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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회 만해대상에 이소선 여사 등 선정
평화-시린 에바디, 실천-이소선, 학술-김용직, 문학-로버트 하스·김종길, 포교-빤냐와로 스님
 
13회 만해대상 수상자들. 왼쪽부터 이란 인권변호사 시린 에바디, 이소선 여사, 김용직 교수, 미국 계관시인 로버트 하스, 김종길 시인, 빤냐와로 스님.
이란의 여성인권운동가이자 변호사 시린 에바디,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고문 이소선 여사, 서울대 명예교수 김용직 박사, 미국의 계관시인 로버트 하스, 김종길 시인, 영문 웹사이트 붓다넷 웹마스터 빤냐와로 스님이 13번째 만해상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만해대상 심사위원회(위원장 양승태, 대법관)는 4일 최종 심사를 마무리하고 시린 에바디 등을 2009년 만해대상 수상자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시상식은 8월 12일 오후 4시 강원도 인제 만해마을에서 열리는 만해축전 때 열리며 수상자에게는 각각 3만 달러의 상금이 수여된다.

만해대상 평화부문 수상자 시린 에바디(62) 변호사는 이란 최초의 여성판사. 2003년 이슬람권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노벨상평화상을 수상했다. 이슬람 율법을 앞세운 이란에서 여성과 어린이 등 억압받는 인권의 향상을 위해 앞장서왔다.

1970년 중반 팔레비 왕조 하에서 판사가 된 이후 왕정에 맞서 이슬람 혁명에 동참했으나 혁명 성공 이후 호메이니의 극단주의에 의해 강제 퇴직됐다. 1992년 인권 변호사의 길로 들어서 가족법 등 여성과 어린이의 인권을 지키는 일에 투신해왔다. 현재 ‘지뢰제거참여센터’와 ‘인권을 지키는 사람들’ 등을 이끌고 있다.

실천부문 수상자 이소선 여사는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면 분신한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아들 전태일의 죽음을 계기로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에 투신, 한국 민주노동운동은 물론 한국사회의 민주화와 인간해방운동의 발전에 기여해 오고 있다. 현재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고문.

심사위원회는 "이소선 여사의 삶은 구권상실과 자유 유린의 암담한 일제강점기에 민족독립과 사회개혁을 위해 헌신한 만해 한용운 스님의 겨레사랑과 나라사랑의 현대적 실천"이라고 평가했다.

학술부문 수상자인 김용직 서울대 명예교수는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으로, 주로 한국 근대시의 역사적 정리와 그 미학적 체계화라는 일관된 목표를 내세우면서 꾸준한 비평활동을 전개해왔다.

김용직 교수는 1961년 〈자유문학〉에 〈우리 현대시에 나타나는 두 양상에 대하여〉를 발표하면서 문학평론가로 등단한 이래, 한국 근대시의 특성을 역사주의적 관점과 분석주의적 방법을 통합한 독특한 관점에서 해석한 〈소월의 시와 앰비규어티〉(1970),〈시작에 있어서의 짜임새 문제〉(1970) 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또한 동시대의 문학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한 〈민족문학의 건설문제〉(1975),〈대중사회와 시의 길〉(1977) 등을 발표하며 활발한 평론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문학부문 수상자 로버트 하스는 미국 계관시인으로 인간 언어의 생명력을 시를 통해 새롭게 창조하고 인간의 생명의 존엄성을 강조하면서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을 생태주의 관점에 천착해 가는 다양한 시들을 발표하고 있다. 2005년 열린 만해축전 세계평화시인대회에 미국 대표로 참여하기도 했다.

2006년 미국 <뉴욕 리뷰 오브 북스>에 한국의 시인 고은의 시세계를 소개하는 장문의 평론을 발표했으며 2009년 5월 ‘한국의 여성 시’라는 주제로 한국여성 시인들을 초청, 시낭송회와 세미나를 개최하고 자신이 주재하는 <점심시간의 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문학행사를 조직 준비중이다. 현재 인간의 삶과 환경에 대한 생태주의적 관심을 문학을 통해 구현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한국문학에 대한 커다란 관심을 갖고 미국 사회에 한국문학을 소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문학부문 공동 수상자인 김종길 시인은 <성탄제> 등의 시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영미시와 시론을 국내에 폭넓게 번역 소개했을 뿐 만 아니라 한국 현대시를 영역하여 외국에 소개하여 ‘세계 속의 한국문학’의 위상을 지속적으로 높여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시인협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고려대학교 영문학과 명예교수.

심사위원회는 "김종길 선생이 평생 이룩한 업적과 성과는 큰 산의 봉우리처럼 높고 장엄하여 치열한 각고의 정신과 천부적 자질이 아니고는 도저히 다다를 수 없는 하나의 찬연한 역사가 됐다"고 평가했다.

포교부문 수상자 빤야와로 스님은 불교전문 영문종합 웹사이트 ‘붓다넷 넷(http://www.buddhanet.net)’을 운영하고 있는 웹마스터다. 붓다넷 넷은 1992년 오픈한 이래 2009년 2월 현재 1일 평균 순방문객은 1백만 명 이상을 기록하고 있는 세계 최대 최고의 불교전문 인터넷 웹사이트이다. ‘붓다넷 넷’은 비영리회사인 ‘佛法敎育協會(Buddha Dharma Education Association Inc.)’에서 운영하고 하고 있으며 불교교육 자료와 불교정보가 주내용이다.

만해대상은 만해사상실천선양회(총재 지관 조계종 총무원장)에서 제정하고 만해 마을과 만해학술원에서 주관·시상한다. 1997년 첫 수상자를 선정한 만해대상은 지난해까지 54명과 3개 단체가 수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이 가운데는 김대중 전 대통령, 넬슨 만델라, 달라이 라마, 쇼잉카 등 노벨상 수상자도 만해대상을 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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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시린 에바디.jpg

제13회 만해대상(평화부문) 수상자 - 시린 에바디 (이란, 인권운동가, 이슬람 국가 첫 여자 노벨상 수상자)
The 13th Manhae Prize(Peace) Winner - Shirin Ebadi (Iranian Human Rights Advocate, Iran's first female judge and the Islamic world's first female Nobel Prize winner)
 
1. Reason of Award
 
Shirin Ebadi (62) is Iran's first female judge and the Islamic world's first female Nobel Prize winner. However, her life has been dominated by continuous hardship and suffering. In 2003, she won a Nobel Prize in Peace and emerged as an international figure, but she has been stigmatized as an anti-regime activist and pain in the neck to the Iranian government.
She has been walking through a thorny bush that requires bravery and determination to overcome fear. Her hardship has continued after winning the Nobel Prize.
In mid December last year, the police bombarded the  Center for Participation in Clearing Mine Areas and Defenders of Human Rights Center in Tehran and closed the offices down. Preparing for the 60th anniversary of the World Declaration of Human Rights with her colleagues, she was arrested and then later released.
In the mid 1970s, she was a judge under the Pahlavi regime. After joining in the Islamic Revolution to fight against the corrupt royalty, however, she was forced to retire due to the extremism of Ayatollah Ruhollah Khomeini after five years on the bench. Since then she has devoted herself to human rights movements. She has been arrested and threatened with death many times. In 2005, Iran was taken over by the conservative Ahmadinejad administration, after which oppression in the nation has worsened. In 2006, she received a letter implying her assassination and was forced to stop so-called "illegal activities" by the regime.
All contacts with foreign media have been prohibited, as well. She said, "It's not easy to work for human rights movements, of course. It's especially difficult as a woman in a strict society like Iran. However, I am not afraid of the journey since I believe it's the right thing to do. Now I know how to control my fear." Under the rule of the Iranian government that emphasizes commandments of Islam, she has been taking a leading position for the sake of women and children under suppression and is widely known as an Iranian human rights activist across the world.
She was born in Hamadan in the northwestern part of Iran in 1947. In 1974 she graduated from Tehran University in law and was appointed as the nation's first female judge. She climbed up the career ladder becoming the head of the Tehran Court until she was forced to retire after the Islamic Revolution led by Khomeini in 1979. The hard-line Islamic regime forbid women to be appointed as judges saying "Women are emotional and thus not proper for execution of law." She was eventually demoted to an office work position, around when she had a miscarriage and many more difficulties. Not giving in to the regime, she became a human rights advocate in 1992 and started her long battle for the rights of women and children in the court. She pointed out the problems with the unfair interpretations of the Islam canon by the fundamentalists and played a leading role in revising the family laws related to women's divorce, inheritance, and right to children. In Iran, women were given the right to raise their girls up to two years old and boys up to seven years old after a divorce. But today both girls and boys are raised by mothers until they become seven years old, when they get to decide if they want to live with their mothers or fathers. When women get to raise children, husbands should pay for the upbringing. Ebadi is happy that children are no longer forced to undergo tearful separation from their mothers today.
In 1999, she fought hard in court for the sake of the families of some intellectuals that were the victims in a serial killing and successfully revealed who was behind the police's invasion into Tehran University in which several college students were killed. By doing such works, she proved that "The true commandments of Islam can coexist with such values as women's equality and democracy." However, she had to pay a price by having her attorney license suspended, being jailed over and over, and being threatened to be assassinated many times. However, she opted to remain in the country, unlike many anti-regime activists, to fight for the weak. She said "Iran's human rights improvement should be done through the country itself without assistance from foreign countries or outside forces," and her argument for independent revolution has received a huge reaction.
In 2003, the Nobel Prize Committee appointed her as the year's winner in Peace saying "She has clearly and proudly expressed her beliefs as an advocate, judge, author, and human rights activist and never succumbed to any threat as a sound professional and brave human being."
At the award ceremony, she didn't wear a hijab worn by many women in Islam, saying "I do wear a hijab in Iran but don't see any reason to in a foreign nation where the rule holds no validity." In fact though, she wanted to show her resistance against the oppressive closed Islamic society.
She has carried on a campaign to demand a peaceful resolution to Iran's nuclear weapon issue along with George Williams, a demining activist, and other female Nobel Prize winners including Wangari Maathai, an environmental activist from Kenya. At the same time, she's trying to revise the Iranian law that limits women's right to vote.
After winning the Nobel Prize, she has continued her passion and devotion for better human rights for the weak and world peace. In 2006, she was ranked at No. 10 on the list of "World's 100 Intellectuals" by Foreign Policy, an American diplomacy magazine, and Prospect, a British political review.
 
