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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권영민.jpg

■ 만해대상 학술부문 : 권영민(문학평론가 · 서울대 교수)
Manhae Academy Prize : Kwon Young-min(Korea, Professor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1. 수상자 선정 이유
권영민(1948~ ) 교수는 197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래 활발하게 비평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중진 문학평론가이며, 1971년 서울대 문리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문학석사(1975), 문학박사(1984)를 받고 한국문학의 학술연구와 세계화에 진력해온 한국인 대표적인 국문학자이다.
권영민 교수는 문단에 등단한 이래 평론집 『한국 근대문학과 시대정신』(1983), 『해방직후 민족문학 연구』, 『한국의 문학비평』 등의 비평작업을 통해 문학주의와 민족문학의 정체성 확립에 꾸준히 기여해 왔다. 아울러 월간 『문학사상』 주간으로 문단발전에도 폭넓게 기여해 왔으며, 그 결과 두계 학술상(1988), 서울문화예술평론상(1988), 현대문학상 평론상(1990), 김환태 평론상(1992), 현대불교문학상 평론상(2004) 등을 수상한 바 있다.
권영민 교수는 1981년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교수를 취임하고 1984년 문학박사학위를 받은 이래 『한국근대소설론 연구』, 『염상섭문학 연구』, 『한국계급문학운동사』, 『서사양식과 담론의 근대성』, 『한국현대문학사 1, 2』 등의 수많은 학술서를 상재하고, 『해방 40년의 문학』, 『한국현대문학사 연표』, 『월북문인연구』, 『한국근대문인대사전』, 『한국현대문학사』, 『한국문학 50년』, 『한국현대문학대사전』 등의 편저를 통해 한국문학의 저변을 탐구하고 문학연구에 초석을 마련하는데 크게 기여한 바 있다.
한편 권영민 교수는 그가 봉직하고 있는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교수로서 훌륭한 인재들을 육성하는 한편 이문대학장, 서울대학교 인문학포럼 운영위원장, 서울대학교 평의회 의원 등 학내 발전에도 이바지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대통령 자문 21세기 위원회 위원, 방송위원회 심의위원, 문화재 위원, 한국문예진흥지원사업 평가단장을 역임하고 2005년에는 만해축전의 일환으로 개최된 광복 60주년기념 세계평화시인대회의 준비위원장을 맡아 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등 사회문화 활동에도 폭넓게 기여하고 있다. 한편 국제한국학회 회장과 국제 한국문학회 회장을 맡아 학문활동에도 기여하고 있다.
권영민 교수의 학문적 업적인 실증주의적인 방법론의 바탕으로 하되 정신사적인 해석과 분석, 비평을 함께 함으로써 실증주의와 해석주의의 장점을 포괄적으로 아울러 낸다는 점에서 특징을 지닌다. 이러한 학문적 시야의 넓이와 천착의 깊이는 한국문학연구 및 비평에 새로운 시야를 열어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고 하겠다. 특히 균형감각에 바탕을 둔 비평의 엄격성과 실증적인 자료 해석에서 나온 학문적 성실성 및 진실성은 후학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어가고 있다.
아울러 민족문학의 총체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월북문인의 해금문제를 제기하여 1988년 월북문인 해금조치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내는 한편, 미국의 하버드 대학과 버클리 대학, 일본의 동경대학 등에서 한국문학을 강의하며 한국문학의 사적 체계에 주력하고, 미국 콜롬비아 대학 출판부에서 간행된 ‘한국문학 선집’ 시리즈의 책임자로서, 또한 2005년 만해축전의 세계평화시인대회 준비위원장으로서 노벨상 수상자인 월레 쇼잉카 등 세계 각국의 저명 시인을 초청하여 우리 문학과 학술의 세계화에 크게 기여한 바 있다.
권영민 교수는 이렇듯 한국문학 연구와 비평활동에 크게 이바지하였을 뿐만 아니라 민족문화 예술 활동과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통해 한국인의 학문적 자존심과 문학적 자부심을 확립하고 세계화하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이에 만해사상실천선양회는 권영민 교수를 2006년도 만해대상 학술부문 수상자로 선정하는 바이다.

