyak. He also demonstrated that Chosun Confucianism was flexible in practice, dealing with reality according to the flow of the period and not being bound to the orthodox theory of neo-Confucianism. Furthermore, he emphasized differences between the public-private concept of the West, which pursued egoistic interests, and that of Korea and the Far East, which pursued harmony across society, regarding the discussions about Confucian capitalism and Confucian nationalism that were popular among European and American social scientists in the 1990s. Thus he maintained that the model from the Western history should not be mechanically applied to the Orient.
The third topic concerns the formation of the nation. For the last ten years or so, European and American scholars argued that the formation of the Korean nation happened in the late 19th century or early 20th century, being the product of Western nationalism. Unlike their argument, however, Prof. Duncan discussed that the formation of the Korean nation was much earlier than that of the West due to the long experiences as a unified nation and foreign invasions such as the Manchu Invasion of 1636 and Japanese Invasion of 1592. He also concluded that intellectuals since the former half of Goryeo were aware that they belonged to a social and cultural group beyond the boundaries of a kingdom or dynasty, being called the same country, and that even the common people were very likely to have nationalistic perceptions that they were different from Japanese and Chinese people already in the 17th and 18th century, judging from diverse materials including Imjinrok that was orally passed down.
And finally, he actively re-reviewed the discourse of failure in the 19th century. The European and American scholars mostly understand that Korea was colonized by Japan or Western powers after opening its port in 1876. But Prof. Duncan saw the argument as the product of the modernization theory, which was raised by the United States after the 1950s. He pointed out that the argument overestimated the interfering influences of foreign powers such as Japan, China and Russia on Korea those days and overlooked the Korean people's efforts to make the country stronger for themselves. Then he went on to reexamine the reform projects and modernization processes of the Great Korean Empire and proved that their reform directions and independent modernization efforts at the end of the empire were positive in order to renew the perceptions of Korea in the late 19th century and early 20th century.
In addition to those outstanding academic achievements, Prof. Duncan has made tremendous academic contributions to the field of Korean studies through the following three kinds of publications: he published books to introduce the research on Korean history by American scholars to the Korean academy, translated the primary materials of Korea into English, and introduced the research achievements of Korean scholars to the West. They are part of his important academic contributions in that they helped to establish the universality of Korean history. In short, Prof. Duncan as a scholar of Korean studies has concentrated his academic passion on Korean studies to objectively understand and write Korea's historical experiences beyond the subjective views and interests of different academies across many nations. Thus his research of Korean history holds important significance.
Being recognized for his academic achievements, he was awarded the Korea Foundation Award from the foundation in 2009.

1. 수상자 선정 사유
미국 UCLA 동아시아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던컨 박사는 미국학계에서 한국학 연구에 발군의 업적을 쌓은 연구자이다. 1945년 미국 아리조나에서 출생한 그는 주한미군으로 근무하다가 한국 사랑에 빠져 미국에서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고려대학교에 편입해 한국학을 공부했다.
한국인 여성과 결혼한 그는 한국말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미국으로 돌아가 워싱턴주립대에서 한국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이후 미국 내에서 한국학 연구가 가장 활발한 UCLA 동아시아학과에서 한국학을 가르치며 연구하고 있다.
그의 한국학 연구에 대한 학문적 업적은 크게 네 가지 측면에서 요약된다. 첫째 조선왕조 건국 문제, 둘째 조선 유학에 대한 재평가, 셋째 민족형성 문제, 넷째 19세기 실패담론에 대한 비판적 검토 등이 그것이다.
우선 조선 건국에 있어서 던컨 교수는 신흥 사대부 계층의 등장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였으며 식민지 학자들이 주장하는 궁전정변설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접근하여 조선의 건국을 고려왕조의 정치적 사회적 모순에 초점을 맞추어 규명했다는 점에서 독창성을 갖는다.