1. 수상자 선정 이유
 
시린 에바디(62) 변호사는 이란 최초의 여성 판사, 이슬람권 최초의 여성 노벨상 수상자다.
그러나 그의 인생 역정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2003년 노벨평화상을 받는 등 세계적 인물로 부상했지만, 정작 그의 조국 이란에서는 여전히 반체제 요주의 인물이자 정권의 눈엣가시다. 그는 평생을 엄청난 용기와 두려움이 수반되는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 노벨평화상 수상 뒤에도 에바디의 고난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중순 그가 이끄는 테헤란 시내 ‘지뢰제거참여센터’와 ‘인권을 지키는 사람들’ 사무실에 경찰이 들이닥쳐 이를 폐쇄했다. 동료들과 세계인권선언 60주년 기념식을 치를 예정이던 에바디는 경찰에 끌려갔다가 풀려났다. 1970년대 중반 파흘라비(팔레비) 왕조 시절 판사로 일했던 에바디는 부패한 왕정에 맞서 이슬람혁명에 동참했으나 곧 호메이니식 극단주의에 의해 판사 임용 5년 만에 강제퇴직된다.
이후 그는 인권운동에 투신한다. 투옥되고 암살 위협을 당하기 수차례, 2005년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보수파 정권이 들어선 뒤 탄압의 강도는 갈수록 더해 가고 있다. 2006년엔 익명의 살해 협박 편지를 받았고, 당국으로부터 “불법 활동을 중단하라.”는 압력도 받았다. 외국 언론 접촉도 금지됐다.
그는 “인권운동을 하는 것은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이란과 같은 경직된 사회에서 여성의 몸으로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내가 가는 길이 옳다고 확신한다면 그 길로 나가는 게 두렵지 않다. 이제는 두려움을 다스릴 줄도 알게 됐다.”고 말한다. 이슬람 율법을 앞세운 신정(神政) 체제의 이란에서 그는 특히 여성과 어린이 등 억압받는 인권의 향상을 위해 앞장서 서방세계에도 널리 알려진 대표적 이란 인권운동가다.
그는 1947년 이란 북서부 하마단에서 출생했다. 1974년 테헤란대 법과 졸업 후 이란 여성 최초로 법관에 임용돼 테헤란 지방법원장을 지내는 등 승승장구하던 에바디는 1979년 호메이니가 주도한 이슬람혁명 후 강제퇴직된다. 이슬람 강경파 정권은 “여성은 감정적이므로 법 집행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여성 법관 임용을 금지시켰다. 에바디는 단순 사무직으로 강등됐다.
이때 그는 첫 아이를 유산하는 등 수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신념을 포기하지 않은 에바디는 1992년 인권 변호사의 길로 들어서, 법정에서 여성과 아동의 권리를 찾아주기 위한 싸움을 벌인다. 원리주의자들의 편파적인 이슬람 법전 해석의 문제점을 짚으며 여성의 이혼, 상속 및 자녀 양육권과 관련된 가족법을 개정하는 데 앞장섰다.
이란에서는 여자가 이혼할 경우 자녀의 양육권은 딸의 경우 2세까지, 아들의 경우는 7세까지만 여성에게 주어졌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7세까지 여성이 가진 뒤 법원에서 자녀의 의견을 반영해 누가 양육할 것인지를 판결해 준다. 여성이 맡을 경우 남편은 양육비를 줘야 한다. 엄마 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우는 아이를 억지로 떼어놓는 가슴 아픈 장면을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그는 감사하고 있다.
그는 1999년 이란 지식인들에 대한 연쇄 암살의 피해자 가족을 위해 법정 투쟁을 벌였고, 수 명의 대학생이 사망한 테헤란대학 경찰 난입사건의 배후를 밝혀냈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그는 “진정한 이슬람 율법은 여성 평등 및 민주주의 가치와 공존한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이에 대한 대가는 변호사 자격 정지, 거듭되는 투옥 및 수차례의 암살 명단 등재였다.
하지만 그는 여느 반체제 인사들과 달리 이란을 떠나지 않고 약자들의 편에서 투쟁했고, 지금도 변함없이 그러고 있다. 그는 “이란의 인권 향상은 외국이나 외부 세력의 도움을 받지 않고 이란 스스로가 이뤄야 할 문제”라며 자주적 개혁을 주장해 큰 호응을 받았다.
노벨위원회는 2003년 에바디를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변호사·판사·작가·인권운동가로서 분명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소신을 밝혀왔으며 건전한 전문인으로서, 용기있는 한 인간으로서 어떤 위협에도 결코 굴복하지 않았다.”는 게 선정 이유다. 그는 노벨상 시상식에서 이슬람 여성이 착용하는 히잡을 쓰지 않았다. 그는 “이란에서는 법에 따라 히잡을 쓰지만 외국에서는 그 법이 효력이 없기 때문에 반드시 쓸 필요가 없다.”고 해명했지만 실은 이슬람 사회의 강제적인 폐쇄성에 대한 항거였다.
에바디는 지뢰 반대 운동가 조지 윌리엄스, 케냐의 환경운동가 왕가리 마타이 등 여성 노벨상 수상자들과 함께 이란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벌이는 한편, 여성의 참정권을 제한하는 이란의 법 개정에도 힘을 쏟고 있다.
그는 노벨상 수상 이후에도 약자의 인권 개선과 세계 평화를 향한 그의 열정과 헌신은 계속되고 있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와 영국 정치평론지 〈프로스펙트〉가 공동 선정한 2006년 ‘세계의 지성 100인’에서 그는 10위에 올랐다.
 
2. Impression of Manhae Prize
It's my greatest honor to win the Manhae Prize. Without a doubt, the prize will help me promote democratic culture and improve the state of human rights in Iran and encourage others working to protect human rights in Iran. Iran and people of Iran will realize that the world is not disinterested in the human rights situation of the country.
It's been 30 years since the establishment of Islamic Republic in Iran after the Islamic Revolution. However, Iran still makes use of horrific laws as stoning, cutting off the hands of thieves, crucifixion, and executing criminals. The problem is that the Islamic Republic maintains that those punishments are based on Islamic commandments. Of course, they're not right because those punishments have long been abolished in other Islamic nations such as Malaysia, Indonesia, Egypt, Morocco, and Tunisia. To that, the Islamic government and the judicature should provide an answer: are they only the ones who can understand and interpret the Islamic commandments? Are other Islamic nations and Muslims all wrong?
It's been 30 years since the foundation of the Islamic Republic of Iran, but the people still lack the right to cast a vote to a congressman or president they favor. According to the law that passed a couple of years ago, only the ones that are approved by the Guardian Council can be candidates, who can be selected by people as their representatives. The problem is that the Guardian Council is not elected by the people but rather appointed.
It's been 30 years since the foundation of the Islamic Republic of Iran. But impartial and discriminative laws still infringe on women's rights. For instance, a woman's life is worth half that of a man in court, where one man's martyrdom equals that of two women. In addition, a man can have four wives. There are many more discriminating laws in Iran. But what's interesting is that there are more Iranian women educated than Iranian men; 65% of Iranian college students or more are female.
There are many tribes that use Kurdish, Baluchi, and Azeri along with Arabic. The Constitution of the Islamic Republic of Iran stipulates that they have a right to learn their languages in school. However, they have not been given the right so far, which has triggered disturbances between them and the central government.
There is no religious freedom in Iran. Muslims are not allowed to convert, and conversion means execution.
Freedom of expression is controlled in Iran. The publication law prohibits any criticism of the Constitution in published materials. Its violation can lead to the closing of the publishing company concerned. There have been many reporters, authors, college students, lawyers, and human rights activists who were jailed for expressing their opinions since the early days of the Revolution. Most of them were forced to give up their nationality after completing their sentences. Censorship has expanded to Internet sites, most of which, especially the ones related to women, are filtered by the government.
Under those circumstances, I and many other human rights activists have focused on promoting human rights and democracy in the nation without resorting to violent methods. We're fortunate enough to have achieved considerable results over the years; the child upbringing law was revised in favor of mothers in 1383 in the Iranian calendar (2004). But we're well aware of the long and rough journey ahead. On December 20, 2008, the Iranian government illegally closed down the central office of the Association of Human Rights Activists, which is a non-profit, non-governmental organization founded by me and my colleagues eight years earlier and headed by me. At that time, they tried to invade my legal office, too. I thus called the police for help, and two officers were dispatched only to stand by and watch illegal acts being committed.
I hope my organization will be able to open its office again thanks to the Manhae Prize.
Even though we're faced with so many problems in Iran, we object to any military attacks or threats and economic sanctions on Iran because the Iranian government will suppress people pursuing freedom even more and restrict any voices against itself at the excuse of maintaining national security.
We've seen the military attacks on Afghanistan and Iraq have backfired, causing more terrorist attacks, sectarian battles in the streets, and numerous innocent victims.
The military invasion in the Middle East not only failed to bring democracy to the local people, but expanded fundamentalism and violence.
Regarding the subject, I can compare the diplomatic situations of Middle East with that of North Korea, which has created dangerous elements with nuclear weapons in the region. In particular, the regime's closed diplomatic system makes it impossible for the international community to control what the regime is doing, which doubles the risk. The international community is facing the North Korean regime in a way that can reduce risks without clashes or violence. South Korea's roles in peace talks with North Korea deserve particular praise. I hope all diplomatic disputes around the world including the one between Palestine and Israel will be resolved in non-violent ways through talks.
Globalization has turned war and peace a global matter. Even if you're not directly involved in a war, its results will affect you overnight. If you are to live in a world with no war or violence, you should fight for it. It's the same whether a war breaks out in your country or anywhere else in the world.
Mankind's destiny is a complex and tangled web. You can't know about mankind's happiness as it is or take it from others. We must share a destiny of hope with others.
Let's be giving like the sun. Let's spread friendship like the wind. Let's get mad at ignorance and prejudice like fire. Let's grow seeds of love in mind like earth. And let's be kind to one another.
Thank you.
Shirin Ebadi
 
2.수상소감
 
올해 대한민국의 만해대상(Manhae prize)을 수상하게 되어 대단히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이 상은 저에게 민주주의 문화 증진과 이란에서의 인권을 높일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이란에서 인권을 수호하기 위해 애쓰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격려가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저의 만해대상 수상으로 그들은 세계의 인류가 이란의 인권 상황에 무관심하지 않다는 것을 잘 인식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슬람 혁명 이후 이슬람 공화국이 이란에 세워진 지 30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도둑의 손을 절단하는가 하면, 죄인에 대한 돌팔매질과 책형, 사형 등의 형벌들이 이란의 법률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형벌의 시행에 대한 이란이슬람공화국의 논거는 이슬람 율법에 따른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이 논거는 옳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처벌들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이집트, 모로코, 튀니지와 그 밖의 많은 대다수의 이슬람권 국가에서 이미 오래전에 폐기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란이슬람 정부와 사법부는 아직도 왜 그런 율법을 고집하고 있는지 답을 해야 합니다. 오직 그들만이 이슬람 율법을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고, 다른 이슬람 국가들의 모슬렘들은 실수하고 있다는 것입니까?
이란이슬람공화국이 건국된 지 30년이 지났습니다만 국민은 자신들이 선호하는 국회의원 또는 대통령에게 투표할 권리가 없습니다. 몇 년 전 인준된 법에 따르면 혁명수호위원회(Guard council)에서 인정한 사람들만 후보자 자격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국민은 자격이 부여된 후보자들 중에서만 대표를 뽑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혁명수호위원회의 위원들은 국민이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임명되는 것입니다.
또한 공정하지 못한 차별적인 법률들이 이란 여성의 인권을 짓밟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여성 생명의 가치는 남성 생명의 가치의 절반밖에 되지 않습니다. 법정에서 두 여성의 순교는 남성 한 명의 순교와 동일하게 취급합니다. 또한 한 남성은 4명의 부인을 둘 수 있는 등, 그 밖에도 많은 차별적인 법률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인권을 박탈당하고 있는 여성들이 이란 남성들보다 더 교육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란 대학생의 65% 이상이 여학생입니다.
코르디, 발루치, 어자리를 비롯하여 아랍어를 사용하는 많은 부족들이 이란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이란이슬람공화국의 헌법에 따르면 그들은 그들의 언어를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들에게 그러한 권리는 주어지지 않았고, 이 때문에 이들 부족과 중앙 정부 간에 불화가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이란에서 종교의 자유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슬람교도들은 누구든 개종할 수 없으며, 개종할 시에는 사형에 처해지게 됩니다. 이란에서는 또 표현의 자유가 제한됩니다. 출판법에 따르면, 출판물에서 헌법을 비판하는 것은 금지되며, 이에 대한 거역은 출판물이 폐간되는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혁명 초기부터 지금까지 많은 기자들과 작가들, 대학생들과 법정 변호사와 인권운동가들은 오직 그들의 의견을 피력한 죄로 감옥에 갔습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수감 생활을 마친 후에 국적을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검열은 인터넷사이트에까지 영역이 확장되었고, 대부분의 사이트, 특히 여성과 관련된 사이트들은 모두 필터링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조건하에서, 저와 여러 인권운동가들은 비폭력 노선을 견지하면서 이란에서 인권 상황과 민주주의를 증진시키는 데 주력했습니다. 운이 좋게도, 지난 수년 동안 괄목할 만한 성과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이란력 1383년 양육에 관한 법률이 이란의 어머니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개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한 길고 험한 여정이 우리 앞에 놓여 있는지 인식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8년 전인 지난 2008년 12월20일, 저와 몇 명의 동료들이 함께 세우고 제가 대표직을 맡고 있었던 비영리·비정부 단체인 인권운동가협회 중앙 사무소가 이란이슬람공화국 정부에 의해 비합법적으로 폐쇄되었고, 그에 이어 제 법률사무소도 그들에게 침입을 당했습니다. 제가 경찰에 도움을 청하자 두 명의 경찰관이 제 사무실에 왔지만, 그들은 웃으면서 그 범법 행위를 보고만 있었습니다. 저의 만해대상 평화상 수상으로 인권운동가협회 사무소가 다시 문을 열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우리는 이란에서 이렇게 수많은 문제점에 직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란에 대한 군사적 침략이나 위협 그리고 경제적 제재 조치에 대해서는 반대합니다. 왜냐하면 이란 정부는 국가안보를 유지한다는 구실로 자유를 갈구하는 사람들을 전보다 더 억압하고, 정부에 반대하는 소리는 무조건 차단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대한 군사적 침략이 오직 테러 확대의 원인이 되었고, 길거리 패싸움에 불과했으며 그로 인한 희생자들은 대부분 죄 없는 민간인이었음을 보아 왔습니다. 중동 지역에의 군사적 침입은 이 지역 주민에게 민주주의를 안겨 주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근본주의와 폭력 확대의 원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중동과 북한의 외교 상황을 비교해 볼 수 있겠습니다. 북한은 핵무기로 동북아 지역에 위험 요소를 만들어 왔습니다. 특히 폐쇄적인 외교 시스템 때문에, 북한 정부가 행하는 일들은 전반적으로 통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는 위험을 두 배로 가중시키게 됩니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충돌이나 폭력 없이 가능한 한 위험성을 배제하는 방법으로 북한 정부와 맞서고 있는데, 특히 북한과의 평화협정의 추진에서 한국의 역할은 칭찬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저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분쟁 등을 비롯한 세계의 모든 외교적 분쟁이 협상을 통해 비폭력적으로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세계화는 전쟁과 평화도 또한 세계화시켰습니다. 직접적으로 전쟁에 관련되지 않은 사람들도, 하룻밤 사이에 그 전쟁의 결과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쟁과 폭력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면, 그것들에 대항해서 투쟁해야 합니다. 전쟁이 여러분의 나라에서 일어나건, 세계 어느 곳에서 일어나건 마찬가지입니다.
인류의 운명은 그 매듭이 서로 얽혀 있어서, 인류의 행복을 그 자체로부터 알 수도 없고, 다른 사람들을 그것으로부터 박탈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희망하는 운명을 다른 사람들과도 공유해야 합니다.
베푸는 사람이 됩시다. 태양과 같이/ 우애를 퍼뜨립시다. 바람처럼/ 무지와 편견에 대하여 열렬히 화냅시다. 불과 같이/ 사랑의 씨앗을 마음들 속에 자라게 합시다. 땅과 같이/ 서로에게 친절합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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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만해대상(실천부문) 수상자 - 이소선 (한국, 전태일 기념사업회 고문)
The 13th Manhae Prize(Practice) Winner - Lee So-seon (Korea, Adviser at Association of Families of Democratization Movement  Victims)
 