1. 수상소감
금년도 만해대상 학술부문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것이 내게는 너무나 큰 영광입니다.
만해대상 학술부문상은 우리 국학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이고, 해마다 최고의 업적을 낸 학자들에게 그 영예를 드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나 자신은 아직도 한국문학 연구의 중심에 제대로 서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부끄러운데, 이런 상을 받게 된 것이 큰 부담입니다.
동향의 대선사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상을 받게 되어 더욱 기쁩니다.
나 자신의 학문을 깊이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점에 대해 만해대상 심사위원님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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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박원순.jpg

■ 실천부문 : 박원순(변호사ㆍ희망제작소 상임이사)
■ Manhae Practice Prize : Park Won-soon(Korea, Lawyer, Hope Production Standing Director)

1. 수상자 선정 이유
박원순(1956~ ) 변호사는 언제나 투명한 사회, 행복한 사회로 길 위에 있었다. 시민운동에서 그가 가면 길이 되기도 했고, 보이지 않던 길이 나타나기도 했다.
1983년 인권변호사로 출발해 민주화 운동의 앞자리에 섰고, 1987년 6월 항쟁 이후 형식적인 민주화가 진전되는 과정에서 악법과 구제도를 혁파하는 일에 나섰다. 민주화가 일정하게 진전되자, 1994년 참여연대 발족에 주도적으로 참여해 일상 속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쟁취하는 시민운동을 전개했다. 참여연대가 제 궤도에 오르자 2002년 아름다운 재단을 결성해 기부문화와 나눔 운동에 나섰고, 2006년에는 다시 대안 사회의 비전과 정책을 세우는 희망제작소를 출범시키며 아름다운 재단을 떠났다.
그가 걸어온 길은 3단계로 나뉜다.
첫 번째는 변혁운동의 길이었다. 그는 1976년 서울대 법다 2학년 때 김상진 열사 추모 집회에 참여했다가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제적당했다. 이 사건은 폭력과 억압이 상시적으로 자행되는 체제와 권력에 대한 그의 태도를 결정하는 분수령이 된다. 1980년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검사 생활을 잠깐 한 뒤 변호사로 나선 그는 곧바로 폭압에 맞선다. 군사정권의 폭력 앞에서 걸레가 되어버린 헌법이지만, 그나마 제도적으로 기댈 건 그것뿐이었다. 작고한 조영래 변호사와 함께 시대를 뒤흔들었던 권인숙 성고문사건을 포함한 거의 모든 시국사건 소송에 참여한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에도 악법의 개폐는 거친 싸움을 통해서만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리영희 교수, 문익환 목사 방북사건 등 굵직한 시국사건이 발생했고, 그때마다 법정엔 박 변호사가 있었다.
두 번째 길은 민주주의 실천의 길이었다. 1992년 문민정부의 등장으로 제도적 민주화에 일정한 발전이 이루어진다. 더 이상 거리에서의 싸움으로는 민주주의의 내실을 기하기 어려웠다. 이전까지 전위적인 민주화 운동가들과 함께 했다면, 이제는 살아가는 이들과 함께 해야 했다. 1994년 ‘참여 민주사회와 인권을 위한 시민연대’라는 다소 긴 이름의 단체를 결성하고, 얼마지 않아 사무처장을 떠맡아 단체를 이끌기 시작한다. 참여연대로 통칭되는 이 단체는 이제 회비를 내는 회원만 14000명에 이르고, 상근자가 50명, 지원하는 전문가 그룹이 200여 명에 이르는 거대한 조직으로 성장했다. 이 단체에선 인권 침해의 우려가 있는 각종 제도와 관행을 바꾸는 한편, 최저선의 삶을 보장하기 위한 국민생활최저선운동을 펼쳤다. 또 반부패 투명사회 운동, 사법감시, 재벌개혁, 조세개혁 운동을 펼쳤다.
그는 ‘말로는 돌멩이 하나 옮길 수 없다’고 거듭 말했다. 고발하고 참견하고 물고 늘어지라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제도나 관습은 바뀌지 않고, 침해당한 권리를 되찾을 수 없다. 이런 정신이 배어 있는 게 1인 시위, 릴레이 시위 등이다. 그 결과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제정하게 했고, 소액주주운동을 통해 재벌이나 대기업의 개혁을 이끌어냈다. 삼성그룹 이재용 씨 편법 상속 문제를 물고 늘어져, 삼성으로 하여금 결국 8000억 원을 사회에 환원하도록 했다. 2000년 총선 때 참여연대 ? 환경운동연합 등이 전국의 시민단체들과 함께 펼친 낙선운동은 거대한 시민의 힘이 어떻게 행사될 수 있는지 보여준 시민운동사의 금자탑이었다.
세 번째 길은 아름다운 세상을 가꾸는 길이었다. 그는 2000년 참여연대 사무처장직을 그만둔다. 그 영향력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였다. 2002년 여름 그는 새로운 과제를 던졌다. 나눔운동이 그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아름다운 재단을 설립하고, 1% 나눔운동을 펼쳐 나갔다. 월급, 축의금, 휴가비의 1%씩을 모아 어려운 이웃과 나눔을 실천하자는 것이었다. 매년 70~80억 원의 기부금이 걷힌다. 재단에서 이와 함께 아름다운 가게를 운영했다. 쓸 만한 물건을 기부 받아 판매해 얻은 수익금으로 이웃을 돕는 가게였다. 아름다운 가게는 현재 50여 개로 불어났고, 미국에도 가게가 생겼다. 자원봉사자만 3000여 명에 이른다.
아름다운 가게가 정착하자, 그는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섰다. 올 3월 희망제작소를 설립했다. 갈등만 확대 재생산하는 정치권, 심화되는 양극화와 사회적 갈등, 격화되는 경쟁과 깊어 가는 소외로 인해 우리 사회가 잃어 가는 희망을 되살려내자는 것이다. 더 잘 살자는 것에서 벗어나 더 행복하게 살기를 꿈꾸는 단체다. 우리 사회가 지향할 새로운 패러다임과 비전을 제시하고 실천적인 정책 개발 활동을 통해 우리 사회를 재구성하려 하고 있다. 그는 작은 돌멩이를 옮기는 실천을 통해 지금 산을 옮겨가고 있다.만해사상실천선양회는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 아름답고 용기 있는 실천을 보여준 박원순 변호사를 2006년도 만해대상 실천부문 수상자로 선정하는 바이다.