다음으로 거론될 수 있는 것은 한국의 유학에 대한 재평가이다. 던컨 교수에 의해서 논증된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조선시대의 유학을 매우 편협하고 유연성 없는 정통론으로 보는 일반 통설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재검토하였다. 구미학자들은 대체로 조선 건국 이념은 주자성리학을 주류로 보고 조선을 정통론의 나라(land of orthodoxy)라고 하면서 양명학과 고증학이 성행했던 명과 청 시대의 중국이나 사상적 풍토가 다양하다고 생각되는 도쿠가와 막부 시대의 일본과 대조시키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던컨 교수는 14세기와 15세기의 한국 유학의 주류가 개인의 수신과 향약과 같은 지방의 자치적 제도를 중시하는 남송의 주자성리학이 아니라 오히려 중앙정권의 역할을 중시하는 북송의 고문학에 더 가까운 것으로, 조선시대의 유학은 주자성리학의 정통론에 얽매인 것이 아니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현실에 대처하는 유연하고 실천적인 것이었음을 논증하였다.
또 다른 하나는 1990년대에 구미 사회과학자들 사이에 유행하던 유교자본주의, 유교민족주의에 대한 논의에 대해 개인주의적인 이해관계를 추구하는 서양의 공사 개념과 사회 전체의 조화를 지향하던 한국 넓게는 동양의 공사 개념의 차이를 강조하고 서양사의 모델을 동양에 기계적으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세 번째 거론될 수 있는 것은 민족형성 문제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구미에서는 한국의 민족형성을 서양의 민족주의 파생적인 산물로 19세기 말이나 20세기에 들어와서 비로소 형성됐다고 보는 것에 반하여 던컨 교수는 한국의 민족형성은 오랜 통일 국가의 경험과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과 같은 외침으로 인해 서양의 경우보다 훨씬 일찍 이루어졌다고 본다. 그는 고려 전기 이래의 지식인층은 그들이 동국과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어느 한 왕국이나 왕조를 초월하는, 사회적 문화적 집단에 귀속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고 구전으로 내려온 임진록과 같은 자료로 봐서 17·18세기에 들어와서 일반 백성들도 일본인, 중국인과는 자신들이 다르다는 원본 민족주의적인 자각의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네 번째 거론될 수 있는 것은 19세기의 실패담론(discourese of failure)에 대해 던컨 교수의 적극적 재검토이다. 구미 학계에서는 1876년도의 개항 이후의 한국을, 일본에 의해서 또는 서양의 열강에 의해서 식민지화로 가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이다. 그러나 던컨 교수는 이러한 주장은 1950년대 이래 미국 쪽에서 제기된 근대화 이론(mo-dernization theory)의 산물이라 보았다.
당시 한국에 대한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외부 세력들의 간섭을 과대평가하고 한국인들의 자주적인 자강 노력을 도외시한 것이라 분석한 그는,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한국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기 위하여 대한제국의 개혁 사업과 근대화 과정을 재검토하여 구한말 당시의 개혁 방향과 자주적인 근대화 노력을 긍정적인 면에서 논증했다.
이상의 뛰어난 학문적 업적 이외에도 던컨 교수는 다음 세 가지 종류의 출판물을 통해 한국사 연구 분야에서 충분한 학문적 기여를 했다고 판단된다. 한국 역사에 대한 미국 학자들의 연구를 한국 학계에 소개하는 저서와 한국의 일차적 자료를 번역한 것 그리고 한국 학자들의 연구 성과를 서구에 알렸다는 것은 한국사의 보편성 확립이라는 점에서 그의 중요한 학문적 기여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전체적으로 종합하자면 던컨 교수는 한국사 연구자로서 각국 학계의 주관과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한국의 역사적 경험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서술할 수 있는 한국학을 탐색하기 위해 학문적 정열을 집중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한국사 연구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는 이 같은 학문적 업적을 평가받아 2009년 한국의 국제교류재단에서 수여하는 ‘국제교류재단상’을 받은 바 있다.
 
2. Impression of Manhae Prize
 
It is a great honor for me to receive the academy Manhae Grand Prize.  I must, however, admit some doubt that I am worthy of this honor when I consider the outstanding scholarly accomplishments of the earlier recipients of this prize, including Professor Kang Man’gil who was my teacher during my undergraduate years at Korea University, not to mention the attainments of Professor Kim Hak Sung, who is also receiving the academy prize this year.
Manhae Han Yongun is well known in Korea for his struggles to reform Buddhism, to realize social justice, and to attain the independence of Korea from Japanese colonial rule.