1. Reason of Award
 
Called the "Mother of Workers," Ms. Lee So-seon has been the godmother of the labor movement throughout her life. She's the mother of Jeon Tae-il, who burned himself to death after saying "Don't let my death go in vain" at Peace Market on November 13, 1970. He worked passionately to help workers to lead a human life and build a democratic welfare society where all people could share human warmness before sacrificing himself to those causes. His death made her commit herself to labor and democracy movements and make huge contributions to the democratization of Korean society and the human emancipation movement as well as the causes.
She was born in Dalseong, Gyeongbuk Province in 1929. At four, she lost her father to the independence movement. When growing up, she was hunted for forced labor and managed to escape from it. After Korea took back its independence, she got married and entered the clothing making business with her husband only to fail. In fact, her hardship and suffering never knew its limits. However, they failed to frustrate or corrupt her, who found even greater love and a sense of justice in all of them and became a model of "human victory." She brought up his son to practice sacred love to sacrifice himself and thus trigger Korea's democratic labor movement. After his death, she was faced with all kinds of conciliation and threats. She never gave in to them and continued her fight risking her own life. As a matter of fact, she played a pivotal role in forming the Cheonggye Association of Clothing Laborers, which was the first of Korea's democratic laborers' associations. In addition, she was a very active participant in the nation's democratization movement and made a huge contribution to democratization of Korean society.
Her struggle and commitment earned her such titles as the "mother of laborers," "mother of the people" and "Mother" for everyone. However, she had to pay huge prices to enjoy such an honor; she was repeatedly beaten in various gatherings and demonstrations and jailed many times. She was arrested and put into prison for contempt of court in 1977, violation of the martial law decree in 1980, and violation of martial law in 1981.
She held important offices in the labor movement and democratization movement organizations such as the joint president of the "Association of Family Movement for the Practice of Democratization" in 1985, the first president of the "Association of Families of Democratization Movement Victims" in 1986, adviser of "Association of Korea's People and Democracy Movement" in 1989, and adviser of "Association of Korea's Labor Unions" in 1990. She has devoted herself to the rights of laborers and democratization.
Recognized for her devotion and achievements, she won the Good Samaritan Award in 1988 and April Revolution Award in 1990.
But her bigger contributions stem from her lessons of love, wisdom, and emancipation based on her own hardship and suffering than that of the labor and democratization movement. Despite the unbearable hardship and suffering, she was never frustrated or corrupted. On the contrary, they intensified her love for people, which gave her remarkable wisdom to see through things accurately. The love and wisdom had her lead a liberated life of freedom and peace in a true sense and thus brought about an enjoyment of the highest form of happiness.
She has demonstrated the principles of love to get love through hardship, those of wisdom to get wisdom through love, and those of emancipation to get a liberated life through love and wisdom.
Judging from those aspects, she has practiced the love for people and the nation by Manhae Han Yong-un, who devoted himself to independence and social reform during the dismal Japanese rule when national sovereignty was taken and freedom was demolished.
There are many books and writings about her life and love, and Mother's Way, Chosun Plantain, and Lee So-Seon's Memories at 80: To Those Who I Am So Grateful are some of them.
There is no doubt she has led a life that deserves the Manhae Prize in Practice, which was established to honor the life and ideology of Manhae Han Yong-un, who worked so hard for the nation's independence and self-reliance based on the bigger causes of freedom and peace despite all kinds of hardship and prosecution from the Japanese rulers.
 
1. 수상자 선정 이유
 
‘노동자의 어머니’로 불리는 이소선 여사는 평생을 노동운동의 대모로 역할을 해 온 인물이다.
이소선 여사는 알려진 대로 1970년 11월 13일 서울의 평화시장 앞길에서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 구현과 모든 사람이 인간적인 정을 나누면서 사는 민주복지사회의 건설을 위해 노력하다, 마침내 “내 죽음을 헛되이 마라”는 유언을 남기고 분신 자결한 전태일의 어머니다.
아들 전태일의 죽음을 계기로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에 투신하여 한국 민주노동운동의 발전은 물론 한국사회의 민주화와 인간해방운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해 온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1929년 경북 달성에서 태어난 이소선 여사는 불과 4세의 어린 나이에 민족독립운동 관련으로 아버지를 잃었는가 하면, 일제의 근로정신대에 끌려가 강제노동을 하다가 탈출하기도 했으며, 해방 후에는 결혼을 해서 남편과 함께 피복제조업을 했으나 실패하는 등 온갖 고난과 시련을 겪었다.
그럼에도 좌절하거나 타락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이 고난과 시련에 찬 삶 속에서 더 큰 사랑과 더 강렬한 정의감을 키운 ‘인간 승리’의 표본이 될 만한 삶을 살아왔다. 이 여사는 아들 전태일로 하여금 만인을 위해 생명까지 바치는 큰 사랑을 실천케 하여 민주노동운동의 초석이 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아들 전태일이 죽고 난 후 온갖 종류의 회유와 협박에도 굴하지 아니하고 생명을 건 투쟁을 전개해서 이 땅의 민주노동조합의 효시라 할 청계피복노동조합을 결성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와 더불어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우리 사회의 민주화에 크게 기여했다.
이러한 투쟁과 헌신으로 이소선 여사는 ‘노동자의 어머니’이자 ‘민중의 어머니’로서 누구로부터도 ‘어머니’로 불리는 영예를 안게 되었다. 이런 영예를 얻기까지 이소선 여사가 겪은 고난과 시련은 참으로 엄청났다. 각종 집회와 시위에서 구타를 당해 몸이 성한 곳이 없을 정도가 되었으며, 1977년에는 법정모욕 혐의로, 1980년에는 계엄포고령 위반 혐의로, 1981년에는 계엄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85년에는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의 공동의장, 1986년에는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초대 회장, 1989년에는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고문, 1990년에는 ‘전국노동조합협의회’ 고문을 맡는 등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 단체의 주요 직책을 맡아 노동자의 권익 보장과 민주화를 위해 헌신해 왔다.
이런 공로로 이 여사는 1988년에는 ‘선한 사마리아상’을 수상하였고, 1990년에는 ‘사월혁명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러나 이소선 여사가 진정으로 우리 사회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는 그의 이런 투쟁과 헌신을 통한 민주노동운동의 발전과 민주화에 있다기보다 그의 고난과 시련에 찬 인생 역정에서 얻은 사랑과 지혜와 해방의 교훈을 우리 모두에게 준 데 있다 할 것이다.
이소선 여사는 인간으로서는 감내하기 힘든 고난과 시련을 겪었음에도 이 고난과 시련 때문에 좌절하거나 타락하기는커녕 그가 겪은 고난과 시련 때문에 인간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키워 왔다. 그리고 이 사랑 때문에 사물을 정확히 통찰하는 탁월한 지혜를 얻었으며, 이 사랑과 지혜를 통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인 참된 의미의 자유와 평화 곧 해방된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이소선 여사의 삶은 고난을 통해 사랑을 얻는 사랑의 원리를 보여 주고, 사랑을 통해 지혜를 얻는 지혜의 원리를 보여 주며, 사랑과 지혜를 통해 해방된 삶을 얻는 해방의 원리를 보여 준 사랑의 위대한 섭리에 따른 삶이라 하겠다.
이런 점에서 이소선 여사의 삶은 국권 상실과 자유 유린의 암담한 일제강점기에 민족독립과 사회개혁을 위해 헌신하신 만해 한용운 선생의 겨레사랑과 나라사랑의 현대적 실천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소선 여사의 이런 삶과 사랑을 기리기 위한 많은 책과 글이 나와 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어머니의 길》 《조선 질경이》 《이소선 여든의 기억 :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 등이 있다.
그래서 이소선 여사야말로 일제의 온갖 고난과 박해에서도 자유와 평화의 인류사적 대의에 입각하여 민족독립과 민족자존을 실현키 위해 진력하신 만해 한용운 선생의 삶과 사상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만해대상(실천 부문)을 수상할 만한 삶을 살아온 것으로 볼 수 있다 하겠다.
 
2. Impression of Manhae Prize
 
"Mother, you've won the Manhae Prize this year!"
What? What does it mean? I am 80 years old and get to win an award? And it's the Manhae Prize...I didn't grasp the situation and was embarrassed. I was overwhelmed by shame more than happiness.
"Mother, you won't let my death go in vain, will you? Please say that you won't, loud and clear!"
On the evening I heard the news, my late son's voice filled my room.
"Mother, I stuffed up my clothes with cotton so that I would die faster. I didn't want to show my ugly body to you and others. It could take three or ten minutes before I died. Don't bother to go get medicine or injection. Please listen to what I am telling you."
And I could hear what he was telling me on that horrible day once again in my head.
It's been 40 years since he passed away. Have I kept my promise to him? Have I led my life keeping my promise to him in my mind? Every time I ask those questions to myself, I shake my head.
I have no education, and what do I know? I just have kept my son's grudge throughout my life. Who said I was in the labor movement? What do I know about it? I know nothing about a labor union or law...I just asked people around me what to do and did what they told me. I learned from them what should be done in order for the apprentices of Peace Market to get paid right and how I should fight to observe the standard labor law. Without those grateful ones, I could never have formed the Cheonggye Labor Union in the tumultuous 1970s and endured those tough days against the dictatorship.
The prize is not for me to receive, but all those who fought in the democratization movement, students, and workers that helped me with my fight.
It's also for those who died on the street during the labor and democratization movement, their mothers and fathers that held their bodies and wailed, and those who were imprisoned fighting against the dictatorship.
It's been 40 years since my son passed away, but society is still full of people who are suffering from hunger like those in the 1970s. There are so many people who are isolated. When I think of irregular workers screaming for their survival and the residents of the towns that were forcefully removed being burned, I cannot help feeling ashamed of not doing anything to help them.
The world has changed a lot, but it's still far from the one that my son tried to build. He died asking me not to let his death go in vain. At age 80, I am sorry that I have not been able to keep my promise. I am even afraid he won't see me in heaven when I die.
These days I say "It's despair. Utter despair" whenever I read news on TV and in the newspaper. It's not signs of hope that have kept me alive for the last 40 years, it's the years of despair, and I hit the bottom of despair and thus struggled to go up. I conquered my despair one by one and managed to endure the military dictatorship, formed a labor union, and saw the Korean Confederation of Trade Unions earn legitimacy.
It's wisdom to look at despair and conquer it rather than to discard what's precious being deceived by slight hope. It takes years to build democracy but a moment to lose it. In Korea, we've built a democracy at the expense of our children. We can't have them take it away and we won't. We must fight before succumbing to despair. We must resist instead of dreaming of false hope.
I am once again overwhelmed by shame to think that I with no education and achievements won the Manhae Prize. But I don't think it's for me, Lee So-seon. I believe it's for all those who fought for workers and democracy. It's the only way I can receive it. I will appreciate it to think it's for all those grateful people that have protected and helped me to this day.