2. 수상소감
저는 알지 못합니다.
만해가 어떤 상을 받은 적이 있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 참혹하고 어두운 시대에, 총독부를 보지 않기 위해 북향을 고집하던 그 차가운 시절에, 그가 누구로부터 상을 받았을 성싶지는 않습니다.
뭔가 제대로 일을 한 사람이 그 당대에 상을 받았다는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주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은 동시대인으로부터 평가를 받기가 쉽지 않은 법입니다. 상을 받는다는 것은 기쁜 소식일 수 없는 까닭입니다.
무엇보다도 이것은 과분한 일입니다. 염치와 자격이 없는 일입니다. 과거 이 상을 받았던 사람들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분들의 명단을 보는 순간 제가 설 자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상을 받고 여기저기 언론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는 사람들이 저는 늘 못마땅했습니다.
사실 저 자신이 바로 그런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심약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 일은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또 한 번 이런 일을 당해야 하니 참 곤욕입니다.
고역입니다. 이런 상을 주신다는 것은. 이런 상을 받는다는 것은. 아직은 많이 뛰고 싶습니다. 현장에서 마음껏 일하고 싶습니다. 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은 세상입니다.
바꾸어야 할 일들이, 바꾸고 싶은 일들이 너무도 많아 그 현장을 떠나고 싶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상을 받는다는 것은 지나온 과거에 대한 평가입니다. 그러나 아직 저는 과거에 대한 평가를 받을 입장이 못됩니다. 왜냐하면 지나온 과거보다는 앞으로 달려가야 할 미래가 더 많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고 엄중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만해를 사모해 온 것은 사실입니다. 그가 보여 준 단호한 실천의 행동, 꺾이지 않은 의지, 깊은 사색과 고뇌, 끝없는 개혁의 행진, 사람들과의 포용과 협동, 그 부드러운 시심, 자신의 조국과 종교에 대한 사랑과 헌신, 그 모두가 닮고 싶은 것뿐이니까요. 그의 이름을 단 상을 받는다는 것은 그를 너무 사모하는 입장에서 참 가당하지 않은 일입니다. 그의 위대함을 잘 아는 사람에게 참으로 부끄럽기만 한 일입니다.
그러나 참 의지가 약한 저는 또 어찌할 수 없습니다. 이 상을 추천하고 준비해 주신 분들에게 그것을 거부할 만한 강한 의지가 없습니다. 미리 알려 주셨다면 사전에 간곡히 말씀 드렸을 것을. 그래도 지금은 좋습니다. 상금을 조금 주신다니까요. 언제나 돈독이 올라 있었습니다.
그 돈으로 제가 언제나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으로 착취해온 우리 간사들과 연구원들을 위해 거나하게 한 잔을 사려합니다. 그리고 이 상의 무게와 압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앞을 향해 달음질쳐 가겠습니다. 아직은 앞이 잘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저만치 있을 산마루를 향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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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김지하.jpg

■ 평화부문 : 김지하(시인)
Manhae Peace Prize : Kim Ji-ha (Poet)
 