But he should also be considered as one who represents the struggles of the oppressed peoples throughout the world to attain freedom and independence in the twentieth century.  If Manhae were alive today, he would surely be in the forefront of the effort to attain the democratic, autonomous, and peaceful reunification of Korea.
I do not believe that receiving the Manhae Grand Prize is a reflection of some particularly outstanding individual attainment on my part.  Rather it is recognition of all those who have helped my in my efforts over the years.  I have a lifelong debt to my teachers of the Department of History at Korea University. 
 The faculty there in the early 1970s were world class in both their scholarly achievements and their personal qualities and they were unstinting in their encouragement of me despite my many shortcomings. My classmates also gave me a great deal of help as I was struggling with my studies; I don’t believe I could have learned what I did and gotten my degree without their generous assistance. 
 After I returned to the U.S. for my graduate studies, I was blessed with guidance from such outstanding teachers as Hugh Kang and Yong-ho Choe of the University of Hawaii and James Palais of the University of Washington.  I was also fortunate enough to get a position at UCLA, where professors Robert Buswell and Peter Lee had already begun to build a substantial Korean Studies program which made it relatively easy for me to do my work.
 I suppose that my research accomplishments are of some merit, but what I take the greatest satisfaction from is the new generation of Korean Studies scholars who have studied with me at UCLA. They have show much attachment to the field of Korean Studies and to Korea itself and have gone on to take positions at various top-notch universities in the U.S., as well as at universities and research organizations in Korea where they are actively researching and teaching about Korea. 
I have no words to express my gratitude to the Manhae Foundation for awarding me the Grand Prize and can only say that I will do my best to uphold Manhae Han Yongun’s spirit of cherishing and respecting human beings.
2. 수상소감
 
학술 부문의 만해대상을 받게 된 것은 대단한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역대 학술 부문 수상자의 명단을 보니 학부 시절의 은사님이시던 강만길 선생 외 학문적 업적이 뛰어나신 분들이 많이 계실 뿐더러 저와공동 수상자이신 성균관대 김학성 교수님의 업적을 봐서 이 대상을 받는 것은 저로서는 좀 과분하다는 감도 없지 않습니다.
만해 한용운 선생은 불교계의 개혁, 사회적 정의, 그리고 식민지 조선의 독립을 위해 쉬지 않고 계속 투쟁하신 것으로 한국 내에서 널리 알려져 있는 위인이지만 20세기를 통해 각 지역 약소민족들의 해방과 독립을 위한 운동을 대표할 만한, 세계적인 위인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지금에 살아계시다면 한국의 자주적, 민주적, 그리고 평화적 통일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시리라고 믿습니다.  뿐만 아니라 만해 한용운 선생이 보여주신 자비심과 평등, 평화에 대한 숭상은 21세기 초에 세계 각처에서 일어나는 전쟁과 폭력 행위에 당면하고 있는 우리에게 매우 귀중한 모범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해대상을 받게 된 것은 결코 제 자신이 개인적으로 뭔가를 특별히 잘 해서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1970년대 초에 고려대학교에 입학할 당시 저희가 모시던 역사학과 교수진은 세계 어디에서도, 학자로서 또는 인격자로서 그만한 스승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훌륭하셨습니다.
그분들이 여러모로 부족한 저를 너그럽게 대해 주시면서 계속 장려하신 것에 대해 어떻게 보답해 드려야 할지 평생의 숙제입니다. 그리고 강의 내용이 어려워서 따라가지 못할 지경에 몰렸던 저를 도와준 고대 사학과 동기들이 없었다면 학점도 못 따고 졸업도 못 했을 것입니다.  또한 미국에 돌아와서도 석사과정에서 하와이대 강휘웅과 최영호, 그리고 박사과정에서 워싱턴대학교의 제임스 팔레와 같은 우수한 스승들 밑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박사학위를 끝내고 운 좋게도 UCLA에서 자리를 잡게 됐는데 UCLA에 와 보니까 피터 리와 로버트 버스웰 두 교수가 이미 한국학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구축하기 시작하셔서 제가 별다른 어려움 없이 거기에 따라갔을 뿐입니다. 제 연구 업적은 그런 대로 의의가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자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제 밑에서 공부한 차세대 한국학 학자들입니다. 