2. 수상소감
 
“어머니가 만해상 수상자로 선정이 되었대요.”
아니, 이게 무슨 말인가. 내가 나이 여든에 무슨 상을 받는단 말인가. 그것도 만해 한용운 선생의 정신을 기리는 상이라니……. 어찌된 영문인지 도대체 감을 잡을 수 없고, 황당하기까지 했습니다. 기쁨보다는 부끄러움에 어찌할 줄 몰랐습니다.
“어머니, 제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실 수 있죠? 할 수 있다고 대답해 주세요. 크게 크게 대답해 주세요.”
수상 소식을 들은 날 저녁, 태일이의 목소리가 내 방 안 가득 퍼졌습니다.
“어머니, 나는 빨리 죽으려고 이렇게 옷 속에다 스펀지를 넣어서 불을 붙였어. 이런 모양을 어머니에게 보여 주지 않고, 많은 사람들한테 내 추한 모습을 안 보이려고 말이야. 내 3분 있다가 죽을지 10분 있다가 죽을지 모르니까, 다른 약을 구한다 어쩐다, 뭐 주사 놔달라고 말하지 말고, 내가 말하는 것 잘 듣고, 엄마 꼭 들어주세요.”
숨을 헐떡이며 간절하게 부탁하던 태일이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하였습니다.
태일이가 떠난 지 40년, 나는 아들의 약속을 지켰는가. 나는 아들의 약속을 잊지 않고 살아왔는가. 내게 물을 적마다 스스로 고개를 젓습니다.
배운 것 없는 내가 무엇을 알고 살아왔겠습니까. 그저 아들의 한을 가슴에 품고 미친 듯이 살아왔지요. 누가 나보고 노동운동을 했다고 합니다. 내가 무엇을 알아 노동운동을 합니까. 노동조합이 뭔지, 노동법이 뭔지도 모르는데……. 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 하라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어떻게 해야 평화시장 시다들이 월급을 제대로 받는지를. 어떻게 싸워야 근로기준법을 지킬 수 있는지를. 주변의 숱한 고마운 사람들이 없으면 저는 그 험한 1970년대에 결코 청계노조를 만들고 지켜올 수 없었을 겁니다. 지독한 독재에 맞서 험한 시절을 견뎌올 수도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이 상은 제가 받아야 할 것이 아니라 지금껏 내 곁에서 내가 싸워올 수 있도록, 미쳐서 죽지 않고 살아올 수 있도록 도와주신 재야에서 민주화운동을 하신 숱한 어른들과 청년 학생들과 노동자들이 받아야 마땅합니다.
또한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에 목숨을 바친 이들이, 죽은 자식의 시신을 부여안고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 오신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어머니 아버지들이, 독재와 맞서 싸우다 감옥에 갔던 이들이 받아야 할 상입니다.
태일이가 떠난 지 40년이 되어 가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1970년대 시다처럼 배고픔과 싸워야 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소외된 이웃들이 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절규를 할 때, 철거민들이 불타 죽어갈 때, 나는 과연 이제껏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부끄러울 뿐입니다.
세상이 많이 바뀌고 발전했지만 아직도 태일이가 이루려는 세상은 멀기만 합니다. 내게 자신의 죽음을 헛되이 말라고 부탁을 하고 떠났는데, 이젠 팔십 노인네가 되어 그 뜻을 다 이룰 수 없어 안타깝기만 합니다. 태일이가 하늘에서 이 못난 어미를 만나줄까 두렵기만 합니다.
뉴스와 신문을 볼 때마다 ‘절망, 정말 절망이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40년, 희망이 보여 살아온 것이 아닙니다. 절망이었기에 더 이상 추락할 곳 없는 절망의 시절이었기에 몸부림치며 저항을 했는지 모릅니다. 절망을 하나씩 딛고 일어나다 보니 군사독재 시절도 이겨내고, 노동조합도 만들고, 민주노총이 합법화되었을 겁니다.
얄팍한 희망에 우리가 간직해야 할 소중한 것을 버리는 것보다는 절망을 깨우치고 딛고 일어서는 게 지혜일 겁니다. 민주주의는 쌓아올리기는 힘들어도 무너지는 것은 순간입니다. 우리 자식들의 피로 쌓아올린 민주주의 아닙니까. 허투로 빼앗길 수도 빼앗겨서도 안 됩니다. 절망하기에 앞서 싸워야 합니다. 섣부른 희망을 꿈꾸기보다는 저항을 하여야 합니다.
못나고 배운 것 없는 내가 만해상을 받는다니 다시 생각해도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이 상이 ‘이소선’ 개인한테 주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노동자와 민주주의를 위해 항거한 이들에게 주는 상이라 생각하며 기꺼이 받겠습니다. 이제껏 내가 살아올 수 있도록 지켜주고 도와준 고맙고 고마운 사람들에게 주는 상이라 생각하며 고맙게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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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만해대상(학술부문) 수상자 - 김용직 (한국,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The 13th Manhae Prize(Academy) Kim Yong-jik (Korea, Professor emeritus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1. Reason of Award
 
Kim Yong-jik, Ph. D., was born in Andong, Gyeongbuk Province on November 30, 1932, graduated from the College of Liberal Arts and Sciences of Seoul National University in Korean Literature and Linguistics, and obtained a Ph. D. in literature at the Graduate School of Seoul National University. He then taught students as an instructor at Dankook University, as a professor of liberal arts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in 1968, and as a professor at College of Humanities of Seoul National University in 1976 before retiring in 1997. Today he is an honorary professor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and member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Professor Kim made his debut as a literary critic in 1961 when he published About the Two Trends in Modern Korean Poetry in Freedom Literature and since then has issued many papers in which he took unique perspectives by combining historicism and analytics to interpret modern Korean poetry and its characteristics, such as "Sowol's Poetry and Its Ambiguity" (1970) and "The Structure Issue When Writing Poems" (1970). He also wrote and published many criticisms such as "The Issue of Building Korean Literature" (1975) and "The Popular Society and the Roads for Poetry" (1977) in which he suggested ways forward for contemporary literature. Particularly noteworthy are the many books he has written and published including Critical Reflections on Korean Literature (1974), Study on Modern Korean Poetry (1974), Criticism of Korean Art and Literature during the Jeonghyeong Period (1979), Flows in Korean Literature (1980), A Historical Understanding of Modern Korean Literature (1982), History of Modern Korean Poetry (1983), Theories of Modern Korean Literature (1985), Poems from Modern Korean Poetry (1987), History of Korea's Poetic Literature during the Liberation Period (1989), and Study on Imhwa Poetic Literature (1991). In 1989 he received the Sejong Literature Award.
Dr. Kim wrote criticisms in a constant manner under the goals of reviewing modern Korean poetry historically and systemizing it aesthetically. By introducing new ideas usually used in analytics such as poetic structures, images and symbols, structure of poetic writing, and poetic tension into his in-depth interpretations of the diverse aspects of modern Korean poetry, a poetry tangled in the historic web of times and ideology, he established a legitimate branch of poetics in the study of modern Korean poetry. Thus he interpreted the works of Kim So-wol, Han Yong-un, Lee Sang-hwa, Yun Dong-ju, and Lee Yuk-sa, for which the previous studied usually highlighted poetic consciousness and spirit of the times, from the aspect of poetic structure and accordingly shed light onto the universal aesthetics of poetry. He also gave accurate positions to the schools of poetic literature and the overall modernism movement of the 1930s. His literary studies and criticisms made a critical contribution to the historical systematization of modern Korean poetry. He also set an important model to systematize the history of Korean poetry scientifically by arranging an order in early modern and modern Korean poetry in a consistent way.
One of his important and renowned books, History of Modern Korean Poetry, helped to systematize the history of modern Korean history and reflects all of his efforts into literary study and criticism. Not only did it systematically sort out the flows in the history of modern Korean poetry, which was so complex that it was called "the exhibition hall of Western literary trends," but it also closely examined the aspects of each of its achievements in diverse trends. In the book, he investigated a literary work or phenomenon in its relationships with the backgrounds and conditions that affected its make and development and employed an approach of writing literary history in which he judged the advances and retreats of modern Korean poetry history according to the truthfulness (literary value) of each work and trend. In a word, the principle of his writing literary history was the dialectic mixture of historicism and structuralism, which helped him overcome many of the limitations with the chronological and historicist history of poetic literature. Furthermore, he rediscovered literary works and phenomena lacking in attention in the previous history of modern poetry (such as Geumseong School, folklore lyric poems, the effects of foreign poetry on the formation of modern Korean poetry, and revival movement of shijos) and investigated their significance in the history of poetic literature in the book. In addition, he adopted new angles to look into the literary works and phenomena that had received much attention. He investigated the works of the Baekjo School, Kim So-wol, and Han Yong-un and their poetic meanings from the perspective of both historicism and structuralism. When studying the Gyeonghyang poems in the 1920s and 1930s, he kept a distance from unconditional rejection or admiration, which was evident in the previous study, and located them accurately in the relations of historical and literary value. The significance of the book can be found in that it systematically reordered the flows of modern Korean poetry where a myriad of literary trends and ideas were tangled up to an extent that a rule could not be ascertained. It cannot be ignored that he examined literary works in the correlations of historical and literary value and thus overcame the limitations of the previous history of modern poetry, which focused only one aspect.
 
1. 수상자 선정 이유
 
김용직 박사는 1932년 11월 30일 경북 안동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단국대학교 전임강사를 거쳐 1968년 서울대학교 교양과정 부교수를 역임하였으며 1975년부터 서울대학교 인문대학교 교수로 봉직한 후 1997년 정년 퇴직하였다. 현재는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며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용직 교수는 1961년 《자유문학》에 〈우리 현대시에 나타나는 두 양상에 대하여〉를 발표하면서 문학평론가로 등단하였으며, 한국 근대시의 특성을 역사주의적 관점과 분석주의적 방법을 통합한 독특한 관점에서 해석한 〈소월의 시와 앰비규어티〉(1970), 〈시작에 있어서의 짜임새 문제〉(1970) 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또한 동시대의 문학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한 〈민족문학의 건설문제〉(1975), 〈대중사회와 시의 길〉(1977) 등을 발표하며 활발한 평론 활동을 펼치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한국문학의 비평적 성찰》(1974), 《한국현대시연구》(1974), 《전형기의 한국문예비평》(1979), 《한국문학의 흐름》(1980), 《한국근대문학의 사적 이해》(1982), 《한국근대시사》(1983), 《한국근대문학론고》(1985), 《한국근대시사》(1987), 《해방기한국시문학사》(1989), 《임화시문학연구》(1991) 등이 있다. 1989년에는 세종문화대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김용직 박사는 주로 한국 근대시의 역사적 정리와 그 미학적 체계화라는 일관된 목표를 내세우면서 꾸준한 비평 활동을 전개하였다. 김 박사는 시대와 이념이라는 역사적 조건에 얽혀 있던 한국 근대시의 다양한 양상을 시의 구조, 이미지와 상징, 시작의 짜임새, 시적 긴장 등 분석주의 방법에서 주로 사용하는 새로운 개념을 적극 도입하여 깊이 있게 해명함으로써 한국 근대시의 연구에 하나의 정통적인 시학을 확립하였다.
그러므로 기존의 연구에서 주로 시의식과 시대정신을 강조해 왔던 김소월(金素月)·한용운(韓龍雲)·이상화(李相和)·윤동주(尹東柱)·이육사(李陸史) 등의 시를 시의 구조적인 측면에서 해석하여 이들 시의 보편적인 미의식을 밝혀냈으며, 또한 시문학파나 1930년대의 모더니즘 운동 전반에 대해 정확한 자리매김을 했다. 이러한 그의 문학 연구와 평론 활동은 한국 근대시의 사적 체계화에 기여하였으며, 또한 일관된 방법론으로 한국의 근·현대시 전반을 재질서화함으로써 한국시사의 과학적인 체계화를 위한 중요한 전범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김용직 박사의 대표적 저작으로 손꼽을 수 있는 《한국근대시사》는 한국 근대시사의 체계화로 문학 연구와 평론 활동의 중심을 삼았던 저자의 일관된 노력이 집대성되어 있는 저서라고 할 수 있다. 이 저서는 ‘서구 문예 사조의 전시장’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복잡한 한국근대시사의 흐름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다양한 흐름 속에서 하나하나 이루어진 발전의 양상들을 면밀하게 포착해 내고 있다.
이 저서는 하나의 문학 작품이나 문학 현상을 작품이나 현상의 제작·전개에 개입하는 배경 및 여건과의 관계 속에서 파악하고 동시에 한 작품이나 경향이 구현하고 있는 문학적 진실(문학성)의 정도에 따라 한국근대시사의 전진과 후퇴를 판단하는 문학사 기술 방법을 취하고 있다. 한마디로 이 저서에서 취한 문학사 서술 원리는 역사주의와 구조주의를 변증법적으로 결합시킨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서술 원리로 인해 이전의 연대기적이고 역사주의적인 시문학사가 보이던 한계를 상당 부분 극복할 수 있었다.
이 저서는 그 이전의 근대시사에서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문학 작품이나 문학 현상(금성파, 민요조 서정시, 해외시 수용이 한국근대시 형성에 미친 영향, 시조부흥운동 등)을 새롭게 발견하고 그 문학 현상이 시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규명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미 주목되어 왔던 문학 작품이나 문학 현상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망하였다. 백조파·김소월·한용운 등의 시가 지니는 시사적 의미를 역사주의적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구조주의적 측면에서 규명해 내었으며, 또한 1920~1930년대의 경향시에 대해서도 이전의 시 연구에서 보이던 무조건적인 거부와 찬사를 지양해내고 역사성과 문학성의 관계 속에서 정확한 자리매김을 행하였다.
 따라서 이 저서는 수없이 다양한 문예사조와 이념 등이 복잡하게 뒤엉켜 법칙성을 발견하기 힘든 한국 근대시의 흐름을 체계적으로 재질서화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또한 한 문학 작품을 역사성과 문학성의 상관관계 속에서 규명함으로써 어느 한 측면만을 주목하며 씌었던 이전의 근대시사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사실에도 큰 의미를 부여해야 할 것이다.
 