1. 수상자 선정 이유
김지하(1941~ ) 시인은 1969년 『시인』지로 등단한 이래 깊이 있는 휴머니즘 정신과 치열한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분단극복과 민주화 실현이라는 이 땅의 핵심과제와 중심문제를 제기하면서 그 극복과 해결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전개해 온 한국의 대표적인 시인이자 생명사상가이고 평화운동가이다.
그는 60~70년대 오랜 영어 생활 속에서도 “시드는 힘과 새로 피어오르는 모든 힘의/기인 싸움을 알리는 쇠나팔소리”로써 온전한 생명공동체 실현을 붕괴시키는 권위주의 정권, 지배권력층에 대한 치열하고 일관성 있는 저항운동을 통해 질곡의 역사에 민주화의 등불을 밝히려 노력해왔다. 1964년에는 한일회담을 반대한 학생시위에 적극 가담했다가 체포 ? 투옥되어 4개월 동안 영어 생활을 했으며, 1970년에는 담시(譚詩) 「오적(五賊)」을 발표하여 반공법 위반으로 체포 ? 투옥되었다.
1974년에는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으로 체포되어 긴급조치 4호 위반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 후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가 다음해 2월 형 집행정지로 석방되었으나, ‘인혁당 사건’의 진상을 밝혔다가 석방된 다음 달에 다시 체포되었다. 전 세계의 주목 속에 오랜 재판과정을 거쳐, 앞선 무기징역에 다시 징역 7년형을 추가로 선고받고 6년간의 고통스런 옥살이 끝에 정권이 바뀌자 1980년 12월 형 집행정지로 석방된 바 있다.
출옥 후 80년대부터 그는 파괴와 죽임의 문화까지도 생명의 언어로 포용하고 순화시켜내면서 생명과정을 존중하고 생명가치를 고양시키는 생명사상을 주창하고, 그것을 인류사적 차원의 평화운동으로 이끌어 올리는 사상적 ? 실천적 노력을 줄기차게 전개해 가고 있는 이 땅의 선구적인 생명사상가 ? 평화운동가로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며 그 중요성과 위치를 평가받아 왔다. 그는 문학창작과 실천적인 민주화 투쟁, 그리고 생명공동체 실현과 우주공동체의 실현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21세기에 들어서서는 민족사적 범주를 넘어 세계문명사적 차원에서 평화사상의 탐구와 실천적인 노력을 전개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민주화투쟁과 문학을 통한 생명운동과 평화운동의 공적으로 1975년 아시아 아프리카 작가회의(AALA)에서 ‘로터스(LOTUS) 특별상’을 수상하고, 1981년에는 국제시인회의(POETRY INTERNATIONAL)에서 주는 ‘위대한 시인상’ 및 브루노 크라이스키 인권상 위원회에서 수여하는 ‘브루노 크라이스키 인권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김지하의 삶과 문학은 정치와 문학, 투쟁과 사랑, 사상과 실천이라는 자칫 분리되기 쉬운 모순명제를 생명사상과 평화사상이라는 화두로 꿰뚫어냄으로써 이 땅 문학사와 정신사에 일대활로를 타개해냈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와 가치가 드러난다.
그의 이러한 노력은 21세기 들어서 그가 『생명과 평화의 길』(2005)이라는 저서를 통해 ‘생명과 평화의 길’이라고 명명한 새로운 평화운동 내지 사상사적 화두를 열어가기 시작하면서 “전 세계, 동아시아, 그리고 한반도의 남과 북 앞에 새 문명의 길을 열어가야 한다”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통해 만해의 「조선독립의 서」에 보이는 ‘민족자주와 세계평화에 대한 대세계적 의무’의 맥락을 계승하여 21세기 인류문명사와 정신사적 위기를 타개할 대안과 비전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만해대상 평화부문 수상자로서 충분히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가 고난과 역경 속에서 굴하지 않고 줄기차게 꽃 피워온 이러한 생명의 언어와 평화운동의 메시지는 21세기 인류문명사에 있어서 제 3의 물결을 열어갈 것이 확실하다는 점에서 우리는 김지하 시인을 2006년도 만해대상 평화부문 수상자로 선정하는 바이다.

2. 수상소감
이젠 오랜 옛일이 되었다.
박정희 독재의 절정이었던 유신헌법이 공포된 바로 그 다음날 밤, 나는 내설악 백담사 골짜기 누군가의 산장 한 귀퉁이 방에서 새벽까지 뜬눈으로 오똑 혼자 앉아 있었다.
방 안의 밤새 타는 촛불을 보고 방 밖의 천둥처럼 시끄러운 여울물 소리를 들으며 내 삶과 만해 스님의 자취를 내내 생각하고 있었다.
빛을 내기 위해 제 몸을 사루는 촛불, 그리고 머언 바다로 가기 위해 제 몸을 바위에 부딪쳐 부서지며 소리를 내는 여울물.
바로 만해 사상이었다.
그 여울물이 향하는 곳. 그곳에 커다란 바다의 고요한 평화가 있었고 그 평화에 이르고자 여울물은 부서지고 있었으니 그 부서짐은 곧 물의 생명이었다.
그 밤은 내 삶의 전환점이었다.
날이 밝자 이내 나는 싸움터로 돌아갔고 그리하여 이내 길고 어두운 감옥으로 돌아갔다. 이후 나의 싸움은 평화에 이르기 위한 촛불과 여울물의 생명을 학습하는 몸부림을 닮고자 하였고, 감옥에서 그리고 석방 이후 그 밤을 애써 명제화하려고 시도하였다.
오늘 그날 밤과 똑같은 그 의미심장한 자리에서 과분하게도 만해 평화상을 받는다는 기별에 접한다.