제가 특별히 잘 가르쳐 주었다기보다는 그들이 한국과 한국학에 대한 애착심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해서 미국의 여러 명문대학, 또는 한국의 몇 개의 주요 대학과 연구기관에서 자리를 얻어 열중적으로 활약하는 것을 보니 마음이 흐뭇합니다. 
만해재단에서 저의 노력을 감안하고 상을 주는 것에 대해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될지 모르겠지만 사람을 아끼고 사람을 존중하는 만해사상의 기본 정신을 할 수 있는 데까지 이어 받아 실천하도록 다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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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회 정진규.jpg

제14회 만해대상(문학부문) 수상자 - 정진규 시인·《현대시학》 주간
The 14th Manhae Prize(Literature) Winner - Jeoung Jin gyu (Chief Editor of Contempory Poetry Weekly)
 
1. Reason of Award
 
The poet Jeong Jin-gyu is one of the most important poets to represent Korean modern poetry. Living 50 years of his life immersed in poetry, he is still active with his creations and amazes his juniors at the age of 70-something.
Born in Anseong, Gyeonggi Province in 1939, he belonged to the first generation that received classes in Korean after Korea took back its independence. He had already entered the arena of poetry creation in Anseong Agricultural High School and made his debut in the literary circle by winning a prize in a literary contest sponsored by the Dong-A Ilbo in the spring of 1960 while attending Korea University in Korean Literature and Linguistics. In 1962, he worked on the publication of Manhae's first collection as a member of the "Publication Committee of Manhae Collection" along with Ahn Gwon-hwan and Park No-jun by finding and sorting out his manuscripts while attending Korea University. The experience had enormous impacts on his thinking of Zen Buddhism.
In 1963, he joined Modern Poetry, a little magazine created by modernist poets who pursued pure poems, and sought after the life force of the body and nature based on ego and natural exploration, thus playing a role in the history of Korean poetry with his unique views.
In 1988, he inherited the steering wheel of Modern Poetry, a monthly poetry publication, after Poet Jeon Bong-geon passed away. Running the publication as chief editor for 22 years, he has published 250 issues, developed it as the greatest literary publication in the poetic circle of Korea to lead poetic discourse, and discovered many outstanding poets, thus contributing to the world of Korean poetry.
It was in the 1970s that he first introduced prose poems based on Oriental Spirit and pioneered its model. Since then, he has continued to develop a prose format into a new poetic format containing the life rhythms and fantasy waves of lyrical intonations by pursuing integration between individual and group relationships or so-called poetic nature and prose nature. His influences on his followers are so immense that the mere mention of prose poems will remind them of him.
In 1994, he published his ninth collection of poems titled The Body Poetry and began to call the substance that contains both our presence in time and in eternity the body. In 1997, he published his tenth collection of poems titled The Egg Poetry and went on to symbolize the cosmic completion pursued by the body and turn the "body poetry" into a genre. What he emphasized in The Body Poetry was the unity, wholeness, and organic nature of the body and poetry, the characteristics of which already indicate the nature of the Buddha. The idea that the body and poetry are in an inseparable relationship targets the conquest and deconstruction of binary thinking highlighted by Western metaphysics. It also overturns our fixated, conditioned, and conventional thinking through Zen Buddhist insight and wisdom, which argues that there is no separation between "in and outside," "phenomenon and nature," "you and me," and "moment and eternity."
That seems to have something to do with the fact that he worked on the publication of the "Manhae Literary Collection" while attending Korea University in Korean Literature and Linguistics and studied under High Priest Hyodang Beomsul, one of the greatest scholars of the days.
His Confucian tendencies are well known in the literary circle. It would be no exaggeration to say that he is the last classical scholar of the Chosun Dynasty. As people say the Three Features are poetry, prose, and painting, he has vigorously and continuously pioneered and explored prose poems for about 50 years and made a master out of himself. His determination and implementation are the guide to his successors. It is a widely known fact that the Gyeongsan style that was named after his pen name has already reached an original state. Painting does not always require the act of actual painting at some place. Of course, painting is painting; but his poems are the paintings of his words that describe the life force of the body and nature and, at the same time, capture the world of no distinction between two, which all painters pursue but fail to reach, in his own language. He is more than a painter of enhancement who can read and paint minds with language.