 
 
2. 수상소감
 
우리 모두의 뇌리에는 상을 두고 떠오르는 원풍경(原風景)이 있다.
푸른 가을날 까까머리에 운동화도 신지 않고 뛰고 뒹군 초등학교 운동장, 내가 빠르거나 잘해서가 아니라 같은 또래의 실수로 타게 된 상장과 몇 권의 공책, 또는 연필이나 지우개 등. 이제 우리 또래는 예외 없이 머리에 흰 것을 이고 있다. 그날, 그 장소도 또한 세월의 수레를 타고 기억의 저쪽으로 아득히 멀어져 가 버렸다. 그럼에도 나에게 상이 주어진다는 소식은 그날, 그 자리에서처럼 즐겁고 고마운 일이다.
돌이켜 보면 내가 한국문학을 전공으로 택한 것은 학부에 진학한 다음의 일이다. 나는 본래 낙동강 상류 후미진 고장에서 지방 유생의 후예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튼튼하지 못했고 다른 분야에 특별히 뛰어난 재능도 없었다. 대학에서 문과를 택한 것은 그렇게 어정쩡한 내 위인에 빌미가 있었다.
처음 두어 해 동안 나는 창작을 해 볼까, 아예 평론으로 추천을 받을까를 결정하지 못했다. 그러나 교내 잡지와 신문에 두어 번 작품을 투고한 다음 나는 창작의 길을 포기해 버렸다. 그런 쪽에 천분을 타고 나지 못했음을 그 무렵에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소설이나 희곡을 택하지 않고 시의 역사 쓰기를 지망한 사유도 그와 비슷한 데 있었다. 소설이나 희곡에는 시보다 정치·사회·사상·이념상의 요소들이 더 많이 섞여 있을 것 같았다. 그보다는 시가 단순할 것 같아서 우리 현대시의 역사 쓰기를 택한 것이다.
우리 또래가 한국현대문학 연구를 시작했을 때, 마침 우리 주변에는 대륙식 비교문학의 개설서인 방 띠겜의 《비교문학》이 번역, 출판되어 있었다. 또한 그 무렵에 한국비교문학회가 발족을 보았다. 그런 주변 여건에 힘을 입어 나는 내 초기 논문의 하나인 〈한국 현대시에 있어서 상징파시의 수입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1960년대 후반기에 이르러 내 나름대로 본격 연구논문을 뜻하고 쓴 〈한국현대시에 미친 R.타골의 영향〉을 발표했다. 이 논문은 국어국문학회 전국대회에서 발표할 기회를 가졌다. 그리고 당시로서는 무게가 있는 연구논문을 수록한 《아세아 문제연구》(고려대학교 아세아 문제연구소 발행)를 통해 활자화시켰다. 그 직후 나는 R. 타골의 손자로부터 한 통의 서신을 받았다. 그 문면 가운데는 할아버지의 시를 평가해 주어서 매우 고맙다는 말이 담겨 있었다.
1970년대 후반부터 나는 본격적으로 한국현대시의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내 작업은 서장(序章)을 문학사의 방법으로 하고 이어 개화기의 시가를 검토하는 장을 만들었다. 그다음이 창조, 폐허, 백조 등 유파들의 활동을 차례로 검토하는 순서가 되었다. 내 연구 보고서는 1980년대 초두에 《한국근대시사》의 이름을 달고 상, 하 두 권으로 출간되었다. 거기서 만해의 시는 제7장 후반부를 이루었다. 그 제목이 〈만해 한용운의 시와 그 문학사적 의의〉였다. 이 과정에서 나는 좀 색다른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첫째 만해 시를 내 나름대로 검토하는 가운데 나는 그 무렵까지 우리 주변의 만해 시에 대한 담론이 전혀 원전의 확정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졌음을 발견했다.
《님의 침묵》의 초판은 1926년에 발간되었는데 일제의 총독정치가 가한 우리말 사용의 규제, 핍박으로 이 책은 그 후 곧 희귀본이 되었다. 8.15 후 당시 우리가 읽은 시집은 1950년 4월 한성도서에서 발행한 제3판이었다. 그런데 이 판에는 서정시인(敍情詩人)이 숙정시인(叔情詩人)으로 되어 있고 〈나한지〉가 〈나에게서〉, 〈님한지〉가 〈님에게〉로 바뀌어 버렸다. 뿐만 아니라 〈이별〉은 8연인 작품이 7연으로 개작이 아닌 개악이 되어 있었다.
1974년에 이르러 만해 시의 정본화(定本化)를 꾀한 시도가 나타나게 되었다. 고(故) 송욱 교수의 손으로 된 《전편해설 ‘님의 침묵’》이 그에 해당된 작업이다. 이 책을 통해 송욱 교수는 시집 초판과 재판을 검토하고 3판이 범한 오류를 남김없이 정정했다. 그와 아울러 ‘아’나 ‘치고’, ‘밧긔’와 같은 구식 표기들이 표준형에 준하는 것으로 교정되었다. 표기법으로 보아서 분명히 《님의 침묵》 읽기의 새 차원이 구축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송욱 교수의 작업에는 그 나름의 한계도 있었다. 본문 비평의 다음 단계에서 그가 택한 것이 작품의 의미 분석이다. 여기서 송욱 교수는 물리적 차원과 불교적 형이상의 차원인 유심철학의 경지를 거듭 혼동했다. 그동안 나는 기능적으로 이런 사태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를 가졌다. 그 표현 형태로 진행 중인 것이 2009년도부터 《유심》에 연재 중인 〈만해 시 새롭게 읽기〉이다.
한국 현대시를 공부하면서 나는 일제시대와 8·15 직후, 그리고 대한민국정부 수립 등 역사의 여러 국면을 전후한 국내와 국제 정세도 검토하며 참고할 기회를 가졌다. 그 과정에서 나는 정치적 이념이나 문학사의 중요 요소가 되는 사상, 관념, 경제, 사회, 교육, 문화의 문제도 검토해 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거기서 얻어낸 부수입격으로 나는 두어 권의 작가론을 썼으며 한국의 고전문학과 한시(漢詩)의 세계에도 내 나름대로의 접근을 꾀해 왔다.
지금으로부터 예순 해 전 나는 문자 그대로 세상살이의 동서남북도 가늠하지 못하는 선머슴애로 상경하였다. 뿐만 아니라 당초에 나는 재정적 바탕이나 학력, 체력 그 어느 것 하나도 본격적 연구 생활을 하기에 걸맞은 조건을 갖추지 못한 채였다. 그런 나를 모교의 은사님들과 선배, 동학들이 물리치지 않고 지도해 주셨다. 이런 자리에서 그분들의 후의가 참으로 새삼스럽다.
또한 그동안 나는 전공에 전념하고 있다는 핑계를 내세워 어른들을 모시는 데 소홀했다. 가족과 친지들에게도 좋은 가장, 아버지, 피붙이가 되지 못했다. 정직하게 말하면 나는 지금쯤 참회록을 써야 할 사람이다. 그런 나에게 만해 한용운 선사의 이름을 붙인 상이 주어진다고 한다. 기쁘고 고마운 일이며 한편으로는 송구스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내 수상에 관계하신 모든 분들에게 고개 숙여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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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만해대상(문학부문) 수상자 - 로버트 하스 (미국, 계관시인)
The 13th Manhae Prize(Literature) Winner - Robert Hass(USA, Professor of English literature at UC. Berkeley, Poet, Literature) 
 
1. Reason of Award
 
Robert Hass is a poet who became a poet laureate two consecutive times and enjoys an international fame.
He is one of the most remarkable living poets in the field of modern English and American poetry, being recognized for his new creation of life force in human language through poems, his emphasis on the dignity of human life, and his ecological perspective to pursue a harmonious life with nature. In 2005, he represented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in the Manhae Festival of World Peace and Poets and had first-hand experiences of Korea's reality and literary trends. Since then he visited Korea a number of times more and gave lectures to the Korean audience. He has also been active introducing the works of Korea's outstanding poets to the English audience and provided lavish support to help with the globalization of Korean literature. His accomplishments are deemed to follow the peace and life ideology of Manhae literature.
Literary Activities Has organized and run the Watershed Festival of Environmental Poems held annually since 1996.
Has organized and run an open poetry reading gathering called Poems of Lunch Time at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since 1997. He has invited poets from the world to read and introduced their poems. Appointed as a poet laureate from 2005 to 2007 and engaged in social and cultural activities for two years. Participated in the Manhae Festival of World Peace and Poets of 2005 and presented his poems and paper based on his belief in human freedom and peace. Published a long paper to introduce the poetic world of Go Eun, a Korean poet, in New York Review of Books in 2006.
Invited Korean female poets to a poetry reading meeting and seminar called "Poetry of Korean Women" in May, 2009. He is currently working on an event to invite them to his Poems of Lunch Time.
Today he is doing a variety of activities to implement his ecological interest in human life and environment through literature and making arduous efforts to introduce Korean literature to American society driven by his huge interest in it.
In 2009, Prof. Claire Yu, head of the Center for Korean Studies, UC Berkeley, is selecting and translating some of his works into Korean in order to publish Anthology of Robert Hass.
Career
Was born in Marine County near San Francisco, California on March 1, 1941.
Studied at St. Mary University, graduated from UC Berkeley, majored in English literature at the Graduate School of Stanford University, and obtained a literature doctorate there.
Taught English literature at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Buffalo and St. Mary University.
Has been teaching English literature at UC Berkeley since 1989.
Awards
Received the Young Poet Award of Yale Series for his first collection of poems Field Guide in 1972.
Received the William Carlos Williams Award for his second collection of poems Praise in 1979.
Received a criticism award from American Critics Club for Twentieth Century: Prose on Poetry in 1984.
Received a poetic literature award from American Critics Club for Sun under Wood in 1996.
Won a Pulitzer award for Time and Materials in 2008.

1. 수상자 선정 이유
 
시인 로버트 하스는 미국의 계관시인으로 두 차례나 연이어 추대된 세계적인 시인이다.
로버트 하스 시인은 인간 언어의 생명력을 시를 통해 새롭게 창조하고 인간의 생명의 존엄성을 강조하면서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을 생태주의적 관점에 천착해 가는 다양한 시들을 발표하여 현대 영시문학 분야에서 가장 주목되는 생존 시인의 한 사람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는 2005년 만해축전 세계평화시인대회에 미국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참여하여 한국의 현실과 문학의 경향을 직접 체험하였으며 그 뒤 몇 차례 한국을 방문하여 문학 강연회를 가진 바 있다. 로버트 하스 시인은 한국의 저명한 시인들을 영어권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일에도 적극성을 보이면서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같은 그의 업적은 만해문학의 평화사상 생명사상과도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문학 활동
- 1996년부터 현재까지 매년 개최되는 ‘워터세드 환경 시 축제’를 조직·운영하고 있음.
- 1997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버클리대학에서 ‘점심시간의 시’라는 개방적인 시낭송 모임을 조직 운영하면서 세계 각국의 시인들을 초청하여 자작시를 소개하고 낭송할 수 있도록 함.
- 2005년~2007년, 2회 연속 미국 계관시인으로 추대되어 사회문화 활동.
- 2005년, 미국 대표 시인으로 2005 만해축전 세계평화시인대회에 참가하여 자작시를 발표하고 인간의 자유와 평화에 대한 신념을 바탕으로 하는 주제논문 발표.
- 2006년, 미국 〈뉴욕 리뷰 오브 북스〉에 한국의 시인 고은의 시 세계를 소개하는 장문의 평론 발표.
- 2009년 5월, ‘한국의 여성 시’라는 주제로 한국 여성 시인들을 초청하여 시낭송회와 세미나를 개최하고 자신이 주재하는 ‘점심시간의 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문학 행사를 조직·준비 중임.
- 2009년, 《로버트 하스 시선집》의 한국 출간을 위해 미국 버클리대학 한국학연구소 소장 클레어 유 교수가 작품 선정 및 번역 작업 중임.
- 현재 인간의 삶과 환경에 대한 생태주의적 관심을 문학을 통해 구현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한국문학에 대한 커다란 관심을 가지고 미국 사회에 한국문학을 적극 소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

주요 경력
- 1941년 3월 1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 근교 마린 카운티에서 출생.
- 세인트메리(St. Mary)대학 수학 후 버클리대학을 졸업하였으며 스탠포드대학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후 문학박사 학위를 받음.
- 뉴욕주립대학(버펄로)에서 영문학 강의. 세인트메리대학 교수 역임.
- 1989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버클리대학 영문학과 교수로 영시 강의.

수상 경력
- 1972년, 첫 시집 《필드 가이드(Field Guide)》로 예일 시리즈 젊은 시인상 수상.
- 1979년, 제2시집 《찬미(Praise)》로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 상 수상.
- 1984년, 비평집 《20세기의 환희―시에 관한 산문》으로 미국 서평클럽 비평상 수상.
- 1996년, 시집 《숲 아래의 태양》으로 미국 서평클럽 시문학상 수상.
- 2008년, 시집 《시간과 사물》로 퓰리처상 수상.
 