인연일까?
순환일까?
오로지 기이할 뿐이다.

그러나 또한 이상한 것은 이 광영스러운 오늘, 나의 뇌리에 새겨지는 뚜렷한 기억은 그날 밤의 촛불도 여울물도 아니요, 그 산장 반대편 방에서 밤새도록 불어대던 한 미국 청년의 서툴기 짝이 없는 퉁소소리라는 것이다. 그 소리가 도리어 오늘의 여울물 소리란 말인가?
오늘의 생명과 평화의 가장 날카로운 몸부림은 밤새 퉁소를 불어대던 한 미국 청년의 그 쉽게 설명되지 않는 ‘이스트 터닝(EAST TURNING)’에 있다는 말인가? 하긴 만해대상의 제일 첫 번째 포교상 수상자가 숭산 스님인 것도 전혀 우연은 아닌 듯하고 오늘 이후 만해 사상의 촛불과 여울물이 향하는 곳도 그것과 아예 무관하지는 않은 듯싶다.
만해 평화사상의 세계성이 왠일로 오늘 유난히 내 가슴에 깊이 와 닿는다.
광활한 아시아 대륙과 드넓은 태평양을 아우르는 새 문명의 예감 아닐까?
이 예감만은 결코 오랜 옛날이 아닌 눈부신 새날의 발자국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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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부문 : 황동규(시인
· 서울대 명예교수)
Manhae Literature Prize : Hwang Dong-gyu (Korea, Poet, Professor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1. 수상자 선정 이유
황동규 시인은 1938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195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이후 첫 시집 『어떤 개인 날』(1961)에 이어 『꽃의 고요』(2006)에 이르기까지 모두 12권의 시집을 간행하면서 한국의 대표적인 시인의 자리를 확고하게 구축해 왔다.
그의 시는 끊임없는 변모와 성숙을 보이면서 질적 상승과 깊이를 거듭해 왔다. 황동규의 초기 시에서 주제를 이루는 것은 이승의 삶에서 상처입고 살아가는 자가 느끼는 외로움과 쓸쓸함이다. 그리움, 기다림, 눈물, 방황 등의 시어들이 빈번히 등장하며 그것들은 비극적 정서에 휩싸여 있다. 또한 초기 시에 빈번히 등장하는 못, 씨름, 상처, 돌베개 등의 성서적 이미지들과 구약 성서의 시편과 잠언을 연상시키는 예언자적 호흡과 어조가 나타나기도 하는데 그는 여기서 기독교적 구원관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진정한 실존적 가치 실현을 위해 고통스러운 삶의 과정 자체에 의미를 두면서 상처 입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존재론적 숙명에 저항해 나간다.
1970년대 후반부터 그는 지금 여기에서 자신과 함께 상처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혹은 자신보다 앞서 그러한 고통을 처절하게 견디며 살아갔던 사람들에 대한 동지적 사랑을 보여 준다. 이 시기에 그의 시에는 정치적 폭력에 대한 공포와 거기에 정면으로 맞서 대결할 수 없는 무력감 사이에서 생기는 갈등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내면적 천착이 가해지면서 서정성이 회복되고 인간의 보편적 삶과 자신의 삶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게 된다.
이 때 그가 부딪친 근원적인 명제가 죽음의 문제였으며 1980년대부터 죽음의 문제는 그의 시의 중심적 주제가 된다. 「풍장 연작시」가 이때부터 쓰여 지며 『몰운대행』(1991), 『풍장』(1995) 등이 시집이 간행되어 그의 시는 독자적 경지를 개척해 나간다. 그 나름의 독특한 죽음을 추구하면서 그는 자연스레 선불교와 적극적으로 만나게 되고 이를 통해 그의 시는 보다 근원적 통찰을 터득하게 된다. 특히 20세기를 마감하는 무렵부터 쓰여 지기 시작한 그의 시들은 인류의 스승인 석가와 예수는 물론 한국불교의 원효 등을 등장시켜 이들 서로의 대화를 통해 기독교와 불교의 새로운 만남을 시도하고 있는데 이는 종교사상의 시적 융합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로서 기록된다.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2003)에 이어 최근에 간행된 『꽃의 고요』(2006)에 이르러 그의 시는 인류의 가장 보편적인 화두인 죽음의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이를 초극하는 심오한 시적 직관을 보여주었다는 것은 우리 시단의 성과일 뿐만 아니라 세계 시단에서도 주목할 만한 시적 업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중생이 병들어 있으므로 나도 아프다는 유마적 명제의 심도 있는 천착은 한국 현대불교시의 수준을 한 단계 격상시키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황동규의 시가 죽음과 적멸을 넘어서서 고요의 지점까지 나아간 이 시점에서 만해대상 수상자로 선정하는 것은 한국문학을 위해 매우 뜻 깊은 일인 동시에 이를 통해 황동규 시인 자신도 더욱 독자적인 세계를 열어나갈 원동력을 얻을 것으로 기대해 본다.
 