He served the Society of Korean Poets as president from 1998 to 2000, taught literary creation at Hanyang University, and received many prestigious awards including the Woltan Literary Award (1985), Gongcho Literary Award (2001), Korean Medal of Culture (2006), Literary Award of Modern Buddhism (2008), and the Lee Sang Poetic Literature Award (2009).
His 17 works include his first collection of poems Peace of Dry Kaoliang Stalks (Moeumsa, 1965) and the recently published Air Is My Love (Book-Making House, 2009).
 
1. 수상자 선정 이유
 
정진규(鄭鎭圭) 시인은 한국 현대시를 대표하는 중요한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50여 년간 시와 함께 살아온 정진규 시인은 70세가 넘은 현재에도 왕성한 작품 활동으로 후배 시인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1939년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나 광복 이후 한글로 첫 수업을 받은 모국어 1세대 시인인 정진규는 안성농고 시절부터 시문(詩門)에 들어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재학 중인 196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문단에 등단하였다. 특히 1962년 고대 재학 중 인권환 박노준 등과 같이 만해의 첫 전집인 《만해전집》 간행위원에 참여하여 원고를 발굴하고 정리 작업을 함으로써 후일 그의 선불교적 사유에 지대한 영향을 받게 된다.
1963년 정진규 시인은 순수시를 지향하는 모더니즘 계통의 시인들의 동인인 ‘현대시’에 동인으로 참여하여 자아와 자연 탐구를 근본으로 하는 몸과 자연의 생명력에 천착하여 독특한 시각으로 우리나라 시사(詩史)에 일익을 담당하였다.
1988년 전봉건 시인의 작고로 월간 시전문지 《현대시학》을 승계, 현재에 이르기까지 22년째 주간을 맡아 250여 권을 발간해 오면서 한국 시단 최우수 문예지로 시적 담론을 주도하여 왔으며, 그간 수많은 우수 시인을 발굴하여 우리 시단에 기여해 왔다.   
1970년대 중·후반부터 정진규 시인은 동양정신을 매개로 하는 산문시를 도입하여 한 장르의 표본을 개척하였다. 개인과 집단 간의 관계, 이른바 시성(詩性)과 산문성의 구체적 통합에 들어가 서정적 억양의 생명률과 환상의 파도가 있는 산문형태를 새로운 시 형식으로 천착시키는 작업을 지속해 왔고, 산문시 하면 자연 정진규 시인을 연상하게 할 정도로 후학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특히 1994년 제9시집 《몸詩》 출간을 계기로 시간 속의 우리 존재와 영원 속의 우리 존재를 함께 지니고 있는 실체를 ‘몸’이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1997년 제10시집 《알詩》 출간에 이르러 ‘몸’이 추구하는 우주적 완결성을 ‘알’로 상징화하면서 ‘몸詩’라는 말을 장르화해 왔다. ‘몸詩’에서 그가 강조한 것은 몸과 시의 통일성, 전일성, 유기성이고 이런 특성은 이미 불성(佛性)을 지시하고 있다. 요컨대 몸과 시가 불이(不二)의 관계에 있다는 인식은 서구의 형이상학이 강조한 이항대립적 사유의 극복과 해체를 노린 것으로 ‘안과 밖’ ‘현상과 본질’ ‘너와 나’ ‘순간과 영원’이 둘이 아니라는 선불교적 직관과 지혜로 양변의 고정되고 정상화(定相化)된 관습적인 우리의 사유를 무너뜨림으로써 오는 영원한 해방, 즉 해탈을 노래한다.
이것은 그가 고려대 국어국문과 재학 시 《만해문학전집》 간행에 인연을 맺은 것과 또 당대 학승인 효당범술(曉堂凡述)의 문하에 명부를 들였던 것과 무관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정진규 시인의 유가적 풍모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가히 조선의 마지막 선비라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시서화(詩書畵)를 삼절(三絶)이라 부르듯이 시에 있어서는 시력 50여 년 동안 산문시를 줄기차게 개척하고 천착하여 일가를 이룬 것, 즉 결의와 실행의 선비정신은 후배들에게 사표가 되었으며, 또 그의 호를 딴 경산체(絅山體) 서예가 독창적인 경지에 이르렀음은 문단에서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화(畵)를 이를 것 같으면 어디 꼭 그림을 그려야 화이랴. 물론 그림이 화다. 그렇지만 정진규 시인의 시는 몸과 자연의 생명력을 그려내는 그의 언어로 된 그림은, 일체의 모든 화가들이 지향하다 끝내 완성에 이르지 못하고 마는 저 너머 불이(不二)의 세계를 정진규의 언어로 집어낸다. 언어로 마음을 읽어내고 그려내는 향상의 화백이고도 남음이 있다.