2. Impression of Manhae Prize, Robert Hass
 
It is an extraordinary honor to receive the Manhae Prize in Literature, to be in the company of some of the most distinguished practitioners of my art-like Ko Un and Wole Soyinka and Robert Pinsky and Oh Se-young and Kim Namjo-and also to be associated in any way with Manhae's great work-for Korean national independence, for the cause of world peace, for poetry, for an awakened freshness in the life of all human beings.
He is, of course, a model beyond my reach. Looking back at the extraordinarily violent history of the twentieth century and at the violence with which this one had begun is to realize how much we needed his voice. I imagine these days his voice would be raised for the condition of the earth itself.
The world has become aware of the ironic set of circumstances that have caused the demilitarized zone between the two Koreas to become a vast refuge for the natural life of the Korean peninsula and for some of its rarest and most beautiful creatures.
It has become a symbol for the world of the peace and wholeness, always endangered toward which Manhae's nim points us.
Thinking of him, his great work, that wild and beautiful place where war has made peace for some of the earth's creatures, I ask the Manhae Prize with deep gratitude.
Robert Hass

2. 수상소감
우선 만해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고은, 월레 소잉카, 로버트 핀스키, 오세영, 그리고 김남조 등과 같은 문학계의 인사들이 수상했던 이 상을 수상한다는 것이 저에게는 무척 명예로운 일입니다.
아울러 한국의 독립과 세계 평화를 추구했고 전 인류의 삶에 신선함을 일깨워 주었던 만해의 시와 업적들의 자그마한 일원이 될 수 있어 기쁩니다.
물론 만해는 제가 결코 가 닿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20세기가 낳은 폭력적인 역사와 이로 인해 시작된 폭압들을 뒤돌아보고 있노라면, 우리가 얼마나 그의 목소리를 필요로 했는지를 인식하게 됩니다.
나는 그의 목소리가 지구상의 이러한 위기를 위해 스스로 목소리를 높이게 될 그날을 상상합니다.
세계는 두 개의 한국 사이에 펼쳐져 있는 한반도 생태계의 광활한 피난처인 비무장지대에서 희귀하고 아름다운 생명들이 자라나고 있는 모순적 상황에 대해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곳은 만해의 작품들이 항상 역설했던 멸종 위기에 놓인 세계 평화와 화합의 상징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와 그의 위대한 업적들을 생각하며, 그리고 전쟁이 지구상의 창조물들의 평화를 위해 만들어 낸 아름다운 야생의 그 공간을 생각하며, 나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상을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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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만해대상(포교부문) 수상자 - 빤냐와로 (호주, 스님, 붓다넷 웹마스터)
The 13th Manhae Prize(Propagation) Winner - Ven. Pannyavaro (Australia,  Web master of www.Buddhanet.net)
 
1. Reason of Award
 
Ven. Pannyavaro is the founder and webmaster of http://www.buddhanet.net, which is a
non-sectarian English language website on Buddhism and a leading player in Internet propagation.
The organisation which runs BuddhaNet, the Buddha Dharma Education Association, was registered
in 1991, and started the website in 1992. It now records more than one million visitors per day as of
February, 2009. Every day an average of 150,000 visit the site, which makes the site the world's
largest Buddhist website.
Ven. Pannyavaro’s achievement is that has pioneered and maintained a major Buddhist presence on the Internet. Most of all, the site provides high quality content on Buddhism education and related
field of the Buddhism, encompassing all the traditions of Buddhism from primitive fundamental Buddhism to new Buddhism of the 21st century. The site is run by a non-for-profit incorporated
association called the Buddha Dharma Education Association Inc. and offers materials about
Buddhism education and comprehensive information about the Buddha Dharma.
The site's main menus include Buddhist Studies, World Buddhist Directory, Buddhazine Magazine, E-Book Library, and File Library/Resources. By clicking Buddhist Studies, you can access a Basic Buddhism Guide, Online Buddhist Study Guide, Buddhist Studies for Primary and Secondary Students, Buddhist Scriptures, Basic Buddhist Teaching, Buddhist History and Culture, and the Buddhist World.
In a word, the site provides a wide range of educational contents and information about Buddhism
and its education in all traditions, taking advantage of the ease of access of the Internet.
In addition, the contents and quality of the site are deemed to be of the highest quality. Much of the
content has been compiled from original material written by the most prestigious and renowned authors in each field. By combining the teachings of Buddhism and Internet technologies, it allows
its visitors to three-dimensionally see and obtain "the whole of Buddhism" in terms of education
and information in cyber space.
For instance, one usually has to go visit a college library or a place with Buddhist scriptures such as Janggyeonggak in order to study them. However, the whole process becomes amazingly simple by visiting this site, which offers all of its contents and information free of charge. Unlike most popular
and useful web sites that charge the users, it opens all of its contents to the users for free as long as
the purposes don't involve plagiarism or sectarian interest. In a word, it has no competition from
other sites in terms of Buddhism education and informational value.
Its webmaster, Ven. Pannyavaro, was born in Australia in 1940 and became a bonze at a relatively
old age. After living as a pilgrim in a Thai temple in Australia in the late 1970s, he became a Buddhist
monk at Wat Bowon in Bangkok (First class Royal Buddhist monastery) and spent years doing
contemplations and studying Chinese classics in Thailand, Myanmar, and Sri Lanka. He mastered
all the traditions of Buddhism including Theravada Buddhism, Mahayana Buddhism, Tibet Buddhism,
and Zen Buddhism and has been continuing the practice of contemplation for years. In addition,
he is a first grade webmaster with Internet savvy. Striking harmony among Buddhism, English,
and Internet technology, he gave birth to the site, through which he provides many Buddhist
believers and non-believers with ample Buddhism education and information.
Pannyavaro has spent 15 years creating the site and developing it into today's status. It all started
in Sydney, where in the early day of Internet technology he would often stay up all night and had to
go through all kinds of hardship and difficulty. It was his perseverance and hard work that overcame
these obstacles. In 2003 he started the Buddhist eLibrary Project and opened http://www.buddhistelibrary.org. The e-library has main menus such as eBook Library, Image Library,
Audio Library, and Video Library, which is literally an electronic library instead of hardware library.
The project has a goal of gathering and housing all kinds of audio and video contents including
Buddhist books and videos throughout the world.
Shortly after setting up this goal, an anonymous benefactor supported Ven. Pannyavaro in establishing a forest monastery and a community retreat centre at Tullera, in Northern New South
Wales, Australia by donated 120,000 pyeong of land. In 2005, he began the construction of Bodhi
Tree Forest Monastery. While it is an ongoing project, he has been living there as the founder and
resident teacher as well as running both the www.buddhanet.net and www.buddhistelibrary.org.
His official titles include the President of the Buddha Dharma Education Association, Vice President of
the Buddhist Federation of Australia, and a Vice President of the World Fellowship of Buddhists.
He is known for his tenacious effort to fulfil his duties for the sake of Buddhist propagation and
education.
 
1. 수상자 선정 이유
 
빤냐와로 스님은 인터넷 포교의 첨병이라 할수 있는 불교 전문 영문 웹사이트 ‘붓다넷(http://www.buddhanet.net)’을 운영하고 있는 웹마스터다.
스님이 운영하는 붓다넷은 1991년에 등록하고 준비 과정을 거쳐서 1992년에 오픈했는데, 2009년 2월 현재, 단순 방문객은 1일 평균 1백만 명 이상이며, 자료를 복사 프린트까지 하는 전문 단골 방문객은 1일 평균 15만 명을 기록하고 있는 세계 최대의 불교전문 인터넷 웹사이트이다.
빤냐와로 스님은 인터넷을 통한 불교 포교에서 선구적인 업적을 쌓았다. 무엇보다도 ‘붓다넷’은 웹사이트의 콘텐츠가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불교 교육과 불교의 각 분야에 대한 정보 내용이 알차다는 것이 특징이다.
불교의 모든 전통과 근본불교에서 21세기의 신불교에 이르기까지 불교의 모든 영역에 관한 내용을 제공하고 있다. ‘붓다넷’은 비영리회사인 ‘불법교육협회(佛法敎育協會, Buddha Dharma Education Association Inc.)’에서 운영하고 하고 있으며 불교 교육 자료와 불교 정보가 주 내용이다.
‘붓다넷’의 주요 메뉴는, 불교학(Buddhist Studies), 세계불교 디렉토리(World Buddhist Directory), 불교 매거진(Buddhazine Magazine), 전자책 도서관(E-Book Library), 파일 도서관/자료(File Library/Resources) 등이다. 불교학(Buddhist Studies)을 클릭하면 기초불교안내(Basic Buddhism Guide), 온라인 불교공부 안내(Online Buddhist Study Guide), 초·중급자를 위한 불교학(Buddhist Studies for Primary and Secondary Students), 불교경전(Buddhist scriptures), 기초 불교 강좌(Basic Buddhist Teachings), 불교역사와 문화(Buddhist History & Culture), 불교세계(Buddhist World) 등으로 콘텐츠가 구성되어 있다. 인터넷의 요소인 마디와 끈에 의해서 무궁무진 변화무쌍하게 교육 내용과 정보가 축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웹사이트에 소장된 콘텐츠의 내용과 질 또한 ‘최상의 수준’으로 평가된다. 콘텐츠의 90%는 가장 권위 있고 정평 있는 전문가들의 기존 저술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편집해 놓았다. 불교와 인터넷 상의 기술을 최대한 활용해서 사이버라는 가상공간에서 특히 교육과 정보 면에서 ‘불교 전반’을 입체적으로 통찰하면서 취득할 수 있게 해 주고 있다.
예를 들면 불교경전을 보기 위해서는 대학 도서관이나 경전이 있는 장경각 같은 곳에 직접 찾아가서 열람해야 하지만, 이 ‘붓다넷’을 활용하면 간단히 해결된다. 그것도 무료로 손쉽게 필요한 정보와 내용을 획득하는 것이다. 인기 있고 유용한 대부분의 웹사이트는 저비용일망정 대가를 지불해야 하지만, ‘붓다넷’은 개인적으로 표절하여 악용한다든지 또는 종파적 이익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전적으로 무료로 누구에게나 개방하고 있다.
웹마스터인 빤냐와로 대장로 스님은 1940년생 호주 출신으로 비록 늦게 출가했지만, 1970년대 말경에 호주의 태국 사원에서 행자 생활을 거쳐서 태국 방콕 왓 보원(승왕 주석 사원)에서 비구계를 받고 태국 미얀마 스리랑카에서 명상수행과 경학 연구를 수십 년간 해 왔다. 불교의 모든 전통(상좌·대승·티베트·선)을 편력한 석학이면서 명상수행을 하고 있는 수행 비구인 것이다. 게다가 인터넷 운용의 기술면에서도 1급 웹마스터이다.
빤냐와로 스님이 오늘의 ‘붓다넷’을 만들기까지는 15년 이상의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시드니에서 처음 시작하여, 때로는 잠을 설치면서 온갖 고난과 역경을 무릅쓰고 인내와 정진으로 이 일을 해냈다. 그리하여 2003년에는 ‘붓다넷’ 외에도 ‘불교전자도서관 프로젝트(the Buddhist eLibrary Projec)’를 발기해서 웹사이트(http://www. buddhistelibrary. org)를 개설하였다. 이 ‘불교전자도서관’은 도서(eBook Library), 영상(Image Library), 오디오(Audio Library), 비디오(Video Library)가 주 메뉴이다.
물리적인 하드웨어적인 도서관이 아닌 그야말로 전자도서관인 것이다. 전 세계에 존재하는 불교 도서나 영상물과 오디오 비디오의 콘텐츠를 모두 망라해서 축적하기 위한 프로젝트이다. 이 같은 원력을 세우고 일을 시작한뒤 얼마 안 되어 스님은 호주 북부 뉴 사우스 웨일즈(NSW) 주의 툴레라(Tullera)에 12만 평을 독지가로부터 기증받았다.
스님은 2005년부터 이곳에 보리수삼림수도원(Bodhi Tree Forest Monastery)을 설립하여 창건 주지 겸 수련원장을 맡아 이곳에서 상주하면서 ‘붓다넷’과 ‘불교전자도서관’ 웹사이트를 동시에 운영하고 있다. 그의 공식 직함은 불법교육협회사(佛法敎育協會社) 회장, 호주불교연맹 부회장과 세계불교도우의회 본부 부회장 등으로, 불법전파와 교육을 위해서라면 이판사판(理判事判)을 가리지 않고 소임을 다하고 있다.
 
