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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33세)

원종의 조동종 맹약에 반대하는 임제종운동 주도. 임제종 종무원의 서무부장 겸 관장 서리,
3월 16일 임제종 종무원 관장에 취임, 종무원을 범어사로 이전.
10월 만주지방 순행.

1912(34세)

5월 임제종중앙포교당 개설
6월 임제종중앙포교당을 일제 외압으로 선종중앙포교당으로 명칭 변경.
8월 불교대중화를 위해 조선불교회와 불교동맹 결성, 좌절. 통도사에 머무르며 대장경 열람.

1913(35세)

3~4월 「 조선불교월보」에 <승려의 단결>(「 조선불교유신론」일부 원고) 기고. 이 때에 처음으로 필명, 자호인 萬海를 사용.
5월 19일 통도사 강원 강사에 취임.

1914(36세)

4월 조선불교강구회 총재.
4월 30일「 불교대전」을 간행(범어사를 발행처로).

1915(37세)

5월 19일 조선선종중앙포교당 포교사에 취임.

1917(39세)

4월 4일 신문관에서 「정선강의 채근담」발간
12월 3일 오세암에서 좌선중 깨달음.

1918(40세)

9월 월간 교양잡지「유심」을 발간, 발행인(3호로 중단)

1919(41세)

1월 최린 등 천도교측과 3·1운동 논의.
2월 불교, 유교측의 민족대표 포섭. 공약삼장 추가.
3월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식 참여, 주도. 일제에 피체.
7월 10일 <조선독립 이유서> 작성.
8월 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유죄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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