1998년부터 2000년까지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하였고.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월탄문학상(1985), 공초문학상(2001), 대한민국 문화훈장(2006), 현대불교문학상(2008), 이상시문학상(2009) 등을 수상하였다.
작품집으로는 첫시집 《마른 수수깡의 平和》(모음사, 1965)과 최근에 발간한 《공기는 내 사랑》(책 만드는 집, 2009) 등 17권을 냈다.
 
2. Impression of Manhae Prize
 
It is extremely hard to come across a temple that is devoted to a part of the nation's poetic spirit or literary history itself. That is why we find great significance in Baekdam Buddhist Temple, which once hosted Manhae, has inherited, practiced, and promoted his spirit and literature, and has been worshiped as a model of great poetry and literature that the nation's literature should open doors to. Thus it is such a huge honor for me to receive a prize in his name. In fact, I cannot help wondering if I have done sufficient literary activities to deserve the honor. My ongoing gratitude goes out to the Society for the Promotion and Practice of Manhae's Thoughts and the jury.
Today I am given an opportunity to look back on the shadow where I have basked in the influence of Manhae I have read and studied for many years. As it is widely known, he was born in Nammun-ri, Hongseong-eup, Chungnam Province during the reign of King Gojong in the Gimyo year of 1879. Can it be such a coincidence that I too was born in the Gimyo year of 1939? To confess, I find great joy and excitement in finding such a connection and obligations with him. I also take this chance to confess that my prose style that I have pursued for many years originated in his Your Silence and its saseol-che, mysterious tricks, and ideology.
I still vividly remember when Widang compared Manhae's true aspects to the so-called "spicy scent" of wind and orchid paintings and my master Jihun developed the theory of Han Yong-un in his unique robust style, arguing that his hardness and sharpness, strictness and intensity, and sadness strike a chord in our thinking minds. His unreserved style still makes my heart beat faster. Just as Jihun argued, I will once again remind myself that Manhae's people-centered movement to practice his ideology of finding proof in reality as the master Confucian writer of Seongyossangsu is the route to great literature and poetry we should respect along with his endless yearning for "dear you" throughout his literature as a lyric poem.
I was able to look back with modesty on the poetic history of mine you assessed and encouraged me for, and found a couple of openings, ways into the poetic world. Although I would not bother you by enumerating them and disclosing my shameful failure, I would like to demonstrate a journey of my body poetry: the conflicts between sensibility and reason which have possessed me since childhood have changed their form into those between verse and prose nature and driven me into further agony. They have long been the subject of my poetic consciousness to overcome, taking new forms such as the issue of poetry's social acceptance between the group and individual and the issue of expression between vagueness and honesty. In other words, I have always positioned my poetry in the poetic implementations of diverse ways to erase boundaries. The prose style, which has become a genre as my poetic form, can be a good example of this. I am still trying to substantiate the world of melodies where lyrical rhythms and fantastic waves become one and the order of the cosmic order of the body and egg with the spirit of denying two separate items. That is the gist of my prose poetry.
I have tried to be careful and control myself when it comes to my appetite for poetry, only to realize that I cannot escape from it. Still I have a long way to go before obtaining a place beside Manhae and his poetry he once pointed out.
2. 수상소감
 
우리가 이어 받들어야 할 큰 문학의 길
일찍이 한 사원(寺院)이 그 나라 시 정신의 한 맥(脈)으로, 문학사 그 자체로 정주(定住)하고 있는 사례를 찾아보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만해 선생이 일찍이 백담(百潭)에 거(居)하셨다는 뜻에서만이 아니라 만해의 정신과 문학은 이 시간 현재까지 백담(百潭)을 중심으로 계승 실천 선양되고 있으며, 이 나라 문학이 열어야 할 큰 시, 큰 문학의 한 전범(典範)으로서 숭앙되고 있어 무엇보다 그러하다는 말이다.