2. 수상소감
현대문학의 뛰어난 유산이 많지 않은 우리에게 만해는 실로 값진 보물입니다. 만해가 문학을 시작한 초창기의 우리의 현대문학은 불모 상태였습니다. 전통문학의 모든 장르들은 힘을 잃고 문학의 지평에서 지워졌고, 새 문학이라야 일본의 신문학이나 일본을 통한 서구 현대문학의 모방에 바쁠 때였습니다.
그때 만해는 그런 ‘현대’의 모방이 아니라 식민지 삶의 고통 속에서 문학이 가야 할 중요한 길 하나를 보여준 것입니다. 그 길은 민족의 자존심과 시의 자존심을 동시에 거는 길이었습니다. 만해가 인도 시인 타고르에서 형식의 일부를 빌린 것은 사실이지만, 전례가 없는 문학이 어디 있습니까?
만해 때나 지금이나 시간적으로 앞선 문학은 늘 뒤에 오는 문학을 짓누르고 또 북돋아 주게 마련입니다. 당시에 유행하던 일본을 통한 서구의 전례를 따르지 않고, 같은 동양인으로 동양인의 삶을 문학에 녹인 타고르를 전례로 삼았다는 그 자체만도 의미를 가집니다.
저는 만해나 소월의 문학은 과거의 것이고 그들 앞에서 머뭇거릴 때는 지났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박물관의 잘 보이는 자리에 모셔두면 되리라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즈음 와서 그런 생각을 조금 바꾸게 되었습니다. 백년이 넘었다는 한국의 현대문학이 지금처럼 외부적인 압력 때문이 아닌 내부적인 위기에 처한 적은 없습니다. 영상 매체의 강력한 공격을 받고 있는 사실을 잠시 접어둔다 하더라도 시, 소설 할 것 없이 문학이 계속 가벼움을 즐기거나, 과거 삶의 이야기를 시 형태 비슷하게 서술하는 일로 방황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주로 쓰고 있는 시를 예로 들자면, 우선 유행하고 있는 이야기 시가 있습니다. 미당이 본격적으로 시작한 이 장르는 그러지 않아도 멋진 미당 산문의 한 부분이 되었다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이야기는 산문의 영역입니다. 만해는,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님의 침묵〉)
라고 노래하며 시의 실체가 노래임을 일깨워 줍니다. 산문시조차도 시다운 시라면 노래인 것입니다.
그리고 너무 개인적인 ‘나’에 얽매여 있는 오늘날 시의 한 경향을 향해 만해는 시의 ‘나’와 ‘님’이 좁은 의미의 ‘나’와 ‘님’이 아니라 애인·이웃·사회·민족·인간의 속성을 공유하는 ‘나’와 ‘님’임을 도처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저 유명한 《님의 침묵》의 서문을 보십시오.
그리고 또 이즈음 유행하는 회고조의 시들한테는 당시에는 엽기적인 언어였을 “날카로운 첫 키쓰”(〈님의 침묵〉)를, 너무 표피적인 시들한테는 “당신은 나의 죽음 속으로 오셔요”(〈오셔요〉) 같은 ‘신식’이며 동시에 형이상학적인 상상력을 예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즘 시와 소설은 자꾸 가벼워지고 있습니다. 물론 고깃근이 아닌 다음에야 가벼운 것이 언제나 무거운 것보다 못하다고만은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꽤 까다로워서 힘들여 읽어 보지만 별게 아닌 시와 소설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순진한 아포리즘이 화장을 하고 그럴듯한 시로 진열되고 있습니다.
엄숙한 삶이나 문학만이 바람직하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벼울 때는 가벼워야 하겠지요. 그러나 깊이와 폭과 인간의 체온을 가진 삶 또는 사랑이 육화된, 시에서는 노래로 만들어진, 문학이 문학의 핵심임을 만해는 80년 전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 체현(體現)해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문학 혹은 시가 앞으로 나가는 기운 없이 제 자리를 빙빙 돌거나 주저앉고 있는 감을 주는 지금 만해가 그리워집니다. 전보다 더욱 그리워집니다. 그 그리움을 그의 상을 받음으로 재확인하는 지금 저는 삶의 실체에 조금 더 가까이 접근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그 느낌이 확산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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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부문 : 로버트 핀스키 (미국 계관시인 ㆍ 보스턴대 교수)
■ Manhae Literature Prize : Robert Pinsky (USA, Poet, USA Literature)