2. Impression of Manhae Prize, Ven. Pannyavaro (Mahathero)
 
The Most Venerable Manhae is an inspirational figure who dedicated his life to freedom, equality, progress, and peace; and who manifested his conviction in the teachings and cultivation of the Buddha Dharma into direct action playing a pivotal role in social reform in Korea.
So I feel deeply honoured to accept the 2009 Manhae International Propagation Prize in recognition for the work in propagating the Buddha Dharma in the Digital World. BuddhaNet, which I established in 1994, pioneered a Buddhist presence on the Internet and has become the premier Buddhist information and educational network on the World Wide Web.
The Internet's World Wide Web is now developing into a very powerful communications network and learning environment. However, the Internet should not be seen as just a new way to disseminate or repackage the Buddha's teachings but potentially as a base for an innovative online Dharma Community - a Cyber Sangha, that offers alternative social and spiritual values.
The World Wide Web provides the Sangha with an additional resource with which to educate and communicate the Dharma. A student can access information, teachings, sutras, educational resources and eventually online teachers and monks from anywhere in the world (with access to a device connected to the internet), anytime of day or night, free of charge, with content personally selected and instantly delivered. This ability to publish information and educational programs relatively cheaply and supplied free of charge complied with the Sangha’s tradition of offering Dharma teaching at no cost, for the benefit of all sentient beings.
In a rapidly changing digital world, where many are stretched and stressed, we need to come to terms with the effects of such stress and pressure on the human psyche. It is not suggesting that we create some 'virtual utopia' as the Dharma tells us that there is no certainty and that things are inherently unstable and insecure.
The Internet gives us many opportunities to promote Buddhist values, understandings and insights on a global scale. Buddhism has survived materially until now because of the practice of "Dana", which is a culture of sharing and service, as opposed to the greed culture based on monetary values. This leads to misuse of the technology, as the motivation is merely to make a dollar, as we have seen in the recent collapse of the Dotcoms, which views the Internet as a market place it can exploit.
E-learning or Electronic Buddhist learning can become a tool for spiritual as well as social development, when access is improved and learning techniques are refined. The reality is that it can never altogether replace face-to-face teachings but has added a new delivery medium that allows for skill-enhancement and easy accessible training. The worldwide Buddhist community will need to develop its own e-learning content with the traditions coming together and pooling their knowledge and skills and researching new ways of presenting the Buddha's Teachings out of compassion for this suffering world.  
It has never been considered that the Buddha's teachings are to be found only in the text, actually in the past the Dharma was transmitted as much through oral teachings. There is a temptation to merely dump data (facts) online rather than exploit the new ways of presenting information that the technology provides. Data and information do not necessarily translate into knowledge.
The temple approach in teaching the Dharma is through sermons with the teacher and the content being unchallenged. The new way is through group learning via discussion. On the Net it is through chat groups where the teacher or moderator acts as a facilitator for an ongoing debate or discussion.
The benefit of Internet learning is that you have access to information, and you also have access to other people, students or experts. It's the combination of the two that provides an extra dimension than most other technologies. In fact what is happening now is that students are looking for resources themselves and then interacting with them. Learning from digitally enhanced animated characters that act as virtual teachers, could be the future of online learning. Experts predict that successful electronic learning computer programs will become more sensitive to human nuances and motivation - software that initiates human interaction.
The Buddhist approach towards the propagation of its teachings is in the spirit of “Ehipassiko”, which is an invitation to come and see and verify the teaching for yourself – it is not proselytising, as there is no intention of conversion.
In accepting the Manhae prize as a Buddhist monk, caused me to reflect that any honour one receives, while much appreciated, is subject to the dualities known as the Eight Worldly Conditions or Winds: gain/lost, liking/disliking, honour/dishonour, and happiness/unhappiness. The pendulum constantly swing between these opposites: four are desirables and four are undesirables.
The Buddha’s Path is the Middle Way, where we are not caught up in the
polarisations of the Worldly Winds but live more in a state of equipoise, with balance of mind that leads to empathy and compassion that sees that we can live in peace with ourselves and with each other on this blue planet that now so urgently needs to be healed.  
The Manhae International Propagation prize is much appreciated as it will contribute to the ongoing support of the Buddhist information and educational network of BuddhaNet.net. So on behalf of the many people who have supported me in working on BuddhaNet over the years, I give my thanks and appreciation as the merit of this project will I am sure, continue to spread the Buddha Dharma for many generations to come.
Ven. Pannyavaro (Mahathero)

2. 수상소감
 
만해 큰스님께서는 깊은 감화력을 지닌 분으로, 자신의 생애를 자유·평등·진보·평화를 위해서 헌신하셨으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이를 통해 중생을 교화하는 일에 깊은 믿음을 지니고 그 믿음을 몸소 행동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그럼으로써 한국의 사회 개혁에 중추적 역할을 하신 분이 만해 큰스님이십니다.
이런 연유로 저는 디지털 세계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전파하고자 하는 저의 노력을 인정하여 만해대상 선정위원회가 수여하는 2009년도 만해국제포교상을 더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마음으로 받고자 합니다. 제가 1994년에 개설한 ‘붓다넷(BuddhaNet)’은 인터넷을 통해 부처님과 만날 기회를 세상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데 선구적 역할을 했으며, 이제 월드와이드웹 상에서 불교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고 교육하는 최상급의 네트워크로 발전하였습니다.
인터넷의 월드와이드웹은 지금 매우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와 교육 환경으로 발전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파하고 다시 포장하는 데 동원할 수 있는 하나의 새로운 방식으로만 간주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히려 온라인상으로 불법(佛法) 공동체―말하자면, 대안적인 사회 가치 및 영적 가치를 제공하는 사이버 승가(僧伽)―를 확립하는 데 무한한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토대로 간주되어야 할 것입니다.
월드와이드웹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교육하고 전파하고자 할 때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과외의 수단을 승가에게 제공하고 있습니다. 월드와이드웹을 통해 불법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를 통해 필요한 정보와 가르침, 경전과 교육 자료에 접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는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는 장치를 이용하여 세계 어디에 계시든 뵙고자 하는 불가의 스승들 및 승려들과 온라인상으로 만나, 밤이고 낮이고 어느 때든 무료로 개개인의 요구에 맞춰 즉각적으로 전달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러합니다. 정보와 교육 프로그램들을 비교적 적은 비용을 들여 발표하고 또 무료로 제공할 수 있는 이 같은 가능성은 모든 중생에게 혜택이 되도록 부처님의 가르침을 대가 없이 전수하는 승가의 전통에도 맞는 것입니다.
많은 중생이 과로와 긴장 속에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 급변하는 디지털 세계에서 우리는 그와 같은 과로와 긴장이 인간의 정신세계에 미치는 영향을 어떤 방법으로든 완화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말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삼라만상이란 본래 변화무쌍하고 무상한 것이기에 우리가 ‘가상의 유토피아’를 창조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인터넷은 우리에게 전 지구적 규모로 불교적 가치 및 불교적 세계 이해와 통찰을 전파할 기회를 우리에게 수없이 제공합니다. 불교가 지금까지도 속세에서 살아 있는 것은 금전적 가치에 근거하고 있는 탐욕의 문화와 반대되는 나눔과 봉사의 문화인 ‘보시(布施)’를 실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탐욕의 문화는 그 동기가 단순히 돈을 금전적 부를 창출하는 데 있기 때문에 기술 공학을 멋대로 오용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점을 우리는 인터넷을 착취를 위한 시장 마당으로 여기고 있는 닷컴 회사들이 최근 연이어 붕괴하고 있는 데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닝 또는 전자 매체를 이용한 불교 학습은 사회 발달뿐만 아니라 개인의 정신적 발달을 위한 도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접근 방법이 개선되고, 학습 기술이 세련화의 과정을 거치면 말입니다. 현실적으로 보면, 이 같은 학습 방법이 얼굴을 마주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을 결코 대신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기량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접근이 용이한 훈련을 가능케 하는 전달 매체를 새롭게 획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 세계의 불교 공동체는 자체의 이―러닝을 위한 내용 개발을 해야 할 것입니다. 동시에 불교 공동체 전체의 지식과 기량을 하나로 합하고 함께 나누는 전통 및 이 고해의 세계를 위해 자비의 마음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시할 새로운 방법을 연구하는 전통을 확립해야 할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다만 글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고 생각되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실제로 과거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글과 마찬가지로 말을 통해서도 전달되었습니다. 우리는 공학 기술이 제공하는 새로운 정보 처리 방식을 개발하기보다는 단순히 자료나 사실들을 옮겨다 온라인상에 아무렇게나 쌓아 놓고자 하는 유혹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료와 정보 그 자체가 반드시 지식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절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교육이 수행되는 경우, 그런 일은 스승이 설법의 형태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그 내용에 대해서는 어떤 제자도 문제 삼지 않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게 마련입니다. 새로운 방식의 교육은 토론을 거쳐 배우는 집단의 참여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다시 말해, 인터넷상으로 이루어지는 교육은 서로 대화를 나누는 집단을 통해 이루어지며, 이 같은 대화의 자리에 불가의 스승이나 중재자는 계속되는 논쟁이나 토론이 가능하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인터넷을 통한 학습의 장점은 어떤 학습자라도 쉽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전문가든 또 다른 학습자든 누구와도 쉽게 만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힐 수 있습니다. 이 두 장점이 결합하여 그 어떤 차원의 기술 공학도 제공할 수 없는 차원의 특별한 학습을 가능케 합니다. 실제로 요즘 일어나는 일을 보면, 학습자들은 스스로 학습을 위한 자원이나 수단을 찾아 나서고 있고, 또 그렇게 해서 찾아낸 것들과 상호 교류의 자리를 갖고 있습니다.
 디지털의 측면에서 강화된 동영상 속의 인물들이 가상의 스승 역할을 하고 그를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는 일이 온라인상으로 이루어지는 교육의 미래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전문가들의 예측에 따르면, 전자 학습을 위한 성공적인 컴퓨터 프로그램들은 점점 더 인간의 정조(情調)와 동기(動機)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말하자면, 인간과 상호 교류하는 프로그램이 나오리라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포교하고자 할 때 불교가 이 목적에 동원하는 접근 방식에 핵심을 이루는 것은 “내견(來見), 와서 보라”로, 이는 와서 보고 스스로 부처님의 가르침이 진실임을 확인하라는 초청의 정신을 담는 것입니다. 이는 개종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닌데, 누군가를 개종하고자 하는 의도를 담은 초청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러합니다.
불가의 승려로서 만해대상을 수상하면서 저는 수상의 영광에 더할 수 없는 감사의 마음을 느끼면서도, 이 같은 영광은 팔풍(八風)으로 알려져 있는 이익과 손실(利·衰), 명성과 비난(譽·毁), 칭찬과 헐뜯음(稱·譏), 즐거움과 괴로움(樂·苦) 등과 무관한 것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에 이끌리기도 하였습니다. 삶의 시계추는 바람직한 네 극단과 바람직하지 않은 네 극단 사이를 끊임없이 왔다 갔다 하는 법이지요.
부처님의 길은 양극단 사이의 길입니다. 세속의 바람이 극한으로 휘몰아치는 이 같은 양극단 어느 쪽으로도 휩쓸리지 않은 채 좀 더 균형을 유지하고 살아가는 삶의 길이 바로 부처님의 길입니다. 자비심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마음의 균형을 유지함으로써, 이를 통해 우리는 너무도 긴급하게 치유를 요구하는 이 푸른 지구 위에서 우리 자신이 함께 또한 서로 평화롭게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만해국제포교상 수상에 더할 수 없는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됨은 ‘붓다네’에 불교에 관한 정보를 확보하고 교육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지속적으로 요구되는 지원에 큰 힘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그동안 여러 해에 걸쳐 붓다넷을 구축하는 작업과 관련하여 저를 도와주신 수많은 분들을 대신하여 감사의 뜻을 전하고자 합니다. 확신컨대, 붓다넷 프로젝트에 대한 만해대상 선정위원회의 평가는 앞으로 이어질 수세대의 세월 동안 부처님의 가르침을 계속 전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빤냐와로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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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김종길.jpg

제13회 만해대상(문학부문) 수상자 - 김종길 (한국, 시인.영문학자-고대 영문과 교수 역임)
The 13th Manhae Prize(Literature) Winner - Kim Jong-gil (Korean, Poet, Professor emeritus at Korea University)
 
1. REason of Award
 
He debuted as a poet by winning a prize in a literary contest in spring sponsored by Kyunghyang daily newspaper in 1947 and taught English literature at Korea University and held office as the dean of College of Liberal Arts and scholar of English literature from 1958 to 1992. He translated many English and American poems and essays on poetry into Korean and many modern Korean poems into English to raise the status of "Korean literature in the world."
He was the president of Society of Korean Poets in 1988 and is an honorary professor of English literature at Korea University and member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today.
He received such literary awards as Mokwol (1979), Inchon (1996), National Academy of Arts Award (2000), Yuksa (2004), Gosan (2005), and Cheongma (2006), and such medals as Dongbaekjang (1992) and the Eungwan Culture Medal (1998). His achievements and accomplishments throughout his life are high and sublime like the peak of a huge mountain and made a history that could not be approached without tireless work and natural talent.
Known as an unprolific writer, he only published three anthologies while teaching at the university. These were Christmas Festival (1969), At Hahoe (1977), and Phenomenon of the Yellow Sand Storm (1986). He is far from prolific as he is committed to his study and teaching. Also attributed is his proud isolation from the secular customs of literary circles and his efforts to maintain the grace and solemn manner of poetry. Once he retired, however, he began to pour his immense passion into writing poems. His unbelievable concentration of poetic creation could not be described as the work of a vigorous old age. He presented beautiful works, which include Evening Primroses (1997), The Day Got Shorter (2004), and Gleaning at the Dusk (2008). Those three anthologies of his clearly show that he took a leisurely approach to things instead of focusing on the image-based clarity found in his early works, and depicted the significant meanings of life like a drawing in Indian ink. They have made their way into the treasury of modern Korean poetry for his contemplative poetic tones and meanings as if he were writing them in Buddhist revelations and with communication of mind with mind.
His other works include a collection of poems titled The Current State of Heaven and Earth (1991), criticisms of poetry such as Poetics (1965), Truth and Language (1974), Poems and Poets (1997), Between Poetry and Life (2005), and a collection of criticisms of poetry titled About Poetry (1986). He also published The Darling Buds of May (1991) in English, Anthology of English Poetry in the 20th Century (1954/enlarged in 1975), Slow Chrysanthemums (1987) in English, and The Snow Falling on Chagall's Village (1998), which translated Kim Chun-su's poems into English. Armed with extensive academic knowledge and outstanding insights as a scholar of English literature, he introduced English poetry of the 20th century into Korea and promoted Korean literature outside Korea in constant manners. His remarkable achievements could have not been possible without his innate talent of discovering worthy works. In his own works, he presents modernity in the forms of his request for something new and, at the same time, romanticism he pursues as he deeply understands Chinese poetry and writes it. In the 21st century overwhelmed by the Internet, he still values pen and paper and keeps to the world of "living classics."
He is a poet and scholar of English literature with broad understanding of Oriental classics. He is never inclined to either the West or Orient and suggested future directions for modern Korean poetry by striking harmony between poetic creation and theory and displaying deep literary insights. His achievements are attributed to his observing the spirit of Maecheon and Manhae, who had insights into the people's future like a prophet based on the scholar's mindset and strong historical consciousness, and his unwavering passion to learn the drive for life by Cheongma and Jihun and the solemn manner of poetry.
 