이러한 선생의 이름으로 상을 받게 되었다는 것은 크나큰 영광이요, 과연 내가 이 상을 받을 만한 문학을 해 왔는지 주저되는 바 없지 않은 것이다. 이 상을 주관하는 만해사상실천선양회와 선정위원 여러분께 거듭 감사의 뜻을 표한다.
그간 내가 읽고 공부해 온 만해 선생의 그 큰 그늘을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짚어 본다.  선생은 아시다시피 1879년 기묘(己卯), 충남 홍성읍(洪城邑) 남문리(南門里)에서 고종(高宗) 연간에 나시었다. 우연의 일치랄까 송구하게도 나 또한 1939년 기묘생이니 갑년(甲年) 전배(前輩)이시다.
이러한 사실마저도 내게는 무슨 인연인가 싶고 큰 은혜로 생각되어 그만 가슴이 두근거린다. 무엇보다 그간 선생의 시와 정신이 지닌 훈도(薰陶)에 접하면서 특히 시 〈님의 침묵(沈默)〉이 지닌 사설체(辭說體), 그 신비한 트릭, 내포된 사상을 나의 시가 그간 궁구해 온 산문체(散文體)의 연원으로 감히 높게 받들어 오기도 했음을 이 기회에 고백한다.
나는 기억한다. 위당(爲堂) 선생께서는 만해 선생의 진면목을 풍란화(風蘭花) “매운 향내!”로 도파(道破)하셨으며, 나의 스승이신 지훈(芝薰)선생께서는 선생의 그 “서리(犀利), 준열(峻烈), 그 애수(哀愁)가 우리의 심두(心?)를 울리고 있다”고 독특한 강건체로 논하신 한용운론(韓龍雲論)을 펼치신 바 있다.
그 방광(放曠)함에 지금도 가슴 설렌다. 지훈 선생께서 이 논에서 전개하신 바와 같이 “선교쌍수(禪敎雙修)의 종장(宗匠)으로서의 선생의 증득(證得)”이 실천한 민족 운동과 서정시로서의 문학을 일관하는 ‘님’에의 가없는 사모는 우리가 이어 받들어야 할 큰 문학 큰 시의 길이라고 가슴에  아로새기고자  한다.
끝으로 평가해 주시고 격려해 주신 내 부끄러운 그간의 시력(詩歷)을 반성 삼아 돌아보니 몇 개의 길트기와 시세계의 단락을 발견케 된다. 굳이 그것들을 여기 열거해 또 한 번의 내 부끄러운 열패의 모습들을 드러내고 싶지는 않지만 그간 열중해 온 소위 나의 ‘몸詩’는 다음과 같은 역정을 거쳐 왔다 할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나를 붙잡고 놓아 주지 않던 감성과 이성의 갈등은 작품 속에서 ‘시성(詩性)’과 ‘산문성(散文性)’이라는 이름으로 모습을 바꾸어 나를 고뇌케 하였으며, 다시 이는 ‘집단’과 ‘개인’이라는 시의 사회적 수용의 문제로, ‘애매함’과 ‘정직함’이라는 표현의 문제로 모습을 바꾸어 가면서 내 시의식의 극복의 문제로 오랜 세월 화두(話頭)가 되어 왔다.
다시 말해 그 ‘경계를 지우는’ 다양한 방식의 시적 구현 속에 내 시는 자리해 왔다. 소위 내 시 형식으로 장르화된 산문체가 그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서정적 리듬과 환상의 파도가 한 몸을 이루는 율려(律呂)의 세계, 그래서 나온 ‘몸’과 ‘알’이라는 우주적 생명의 질서를 불가적 ‘불이(不二)’의 정신으로 나는 지금도 실체화하려는 추구 속에 있다. 그것이 내 산문시(散文詩)의 요체라 할 수 있다.
조심하고 절제코자 하나 겁 없는 나의 시탐(詩貪)은 벗어날 길이 없어 만해 선생이 지적하신 시수(詩瘦)의 득격(得格)은 아직도 아득하기만 하다.
다시 한 번 만해사상실천선양회와 심사위원 여러분께 합장, 머리 조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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