1. 수상자 선정 이유
로버트 핀스키(Robert Pinsky, 1940~ ) 교수는 미국에서 1970년대부터 시작(詩作)활동을 전념하며, 시집 『슬픔과 행복(Sadness and Happiness』(1975), 『미국이라는 나라(An Explanation of America』(1980), 『내 마음의 이야기(History of My Heart)』(1984), 『인간의 욕망(The Want Bone)』(1990), 『상상의 바퀴(The Figured Wheel)』(1996), 그리고 『뉴저지의 비(Jersey Rain』(2000) 등을 출간하여 현대시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상상의 바퀴』는 1997년 레노어 마샬 상을 수상했으며 퓰리처 상 후보로 지목된 바 있다. 그의 시는 ‘우아하면서도 강인하다’, ‘생생하게 상상력이 넘친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형식미와 음악성, 그리고 폭넓은 정서와 지성을 동시에 포괄하고 있는 것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산문집으로는 『시의 소리(The Sounds of Poetry)』(1998)와 『민주주의, 문화, 그리고 시의 음성(Democracy, Culture, and the Voice of Poetry)』(2002)이 있다.
로버트 핀스키 교수는 현재 보스턴 대학의 문예창작 프로그램에서 시 창작을 가르치고 있으며, 전례 없이 세 차례 연속 미국 계관시인으로 역임하면서(1997~2000), 미국에서 시를 장려하고 예찬하기 위한 “애송시 프로젝트”를 출범시켜 ‘시의 왕궁의 전권대사’라는 호칭을 얻기도 하였다. 이 프로젝트는 시의 세계를 대중들의 관심 속으로 끌어들이면서 현대인들에게 결핍되어 가고 있는 시적 감성을 새롭게 살려내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는 평을 받고 있다.
로버트 핀스키 교수는 문학비평가, 번역자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체스와프 미워슈의 시를 번역 출간하였고, 『단테의 지옥』(1994)으로 하워드 모튼 랜든 번역상을 비롯하여 셸리 추모상, 윌리암 카를로스 윌리암스상, 「LA 타임스」의 우수도서상을 받았다. 현재 인터넷 잡지 『슬레이트(Slate)』의 시 편집자이기도 하다.
로버트 핀스키 교수는 2005년 만해축전 세계평화시인대회에 미국 시인대표로 참가하여 “시와 평화” 심포지엄의 주제발표에 임하였으며, 특히 만해 한용운의 시에 담긴 사랑과 평화의 의미를 보편적인 인류애로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만해문학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제시한것으로도 유명하다.
만해사상실천선양회에서는 로버트 핀스키 교수의 이러한 문학활동이 현대인의 정신세계와 그 인식의 폭을 감성적으로 확대하여 인간정신의 영원한 가치를 문학적으로 높이 구현하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며, 2006년도 만해대상 문학부문 수상자로 선정하여 그 업적을 널리 찬양하고자 한다.

2. 수상소감
존경하는 이사장님,
제가 만해대상 수상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데이비드 맥캔 교수로부터 연락받고 대단히 기뻤으며, 또한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 자신에게 실로 대단한 영예이며, 최고의 기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년 제가 세계평화시인대회를 위해 한국에 방문했을 때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환대, 인상적인 여러 시인들과의 만남, 그리고 아름다운 한국의 자연에 대한 기억들이 다시 생생하게 되살아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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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교부문 : 남바린 엥흐바야르(현직 몽골공화국 대통령)
Manhae International Propagation Prize : H.E. Enkhbayar (President of Mongolia)
 