1. 수상자 선정 이유
 
김종길 선생은 194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이자 1958년부터 1992년까지 고려대학교 영문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문과대학장을 역임한 영문학자이다.
또한 영미시와 시론을 국내에 폭넓게 번역·소개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 현대시를 영역하여 외국에 소개하여 ‘세계 속의 한국문학’의 위상을 지속적으로 높여왔다.
1988년에는 한국시인협회장을 역임하였고 현재 고려대학교 영문학과 명예교수이면서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동안 받은 문학상으로는 목월문학상(1978), 인촌상(1996), 대한민국예술원상(2000), 육사문학상(2004), 고산문학대상(2005), 청마문학상(2006)이 있으며, 훈장으로는 국민훈장 동백장(1992), 은관문화훈장(1998)이 있다. 이처럼 김종길 선생이 평생 이룩한 업적과 성과는 큰 산의 봉우리처럼 높고 장엄하여 치열한 각고의 정신과 천부적 자질이 아니고는 도저히 다다를 수 없는 하나의 찬연한 역사가 되었다.
김종길 선생은 평소 과작으로 유명하여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에는 단지 세 권의 시집만을 출간하였다. 즉, 《성탄제》(1969), 《하회에서》(1977), 《황사현상》(1986)이 그것이다. 이는 영문학 연구에 전념하는 학자와 후학을 교육시키는 교육자로서의 길을 올곧게 걸어온 결과이면서 한편으로는 문단의 세속적인 관습을 멀리한 고고한 시인 정신과 시의 품격과 위의를 스스로 지켜나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년퇴직 이후에는 그동안 못다 한 시적 열정을 쏟아내어 노익장이라는 흔한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힘찬 시 창작의 집중도를 보이면서 주옥같은 작품을 지속적으로 창작해 내었다. 《달맞이꽃》(1997), 《해가 많이 짧아졌다》(2004), 《해거름 이삭줍기》(2008)가 바로 그것이다.
이 세 권의 시집은 초기시의 이미지 중심의 선명성보다는 사물을 넉넉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삶의 소중한 뜻을 한 폭의 수묵화처럼 고담하게 아우르고 있다. 이심전심의 불립문자로 시를 쓰듯 알맞은 거리를 두고 관조하는 시적 어조와 의미가 돋보이는 한국 현대시의 소중한 자산이 되고 있다.
이 밖에도 김종길 선생이 펴낸 책으로는 시선집 《천지현황》(1991)을 비롯하여 시론집 《시론》(1965), 《진실과 언어》(1974), 《시와 시인들》(1997), 《시와 삶 사이에서》(2005)와 시론선집 《시에 대하여》(1986) 그리고 영문시론집 《The Darling Buds of May》(1991)와 역시집 《20세기영시선》(1954/ 증보판 1975), 영역 한국한시선 《Slow Chrysanthemums》(1987), 영역 김춘수시선 《The Snow Falling on Chagall's Village》(1998)가 있다.
이처럼 김종길 선생은 해박한 학문적 지식과 영문학자로서의 탁월한 안목을 바탕으로 20세기 영시를 우리나라에 소개함과 동시에 한국문학을 외국에 널리 지속적으로 알리는 일에 정진하여 왔다. 이는 빼어난 작품을 가려내는 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선생 특유의 천부적 자질이 아니고는 이룰 수 없는 매우 값진 성과이다.
선생의 시 세계는 새로움에 대한 탐구로 나타나는 현대성이 있는 동시에 한시를 깊이 이해하고 또 스스로 한시를 짓는 선비로서의 넉넉한 낭만성도 공존한다. 인터넷이 난무하는 21세기이지만 지필묵을 이냥 소중히 지니고 있는 ‘살아 있는 고전’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김종길 선생은 시인이자 영문학자이면서도 이에 못지 않는 동양 고전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언제나 동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는 일 없이 또 시 창작과 이론을 조화롭게 상조시키면서 우리 현대시의 나갈 길을 깊은 문학사적 통찰력으로 가늠해 내었다.
이는 선비정신과 결연한 역사의식으로 민족의 미래를 예언자적 자세로 통찰한 매천과 만해의 정신을 이어받으면서 한편으로는 청마와 지훈의 생명 의지와 시의 위의를 체득해 나가는 의연한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2. Impression of Manhae Prize, Kim Jong-gil
 
It's such a huge honor to win the 13th Manhae Prize in Literature, and I would like to express my deepest gratitude to the Society for the Promotion and Practice of Manhae's Thoughts and the jury. I am also overwhelmed by a question if I really deserve the prize that bears Manhae's name and honors his ideas and their practice.
Manhae was a Buddhist priest, poet, and patriot and a remarkable one at that. He was a pioneer that insisted on the reform of Buddhism as a priest, a talented poet that worked with both Chinese poetry and modern poetry, and patriot that refused to give in. In a word, he's one of the amazing talents and fighters during the opening period.
His talent started to show when studied Chinese literature. There is a saying that he mastered the Seosanggi only at six. He devoted himself to independence movements in the 1910s and then entered the world of modern poetry inspired by Tagore's works translated by Oh Cheon-shik and Kim Eok. I once described it as a spark between two currents impressed by his excellent poetic insight or absorption.
His intense intellect and fierce patriotism developed thorough criticisms in him. Just like Maecheon Hwang Hyeon, an honored patriot during the late Chosun, he made rigorous evaluations, which left few within the category of true independence activists. And I am proud to say that one of the few that made the category was Ilsong Kim Dong-sam (Geung-shik), my ancestor. In March, 1937, he passed away at the Seodaemun prison and left a will saying "What's the use of a grave when there's no country?" It was Manhae that recovered his body, dressed it for a funeral, and cremated it before spreading the ashes in the Han River.
It's hard to believe there would be Koreans who don't admire him or don't love to read his poems. As a man of poetic literature, I made my own contributions to promoting his works by translating some of them such as I Don't Know, An Artist, Secrets, Your Face, and Planted Willows and included them in a couple of anthologies of modern Korean poems published in the nation from the early 1960s. Although there are several translations of his Silence of Love home and abroad, I'm not convinced there is a decisive one among them.
There were only two occasions where I traced his marks; I visited Baekdam Temple and Manhae Village and the house of his birth and the memorial hall in Galsan, Hongseong in the 2000s. It was early November, 2001 that I first visited Baekdam Temple and stayed there one night to participate in setting up a monument with a poem inscribed for Lee Seong-seon. In mid August, 2005, I visited Mt. Geumgang to participate in the World Festival of Peace and Poets and stayed there one night. In 2007 and August, 2008, I also visited and stayed there one night to participate in an international symposium. And finally, I visited Galsan, Hongseong in last May to join a picnic of the Society of Korean Poets.
To think of it, I do have connections with Manhae, and the prize makes my connections with him even tighter. At the same time valuing the connections, I eagerly hope that I can come closer to the high state of his gracious life before I die. And I once again appreciate all those involved in the Manhae Prize.
 
2. 수상소감
 
제 13회 만해대상 문학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것을 커다란 영광으로 생각하며 이 상을 주관하는 만해사상실천선양회와 선정위원 여러분께 깊이 감사하는 바이다.
그러나 내가 이 상을 받을 만한가 하고 되돌아볼 때 나 자신 몸 둘 바를 모를 만큼 송구스럽기도 하다. 그것은 두말 할 것도 없이 이 상이 이름 그대로 만해 한용운 선생을 기리고 그분의 사상을 실천하고 선양하기 위해 지정된 것이기 때문이다.
만해는 주지하다시피 승려요 시인이요 지사였다. 그러나 그는 이 세 가지 자격의 어느 한 가지에 있어서도 평범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는 승려로서는 불교유신을 주장한 선각자였고, 시인으로서는 한시(漢詩)와 현대시의 신구양식(新舊樣式)을 함께 구사한 특출한 시재(詩才)였으며, 지사로서는 끝까지 변절을 거부한 투사였다. 다시 말하면 만해는 개화기 한국의 몇몇 대표적 선각들처럼 뛰어난 재사요 투철한 투사였던 것이다.
그의 재주는 어릴 적 서당에서 한문을 배울 때부터 비범하여 여섯 살에 《서상기(西廂記)》를 독파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했다. 그가 조국광복운동으로 활약한 1910년대를 거쳐 현대시에 입문할 때 그에게 영감을 제공한 것이 오천식(吳天蝕)과 김억(金億)이 번역, 소개한 타골의 시로 생각되는데 나는 그것을 두 갈래의 전류 사이의 스파크 현상에 비유한 적이 있다. 즉 그만큼 만해의 시적 통찰력 내지 흡수력이 강렬했던 것이다.
이처럼 강렬한 그의 지성과 투철한 지사풍은 그를 가차 없는 비판 정신의 소유자로 만들었다. 한말(韓末)의 순국지사 매천 황현(梅泉 黃玹) 선생이 그러했듯이 만해의 추상 같은 평가 아래서 참다운 독립운동가는 매우 드물었다 한다. 그러나 그 국소력의 예외 가운데의 한 분이 나의 족조(族租) 일송(一松) 김동삼(金東三=본명 긍식) 선생이다.
1937년 3월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한 일송의 시신을 자신의 거처인 심우장에서 염습하여 미아리 화장장에서 화장한 뒤 “나라 없는 몸이 무덤은 있어 무엇하나”라는 고인의 유언대로 그 유회(遺灰)를 한강에 뿌리게 한 것이 바로 만해였다.
이와 같은 만해를 흠모하고 그의 시를 애독하지 않는 한국인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 가운데서 내가 시문학도로서 만해 시를 선양하는 데에 조금이라도 기여한 바가 있다면 그것은 〈알 수 없어요〉 〈예술가〉 〈비밀〉〈님의 얼굴〉 및 〈심은 버들〉과 같은 작품들을 번역하여 1960년대 초부터 국내에서 출판된 두서너 가지 영역(英譯) 한국현대시 시화집에 수록한 일일 것이다. 시집 《님의 침묵》은 영어로 번역되어 국내외에서 출판된 것이 몇 가지 있으나 결정판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내가 진작 만해의 자취를 찾은 것은 심우장을 두어 번 가 본 것뿐이었는데 2000년대에 들어 백담사와 만해마을, 그리고 홍성 갈산의 만해 생가 및 기념관도 찾을 기회가 있었다. 백담사를 처음 찾은 것은 2001년 11월 초 이성선 시비 제막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는데 거기서 일박했고, 만해마을에는 2005년 8월 중순 세계평화시인대회에 참가했을 때 들렀다가 금강산으로 가서 일박하고 돌아왔으며, 2007년과 2008년 8월에도 국제심포지엄 참가차 거기서 일박하게 되었다. 그리고 홍성 갈산에 들른 것은 작년 5월 하순 한국시협 야유회 때였다.
그러고 보면 나는 만해 한용운 선생과 인연이 바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 인연은 이 수상으로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것이 된다. 이 인연은 그 자체로도 소중한 것이지만 나의 여생이 끊임없이 선생의 생애가 보여 준 높은 경지에 근접하는 계기가 되어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끝으로 다시 한 번 만해대상을 운영하는 관계자 여러분께 깊은 사의를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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