 
1. 수상자 선정 이유
남바린 엥흐바야르(Nambaryn Enkhbayar, 1958~ ) 대통령은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태어나 모스크바 대학에 유학하여 문학과 언어학을 전공하였다. 1980년대부터 문필가로 활약하면서 문화예술 분야의 정부 요직을 두루 거쳤다.
거의 불교에 대한 신심과 몽골의 전통문화와 불교사원 복원에 대한 열정은 대단하다. 그는 1990년부터 1992년 국회의원에 당설 될 때까지 몽골 정부 문화예술발전위원회 수석부회장으로 재작하면서 문화 ? 예술 ? 종교 전반에 대한 진흥책을 수립한 바 있다. 그리고 문학도이지만 몽골의 현실에서 문화·예술·종교적 진흥을 꾀하려면 현실참여를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국회에 입성하게 되었다. 국회의원이 되면서 동시에 문화부장관을 맡았고, 정부를 대표하여 간단사(Gandan Temple)의 관세음보살상 조성 건립추진위원장을 맡아 국가적인 대작불사를 성취시킨 보살행을 실천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고향인 아랑가에 대불(大佛)을 조성하려고 서원을 세우고 추진 중이다.
또한 그는 달라이 라마를 몽골에 초청하는 작업을 주도했다. 달라이 라마는 몽골이 자유화되자마자 몽골을 방문하여 불교부흥에 큰 역할을 하였다.
2000년 몽골 총리로 취임하여 몽골의 정치 『사회』 문화 발전을 위해 일하였으며, 그 후 국회의장, 몽골혁명당 의장으로 정치활동을 계속하다가 2005년 몽골공화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남바린 엥흐바야르 대통령은 문필가 출신의 정치인으로서 여러 가지 저작을 내놓았다. 그의 저작은 모두 8권의 전집으로 간행된 바 있는데, 그 가운데 두 권이 사회 정치적 견해를 중심으로 하는 정론집이며, 나머지 여섯 권은 모두 불교와 문학에 관한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 불교의 교리와 부처의 설법을 소개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비롯하여 문학과 역사, 문화의 부흥 등을 논의한 『문학비평집』, 러시아와 영미의 명작 소설을 몽골어로 번역 소개한 책들은 모두 현대 몽골 사회의 대중들에게 널리 읽히고 있다.
몽골공화국의 정치 『 사회적 안정과 경제』 문화적 개방화를 추진해 온 남바린 엥흐바야르 대통령의 개혁정책은 대외적으로 동아시아의 평화와 상호협력관계를 구축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으며, 대내적으로는 전통과 인습에 얽혀 살아온 몽골의 민중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꿈을 심어주면서 몽골의 사회 ? 경제적 발전에 속도를 더하게 되었다. 이러한 그의 리더쉽은 관용과 우호, 자비라는 불교사상과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한 고상한 인격과 폭넓은 지성에서 우러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불교의 중흥이 바로 국가발전이라는 신념을 갖고 정치 『 경제』 문화 전반에 걸쳐서 대승불교의 보살사상인 자리이타와 하화중생의 박티(헌신)정신을 실천에 옮기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남바린 엥흐바야르 대통령이 인류의 발전과 평화 공존, 몽골의 불교 부흥을 위해 노력해온 공로를 높이 평가하여 2006년도 만해대상 포교부문 수상자로 선정하는 바이다.
 
2. Impression of Mahae Prize
 
President of Mogolia
Ulaanbaataar, 28th February 2006.
Most Venerable Cho Oh-hyun,
 
I felt honored to find out that the Manhae Foundation decided to confer its grand award " International Propagating Award" upon me and that it invited me in this connecting to take part in the Grand Awrd Ceremoney to take place in Seoul this autumn.
I should extend my deep gratitude to your members for the support and friendship.
I truly appreciate the fact that you hold me among those honorable leaders who promote peace. I am pleased that my humble efforts to help revive Mogolia's Buddhist culture and historic traditions as well publicize Buddhist values such as amity, compassion with view to apply them to social life have resonated with support in your mind.
It is a privelege for me to support the Manhae Foundation's multifaceted activity that is directed towards tranquility on the Earth and well-being of its inhabitants and thus, I accept and endorse your decision with pleasure.
I firmly believe that Buddhist values of tolerance, amity and compassion would be a source of not only mutual understanding and accord among states and nations, but also that of the respect and friendly tiesamong ordinary peoples. This has always been my belief and principle of life and work, and it will remain the same in the future.
I encourage your efforts for peace, and wish you, the members of the Manhae Foundation and all its supporters-the counterparts in soul and belief, the very best.
 
Sincerely, ENKHBAYAR,  president of Mongolia
 
2. 수상소감
저를 제10회 만해대상 포교부문 수상자로 선정, 만해축전에 초청하여 주신 데 대하여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하며 (재)만해사상실천선양회와 만해대상 심사위원, 그리고 관계자 여러분의 후원과 우호에 깊은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평화를 증진시키는 영예로운 지도자들 가운데 저를 선택하여 주신 데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몽골의 불교문화와 역사적 전통 복원에 도움을 주려는 저의 소박한 노력과 인간의 마음에 공명하는 우호와 자비정신을 사회생활에 구현하는 불교사상을 펴는 데 노력하며 이 일을 실천하는 것을 아주 기쁘게 생각합니다.
만해재단이 저로 하여금 지구촌의 안정과 모든 존재들에 대한 웰빙을 향하여 다양한 활동을 하는 데 지원하도록 한 것은 저에게도 하나의 특권입니다. 저는 아주 기쁘게 만해재단의 결정을 받아들이면서 만해재단의 모든 활동을 지지하는 바입니다.
저는 관용, 우호와 자비라는 불교의 보편적 가치는 국가와 민족간에 상호 이해와 일치를 위할 뿐 아니라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도 존경과 우정의 연결이 되는 원천이라고 확신합니다. 이것은 항상 저의 삶과 활동의 신념이며 정신으로 존재해 왔으며, 앞으로도 저에게 계속 유지될 것으로 믿습니다.
평화를 위한 만해재단의 노력을 격려하며 조오현 큰스님과 만해재단의 모든 분들과 후원자들에게-정신적으로나 신앙적으로 후원하는 모든 분들을 포함하여-최선의 좋은 일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몽골 대통령 남바린 엥흐바야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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